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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30주기…북한, 태양(김일성) 대신 김정은 '단독 우상화' 나설까

2024.07.10
북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배지
Getty Images
최근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의 얼굴만 새긴 배지(초상휘장)를 처음 공개했다

2024년 7월 8일은 김일성 30주기다.

그는 1994년 사망했다. 원인은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향년 82세. 한국 정부와의 역사상 첫 정상회담을 불과 17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의 부고가 전해지자, 한국 정부는 전군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당시 전쟁이 난다, 통일이 된다 등의 온갖 풍문이 돌았다. 물론 정상회담은 없던 일이 되었다.

김일성은 곧 태양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어땠을까. 북한은 수령국가로, 최고지도자는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된다. 일단 애도기간만 3년이었다. 북한 매체들은 ‘위대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김일성 동지는 주체의 태양으로 영생하신다’고 선전했다.

선전을 넘어 희한한 주장도 나왔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가짜뉴스’인데 심지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제목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력사’.

-애도기간에 60여명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과 170여명의 정당지도자들을 비롯하여 2000여명의 외교대표들이 우리 나라(북한) 대표부를 조의방문하였다.

-166개 나라에서 3480여건의 조전과 3300여개의 화환을 보내왔다. 그리고 120여개 나라 700여개의 출판보도물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추모하여 특집을 하였다. 160여개 나라들에서 조의행사가 진행되었고 수십억의 각계각층 사람들이 조의를 표시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 국가수반들과 영도자들, 저명한 인사들은 “김일성 동지의 서거는 태양이 꺼지고 지구가 깨진 것과 같다”, “거성이 떨어졌다”, “우리 행성을 자기의 궤도를 따라 돌게 하던 구심점을 잃었다” 라며 통탄해하였다.

-유엔은 청사에 조기를 게양하였고 유엔사무총장은 “김일성 주석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라며 조의를 표시하였다.

북한 사상투쟁 포스터
Getty Images
김일성 주석을 '태양'으로 표현한 북한 포스터

실제 북한에서 김일성은 곧 태양이다. 그래서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은 ‘태양절’로 불린다. 오죽하면 김일성이 '모래'를 '쌀'로 만들고 '축지법'을 쓴다는 소문이 돌았을까. '김일성 전설집'도 있는데 소학교 교과서에 실렸다고 한다. 종이에 말을 그렸는데 진짜 말로 변했다고.

임재천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BBC에 “북한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는 사실 해방 직후 소련이 시작한 것”이라며 “당시 조선에서 김일성은 그리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기에 ‘조선의 스탈린’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지도자로 내세우기 위해 소련이 벌인 일이 우상화의 시초”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북한에서 ‘절대자’로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살게 해주겠다'던 김일성은 살아생전 자신의 유훈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대기근과 경제침체 등으로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이 벌어지며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지만 '이밥에 고깃국'은 그의 아들(김정일)을 지나 손자(김정은) 세대에서도 요원해 보인다.

김정은 업적 강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일 할아버지의 30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참가자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입상을 우러러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셨다"고 보도했다.

또 리일환 당 비서는 추모사를 통해 김일성 주석이 “인민의 수령의 불멸할 초상"이며 "김일성 동지와 같으신 불세출의 위인을 혁명의 영원한 수령으로 모신 것은 우리 인민의 크나큰 영광이고 긍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에 못지 않게 김정은의 치적을 부각해 눈길을 끈다. 특히 군사적 성과를 대거 나열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키워주신 우리 혁명무력은 오늘 경애하는 총비서(김정은) 동지의 손길 아래 우리 국가를 세계최강의 전열로 억세게 떠받치는 주체조선의 무쇠주먹, 무진막강한 국력의 실체로 끊임없이 장성강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600㎜ 초대형방사포,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술핵공격 잠수함 김군옥영웅함 등 김정은 시대에 개발한 신형 무기체계를 거론하며 선대가 이루지 못한 "자위적 국방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고 치켜세웠다.

최근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의 얼굴만 새긴 배지(초상휘장)를 처음 공개했다. 당 중앙간부학교에는 김정은 초상화가 할아버지∙아버지 초상화와 함께 나란히 내걸렸다.

여기에 더해 북한이 민족 최대 명절로 기념해온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올해는 '태양절'이 아닌 '4·15'로 부르는 등 김일성이 곧 태양이라는 신격화된 표현도 사용을 자제하는 모양새다. 김정은이 선대를 지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 김일성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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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2년 전인 1992년 7월 8일 생일을 맞이한 김일성 주석

생존 전략 vs 창조적 발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먼저 김진무 전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홀로서기를 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선대에 의존하지 않고 지난 10년간 자신이 만들어낸 핵무기를 내세우는 ‘생존 전략’이라는 것.

“지금 북한에서 김일성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김정은 집권 초기엔 풍요로웠던 60-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김정은이 할아버지를 따라했지만, 지금은 사회 구성원이 바뀌었어요. 소위 ‘장마당 세대’인 MZ 세대들은 김일성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은둔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은 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주민들 사이에서 인식이 좋지 않아요. 그러니까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제 선대가 필요없는 거죠.”

김 전 연구위원은 “북한은 선전선동으로 정권을 지탱해 가는 나라”라며 “선전선동에 활용하기에 이제는 할아버지(김일성)의 효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김정은의 2국가론, 조국통일3대헌장 폐기를 비롯해 한국을 목표로 하는 전술핵무기 개발, 한류를 체제 전복 요인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일 모두 한국을 ‘남조선’, ‘동포’가 아닌 ‘적’으로 인식해야 가능하다”며 “이는 할아버지가 내세웠던 ‘통일’과 ‘민족’을 부정하는 것으로, 결국 한국을 ‘미제 식민지 하에 시름하고 고통받는 동포’로 바라봤던 할아버지를 지워내는 것이야말로 김정은의 ‘생존 전략’인 셈”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반면 국가정보원 대북분석관을 지낸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선대 흔적을 지운다기 보다는 창조적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들을 계승하고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면서 나름 독자적인 우상화 단계로 진행해 나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선대를 전면 부정한다는 것은 자기 정권을 부정하는 게 되거든요. 따라서 선대의 흔적을 지운다기 보다는 지금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시대의 조류에 맞게끔 김정은의 사상, 김정은의 노선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그런 의미로 북한 주민들한테 주입을 해 나갈 겁니다.”

곽 대표는 다만 “젊은 장마당 세대는 과거 사회주의 시스템의 혜택을 전혀 못 본 이들로, 당의 통제보다는 시장 체제에 의해서 모든 게 작동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큰 문제로 여겨진다”며 “그런 측면에서도 일단 김정은은 거기에 맞게끔 통제도 하고 또 새로운 어떤 시장 규제 요소도 도입하면서 맞춰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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