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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분석: 북러 관계의 진정한 힘은 '중국'에 있다

2024.06.20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Reuters

새벽 3시 평양공항 활주로에서 나눈 환영의 포옹, 의장대의 도열, 평양 중심부에 나란히 걸린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의 대형 초상화 등…이 모든 건 서방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새벽,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이는 러시아와 북한의 우정을 세상에 과시할 기회였고, 김 위원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전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등 두 정상은 실제로 관계를 과시했다.

이렇게 잘 짜인 두 정상의 만남과 주고받는 대화에서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은 큰 위험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두 정상은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이어 나가기 위한 탄약이 절실히 필요하고, 북한 당국은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진정으로 힘을 지닌 국가는 이날 평양에 없었다. 아니, 평양에 있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중국의 코앞에서 유대 관계를 다진 것이기에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했을 것이다. 중국이야말로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는 두 나라의 무역과 영향력 행사를 가능케 하는 핵심 원천 국가다.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이 “굳건한 우정”을 노래한다고 하더라도, 그 우정에 한계가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한계는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경계의 눈빛으로 지켜보는 중국

시 주석이 중국의 동맹국으로 서로 점점 더 밀착하고 있는 북한과 러시아 사이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볼만한 징후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중국은 지난 5월 시 주석을 만난 푸틴 대통령에게 직후 평양을 바로 방문하지 말라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러 회담에 북한 이야기를 끼얹는 것을 원치 않았던 모양새다.

이미 시 주석은 러시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부추기는 부품 수출을 중단하라며 미국, 유럽으로부터 상당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시 주석 입장에선 이러한 경고를 무시할 수 없다. 전 세계가 중국 시장을 필요로 하듯이, 중국도 현재 겪는 성장 둔화를 극복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선 외국인 관광객과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태국, 호주뿐만 아니라 일부 유럽 국가 관광객들에게도 무비자 여행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다른 나라에 판다도 선물하기 시작했다.

국제 사회 내 영향력을 키위 미국에 도전하고자 하는 야심을 품은 시 지도자에겐 시선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왕따 국가가 되거나, 서방의 새로운 압박을 받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시 주석은 여전히 러시아와의 관계도 이어 나가고 있다.

시 주석
Getty Images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 비난한 바는 없지만, 러시아에 무척 유의미한 군사적 지원을 하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5월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선 신중한 발언을 이어갔는데, 이는 시 주석을 향한 푸틴 대통령의 미사여구 가득한 칭찬과는 대조적이었다.

한편 지금껏 중국은 미국이 주도한 유엔(UN) 제재를 반복적으로 어기면서까지 핵무기를 발전시키겠다는 김 위원장의 정치적 보호막이 돼 줬다.

그러나 시 주석을 김 위원장의 대담한 팬으로 보긴 힘들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일본과 한국은 불편한 역사는 뒤로하고 미국과 방위 협정을 체결하게 됐다. 그렇게 긴장이 고조되면서 태평양엔 더 많은 미국 군함이 드나들게 됐고, 이에 시 주석은 “동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를 우려한다.

중국이 불편함을 드러내면 러시아 입장에선 북한에 대한 기술 판매를 재고하게 될 수도 있다. 러시아의 기술 판매 가능성은 미국의 가장 큰 우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안드레이 란코프 NK뉴스 국장은 “러시아가 북한에 대규모 군사 기술을 제공하진 않을 것 같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군사 기술을 제공할 경우 러시아 입장에선 “그리 많은 걸 얻지도 못하고, 미래의 잠재적인 문제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산 포탄이 당장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엔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이를 미사일 기술과 맞바꾸는 건 그리 좋은 거래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푸틴 대통령이 자국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구입해주며 자신을 소외시킨 국제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동맹국으로 남아 있는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가치가 없다는 점을 깨달을 수도 있다.

한편 북한이야말로 중국을 훨씬 더 필요로 한다. 중국은 김 위원장이 방문하는 유일한 국가이며 북한이 소비하는 석유의 4분의 1가량은 러시아산이지만, 최소 80%는 중국에서 들여온다.

한 전문가는 북-중 관계를 계속 타오르는 석유램프에 비유하기도 했다.

요컨대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동맹국으로 보이고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두 국가 모두 중국과의 관계가 서로 주고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저버리기엔 너무 중요한 중국

북한과 러시아 모두 “제국주의적인 서구”에 맞서 싸우겠다며 맹세했으나, 이는 전시 파트너십일 뿐이다. 양국 관계가 “동맹” 수준으로 격상되더라도 아직까진 주고받는 관계로 보인다.

물론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맺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는 인상적으로 들리지만, 북한이 계속 탄약을 제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DMZ를 두고 한국과 마주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에겐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한 탄약도 필요하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운영 체제가 다를 것이라면서, 북한의 체제가 더 노후화되고 저급일 것으로 본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지난 수십 년간 러시아와 북한에게 서로와의 관계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푸틴 대통령은 서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을 당시, 미국·중국·한국·일본과 함께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포기를 위해 두 차례 북한을 제재한 전력이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8년 여러 외교 정상 회담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을 때도 푸틴 대통령을 만난 건 단 한 번뿐이었다. 당시 김 위원장의 커다란 웃음과 포옹, 악수는 문재인 당시 한국 대통령을 향해 있었다. 이 두 정상은 세 번이나 만났다.

그리고 이러한 3차례의 만남 이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는 ‘러브레터’를 주고받기도 했다. 한때 “늙다리 미치광이”라 부르던 사람이 갑자기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게다가 시 주석과도 정상 회담을 세 번 가졌는데, 김 위원장이 최초로 만난 외국 정상이었다.

그리고 현재,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이 장미와 레드카펫으로 온 거리를 장식하며 환영한 것과 달리, 푸틴 대통령은 아직 친근함을 뿜어내지 않고 있다.

북한 관영 신문에 실린 푸틴 대통령의 칼럼은 “정의에 대한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다극화된 세계 질서 구축을 방해”하려는 서방 세계의 야망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양국의 공통 이해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시 주석에겐 듬뿍 퍼부었던 칭찬의 미사여구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 국빈 방문 당시,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을 향해선 마치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며, 이미 둔화하고 있던 중국 경제를 향해선 “대폭 발전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심지어 자기 가족이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둥 적극적 구애를 펼쳤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은 이번 평양 방문에서처럼 감히 시 주석을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며 지각하진 않을 것이다. 또 김 위원장과 누가 리무진 상석에 타는 게 좋을지 논쟁을 벌였던 어색한 순간을 보면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누가 더 중요한 파트너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듯하다.

중국에게 이 두 국가 모두 애원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중국이 없다면 이 두 정상과 이들의 정권은 난항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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