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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 '자라'의 비밀스러운 본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나?

2일 전

"올 여름은 로맨틱하고 카우보이, 로큰롤이 가미된 매우 섹시한 여름이 될 것입니다."

메흐디 수잔느의 말이다. 그는 트렌드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하이 스트리트 패션(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패션) 업계 성공 사례로 꼽히는 브랜드, 자라의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자라의 모회사는 인디텍스다. 인디텍스는 마시모두띠, 풀앤베어 등 다양한 의류 매장 체인을 보유한 세계 최대 패션 리테일러다.

자라의 제품 생산에는 전 세계 1800여 공급업체가 참여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의류는 본사가 있는 스페인으로 모였다가, 다시 97개국에 있는 매장으로 보내진다.

자라는 광고를 하지 않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라 1호 매장 개점 50주년을 맞아, 나는 자라의 비밀스러운 운영 방식을 엿볼 기회를 얻었다. 이를 위해 나는 갈리시아에 있는 광활한 캠퍼스로 가서, 자라의 임직원들을 만났다.

자라가 헤쳐나가야 하는 시장의 현 상황은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에서 상품을 직배송하는 초저가 온라인 쇼핑 기업 셰인, 테무가 의류 업계에서 치열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미국의 관세 부과를 둘러싼 불확실성 등 시장 상황도 급변하고 있다.

하지만 오스카 가르시아 마세이라스 인디텍스 CEO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가 공급망을 방해하거나 현재 두 번째로 큰 시장인 미국에서 더욱 확장하려는 자라의 계획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각화는 우리의 핵심"이라며 "우리는 비독점 공급업체와 함께 약 50여 개의 다양한 환경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 적응에 보다 익숙하다"고 말했다.

자라의 디자이너 메흐디 수잔느
BBC
디자이너 메흐디 수잔느는 11년 동안 자라에서 일했다

자라는 본사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코루나 마을에 첫 매장을 연 이래,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며 성장해왔다.

현재 자라에는 350명의 디자이너와 40여 개국 출신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다가올 여름을 겨냥해 주력 제품을 만드는 메흐디는 "(제품을 만드는) 일반적인 규칙은 없다"며 "중요한 것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영화관, 패션쇼 무대에 이르기까지 영감의 원천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무드보드가 만들어지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스케치로 표현해 나가는 것이 그가 좋아하는 작업 방식이다.

패턴 재단실에서는 디자이너가 만든 디자인을 종이 샘플로 만들어 마네킹에 붙인다. 그런 다음 수십 명의 재봉사가 원단 샘플을 재봉해, 1차 피팅 작업을 한다.

패턴 제작자인 마르 마르코테는 업계에서 42년 동안 일한 베테랑이다. 지금도 그는 제품이 최종 생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돋보기를 가지고 의류의 모든 요소를 꼼꼼히 살핀다.

"완성 결과물이 멋지게 나오고 때로 매진까지 되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패턴 제작자인 마르 마르코테
BBC
마르 마르코테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라는 사람들이 옷을 사는 방식을 바꾼 기업이다.

과거에는 소매업체들이 핵심 제품군을 1년에 봄/여름과 가을/겨울 등 단 두 차례 정도만 출시했었다. 대형 의류 체인 대부분은 수십 년간 제조 비용이 적은 극동 지역 공장에 제조를 맡겼다. 그리고 의뢰한 제품을 받아보기까지는 최대 6개월이 걸렸다.

이러한 기존 통념에 반기를 든 것이 자라다. 자라는 생산하는 의류 상당수를 본사에서 가까운 곳에 외주를 주어 제작하는 한편, 훨씬 더 짧은 주기로 제품군을 시장에 선보였다. 이를 통해 자라는 거의 매주 새로운 제품을 매장에 선보이며, 최신 트렌드에 매우 기민하게 대응했다.

'자라'라는 브랜드를 단 의류의 절반 이상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터키에서 생산된다. 본사에는 소규모 생산을 위한 공장이 있고, 본사 인근에도 자라 소유의 공장 7곳이 더 있다.

이러한 생산 시스템을 바탕으로, 자라는 제품을 몇 주 만에 출시할 수 있다.

남성 모델이 촬영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BBC
자라가 만드는 의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런가 하면 자라는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같이 멀리 떨어진 국가에서는 보다 긴 시간에 걸쳐 기본적인 패션 제품들을 제작한다.

자라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물류와 데이터다. 자라의 모든 의류는 스페인에 있는 물류 센터와 네덜란드에 있는 물류 센터에서 포장 및 배송된다.

마세이라스 CEO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도"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선호를 제대로 평가하고, 올바른 최종 결정으로 다양한 지역에 있는 고객 프로필에 맞게 제품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올바른 제품을 적합한 매장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자라 본사에 있는 제품 관리자는 전 세계 매장에서 제품이 어떻게 판매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시간 데이터와 고객 피드백을 디자이너와 바이어에게 전달한다.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수요와 시즌에 맞춰 제품군을 조정한다.

자라는 다른 하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달리, 1년에 두 차례 세일 기간에만 할인을 제공한다.

새 옷 디자인을 위해 스케치를 하고 있는 디자이너
BBC
자라 경영진은 품질과 창의성, 지속가능성이 자사 브랜드 제품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올해 초, 자라의 매출 성장세는 둔화됐다. 자라가 빛을 잃기 시작한 것일까?

글로벌 투자은행 번스타인에서 유럽 리테일러 분석을 담당하는 윌리엄 우즈는 "인디텍스의 핵심 과제는 점점 더 빠르고 가격이 저렴해지는 패션계에서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H&M, 망고, 유니클로와 같은 주요 라이벌들이 자라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셰인과 테무도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셰인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38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인디텍스를 바짝 뒤쫓아온 것이다.

'셰인과 테무의 성공이 자라에 얼마나 위협이 되느냐'는 질문에 마세이라스 CEO는 자라의 비즈니스 모델은 가격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물론 저희도 고객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품질, 창의성, 지속 가능성을 겸비한 영감을 주는 패션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라는 아만시오 오르테가 창립자의 창업 이래, 먼 길을 걸어왔다.

이 회사는 여전히 오르테가 일가가 대주주이며, 아만시오 오르테의 딸 마르타가 현재 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올해 89세인 오르테가 창립자는 세간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마세이라스 CEO에 따르면, 창립자의 존재감은 여전히 느껴진다.

"그는 매일같이 느껴지는 존재예요. 물리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늘 곁에 있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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