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본토 일부 점령한 가운데… 독립기념일 맞은 우크라이나
지난 24일(현지시간), 독립기념일을 맞아 우크라이나인들은 옛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축하했다.
학생인 율리아나 비시니우스카(19)는 키이우 주민 수백 명과 함께 러시아 군의 공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에도 도시 중앙 야외에서 펼쳐진 음악 공연장으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 우크라이나의 전통 의상 ‘비쉬반카’를 입은 비시니우스카는 “라디오에서 러시아가 오늘 우리에게 폭격을 가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경고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맙소사,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린 (이러한 상황에) 이미 익숙하고, 우리가 위험 속에 살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검은색 옷을 차려입은 오케스트라 단원 12명이 우크라이나 전통곡을 흥겹게 연주하는 올해 독립기념일은 지난 2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로 진격해 일부 영토를 점령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비시니우스카는 “러시아 쿠르스크(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놀라웠다. 우리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정말 기쁘다”고 했다.
비시니우스카는 지금 국경 지역에서 러시아 국민들이 마주한 상황, 피난길에 올라야 하고 위험에 빠진 상황은 2년 반 전 저들이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기에 일어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저들을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 우리는 저들을 죽이고 싶습니다. 끔찍한 일이죠. 인간으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옳지 않다는 건 앓지만 우리는 저들이 밉고, 저들이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하기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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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여러 독립기념일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새로 점령한 러시아 측 영토인 수미 지역에서 미리 녹음한 연설 영상을 보여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 “러시아가 우리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저들은 주권 국가의 국경뿐만 아니라 잔인함과 상식의 한계까지 뛰어넘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지금껏 단 하나만을 끝없이 추구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파멸입니다. 그리고 적들이 우리 땅에 일으킨 상황이 이제 저들의 본거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쿠르스크로 침투한 지 거의 3주가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는 기습 작전을 통해 빠르게 점령한 러시아 영토의 대부분을 통합한 상태다. 지난 6일 우크라이나 정예 군사 약 1만 명이 국경을 넘어 본토로 향했고, 단 며칠 만에 올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보다 더 넓은 영토를 손에 넣은 것이다.
한편 이번 본토 공격 작전이 전개된 이후 BBC는 줄곧 우크라이나 군인인 세르히(가명)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
현재 러시아 땅에 있는 세르히는 최근 상황이 조금 더 까다로워졌다고 했다.
“러시아가 더 강해졌다. 드론, 포탄, 전투기를 활용한 공격 횟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사보타주 및 정찰 그룹도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말은 즉, 우크라이나 측 사상자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소리라고 덧붙였다.
“(쿠르스크 공세) 작전 초기에 우리가 상승세를 탔습니다.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죠. 그러나 현재 러시아의 화력으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우리가 우리 땅을 지키고자 싸우 듯이 이곳에서 저들의 땅을 지키고자 싸우고 있습니다.”
세르히는 공세 초기 큰 기쁨으로 가득했던 분위기가 점점 회의론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이번 작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많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하르키우와 자포리자를 위해 싸우는 것과 쿠르스크 지역을 위해 싸우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는 필요 없는 곳이죠.”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쿠르스크 작전의 목표를 다 밝힐 순 없지만, 러시아 군인 생포도 그 중 하나라고 말한 있다. 실제로 지난 24일 포로 교환이 타결돼 우크라이나인 115명이 풀려났다.
아울러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작전은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 지역을 향한 러시아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예방적 성격이 강했다고도 밝혔다.
쿠르스크 침공이 정의를 실현하고 보복한다는 의미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에는 위험한 전략이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작전으로 일부 러시아 영토를 얻긴 했지만, 러시아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점령지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재 러시아군은 이번 전쟁 전 약 6만 명이 살던 도시인 도네츠크주 포크로우스크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도네츠크주에서도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포크로우스크는 현재까지는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통제하고 있는 곳으로, 주요 방어 거점이다.
전직 TV 언론인 출신으로, 현재는 포크로우스크를 방어하는 제33 기계화여단의 자원 군인인 나자르 보이텐코우(23)는 드문드문 끊기며 잘 들리지 않는 전화 통화에서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는 러시아가 자국 영토 방어를 위해 군대를 다른 곳으로 배치한 사실을 알고있는지 물었다.
“아니요, 그렇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에 러시아는 쿠르스크 지역과 러시아 다른 지역에도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시작한 이번 작전에 그 병력을 투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러시아 본토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당국은 동부 전선의 자국군이 받는 압박이 완화되길 바랐다. 과연 그럴까.
보이텐코우는 “상황이 더 쉬워졌다는 느낌은 없다. 여전히 전방위에서 적들이 포진하고 있고, 지난주에는 저들이 다시 접근을 시도했다”고 답했다.“
“저들은 장갑차 약 10대와 보병대를 동원해 우리 진지를 차지하고자 했지만, 우리는 잘 막아냈습니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승리했고, 다음 전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답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들은 (물러나지 않았고) 여전히 이곳에 있습니다.”
이번 주말 우크라이나의 독립기념일 행사는 최근 자국 군이 러시아 땅을 일부 차지했다는 소식에 분명 더욱더 활기찬 모습이었으나, 내년 독립기념일까지 우크라이나가 걸어갈 길은 여전히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한편 우크라이나의 유명 작가 중 한 명인 올렉산드르 미케드는 조용하게 “이것은 단조롭기 일상적인 대량 학살”이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는 과거 레닌 박물관으로 사용됐던, 동굴같이 생긴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미케드는 방금 자신의 신간에 대한 강연을 마쳤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위대한 고전 작가들이 최근 러시아의 침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그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발전과 다시는 러시아의위성 국가가 되지 않겠다는 이들의 결의를 보여주기에는 이보다 더 상징적인 장소도 없을 것이다.
미케드는 러시아는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또 다른 미사일 공격이 일어났습니다’라는 식으로 보도되는 날, 전 세계가 이에 너무 익숙해져 일상이 돼버린 날이 오길 바랍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대량학살’이 되는 거죠.”
다음 독립기념일까지 앞으로 1년간, 국민들이 어떤 기대를 붙들며 견딜 수 있을지 물었다.
이에 미케드는 “지금은 진정한 애국심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해야만 하는 때”라면서 “그리고 우리는 그게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 다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나라 전체가 집단적 슬픔에 빠져있긴 하지만, 모두 다시 강해져서 우크라이나의 생존을 끌어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케드는 “분명 피곤할 것이고, 모든 게 우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조국을 구해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추가 보도: 카일라 헤르만센, 한나 초르누스, 아나스타샤 레브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