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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날아온 '오물 풍선'…남북이 60년 넘게 주고받은 '삐라'의 역사

2024.05.29

북한이 남쪽을 향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풍선 다수가 발견됐다. 합동참모본부는 28일 밤 경기·강원 접적지역 일대에서 북한이 보낸 대남 전단 추정 미상 물체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29일 오전에는 전국 곳곳에서 북한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들을 발견했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지난 28일 오후 10시 17분께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역 인근 식당에서 풍선 잔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발견된 풍선의 잔해에는 두엄(거름)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담긴 봉투가 매달려 있었으며, 한국군 당국은 해당 물질을 수거해 분석 중이다.

현재 전방 지역에서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고도에서 떠다니는 다수의 풍선이 관측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미상 물체 식별 시 접촉하지 말고 가까운 군부대 또는 경찰에 신고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6일 국내 대북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맞대응하겠다며 "수많은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곧 한국 국경 지역과 중심 지역에 살포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런 경고는 지난 13일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가 "대북 전단 30만 장과 케이팝 동영상 등을 저장한 USB 2000개를 대형풍선 20개에 매달아 10일 밤 11시께 인천 강화도에서 북쪽으로 보냈다"고 주장한 뒤에 나왔다.

지금까지도 남북간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단(삐라)의 역사는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리전을 위해 상대측에 뿌려졌던 '종이 폭탄'을 두고 남북이 어떻게 대치해왔는지를 정리했다.

한국 전쟁 당시 뿌려진 전단은 28억 장

남북간 전단 살포는 한국 전쟁을 시작으로 활발히 이뤄졌다. 당시 유엔군이 심리전 차원에서 북측에 전단을 뿌렸고, 북한도 유엔군을 대상으로 전단을 살포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뿌려진 전단은 총 28억장. 남한과 유엔군이 25억 장, 북한, 소련 등이 3억 장을 뿌렸다. 한반도 전체를 20번 이상 덮을 수 있는 분량이다.

전단 색깔은 대부분 눈에 잘 띄는 빨간색이었고, 주로 투항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전단을 가져오면 신변을 보호해준다는 '안전보장 증명서'도 있었다.

휴전 이후에는 '체제 과시용'

전단 살포는 휴전 후에도 계속됐다. 내용은 각 지도자와 체제를 비난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1960~70년대 북한은 당시 발전한 평양의 모습을 부각하고, 김일성 주석의 업적을 선전하는 내용을 담았다.

1970년대 북한이 대남용으로 보낸 '월북 장병들에게'라는 제목의 전단에는 "공화국 공민의 권리와 자유 보장, 직업·직장 알선, 고급주택 무상 배정, 생활보장금 1억 1100만 원~3억 3300만 원(남한 돈으로), 상금 185억 원까지(남한 돈으로)"라고 적혀 있다.

당시엔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더 나아 전단을 보고 월북하는 사람도 있었다.

1980년대까지 남한의 경우 학생들이 북한 측이 날려 보낸 전단을 줍는 일이 일상이었다.

학교나 파출소에 가져가면 자, 책받침, 공책 등 각종 학용품을 포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관공서에는 간첩 및 간첩선 포상금 지급과 대남 전단 수거에 대한 공고가 붙었다.

이후 남북의 경제적 상황이 역전되면서 남한은 이 부분을 대북전단에 활용했다.

특히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중심으로 '배불리 먹고 싶지 않습니까' 등 직접적으로 이를 표현했다.

공식 중단에도 이어져 온 전단

그러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2000년 남북 상호비방 중지 합의에 따라 양측의 전단 살포가 공식 중단됐다.

2007년에는 경찰청이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규칙을 폐지해 학용품 등을 지급하는 포상도 사라졌다.

정부 차원의 공식 전단 살포는 중단됐지만, 전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상호 비방과 심리전이 재개됐고 양국 간 전단 살포도 다시 시작됐다.

2010년대는 '정치 이슈' 비판하는 내용이 주

남한의 경우 2000년대 이후는 민간 단체들이 대북 전단 전면에 나섰는데 이들은 전단 외에도 컵라면, 1달러 지폐, 소책자 등의 물품도 함께 날려보냈다.

대북 전단은 특히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확대됐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남북간 대화 분위기가 펼쳐지던 2014년에도 전단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대응 차원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도 재개했다.

당시 방송에는 인권 탄압 등 북한의 내부 소식 외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도 실렸다.

이에 대응해 북한은 대남 전단 살포를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나 한국 내 정치 상황을 비난하는 전단이 대부분이었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과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진행 중인 2016년 말에는 '현 정부는 각성하라'며 '촛불민심을 외면한다면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담긴 전단이 뿌려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말폭탄을 주고 받을 때도 전단은 계속됐다.

판문점 선언 이후에 다시 불거진 전단 살포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공동선언'을 통해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기로 했다.

군사분계선 지역에 설치된 확성기도 모두 제거됐다.

이와 맞물려 2018년 5월5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 파주 일대에서 전단 살포를 시도하다 제지를 받았다.

하지만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대북 민간 단체들의 전단 살포는 계속됐다.

그러다 지난 2020년 6월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탈북자 단체의 전단 살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남북 관계의 주요 현안으로 등장했다.

김 부부장은 당시 개인 명의로 낸 담화문에서 한국 정부가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하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화해모드였던 남북간 관계 경색 문제가 불거지자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은 이른바'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불린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위헌 결정을 내렸고, 현 정부는 '자제'를 요청하는 선에서 사실상 대북전단 살포를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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