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노루즈가 되지 않기를'… 전쟁의 그림자 속 새해를 맞는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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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새해 축제인 '노루즈(Nowruz)'를 며칠 앞둔 이 시기, 이란인들은 보통 설레는 마음으로 축제 준비에 분주하곤 했다.
테헤란 동북쪽 다마반드에 거주하는 50대 여성 미나 씨는 "(예전이라면) 집을 청소하고 새 옷과 달콤한 간식 등을 사러 다니며 축제를 준비하느라 정말 바빴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흘리며, 올해는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했다.
미나 씨는 "올해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며 "마치 시간 감각조차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날"이라는 의미의 노루즈(Nowruz)는 춘분을 기점으로 만물의 소생과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이란 및 주변국들의 전통 축제다. 3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축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명절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노루즈는 3월 20일이며, 이란의 새해는 공식적으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올해의 노루즈는 수많은 이란 국민들에게 전쟁 중에 맞이한 생애 최초의 새해 축제로 기억될 전망이다.
이란은 지난 2월 28일부터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해 언제 포격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단체 '이란 인권 활동가(HRAI)'의 보고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이란 내에서 총 31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민간인 사망자는 1354명에 달하며, 여기에는 최소 207명의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응해 이란 정권은 이스라엘과 걸프 지역 내 미 우방국들을 향해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가족과 함께 테헤란을 떠나 다마반드로 거처를 옮긴 미나 씨의 아들 아미르 씨 또한 이번 노루즈가 평소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아미르 씨는 "전쟁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국가 기간시설의 파괴가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란이라는 국가에 남는 것이 거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노루즈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오늘날 이란 갈등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의 선언
- 이란과의 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혹은 이득을 볼 나라는?
- 전쟁 1주일, 이란인들이 전한 현지의 목소리는 이랬다
이란인들에게 노루즈는 그들의 역사와 민족성, 그리고 전통을 상징한다. 페르시아인을 비롯해 파르시, 쿠르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타지크, 카자흐, 우즈베크족 등 다양한 민족과 문화권에서 이 축제를 역사적 전통으로 삼고, 각기 고유한 풍습을 이어왔다.
이란인들이 전쟁 중에 노루즈를 맞이한 것은 지난 1980년대 이라크와 8년간 전쟁을 치르던 시기가 마지막이었다.
이 축제는 관련된 다양한 풍습이 많다. 묵은해의 액운을 털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미리 집안 곳곳을 대청소하는 풍습이 대표적이다.
미나 씨는 "새해가 밝았을 때 TV에서 흘러나오는 명절 축하 방송 소리가 미사일과 드론의 폭음과 뒤섞이게 될까 봐 두렵다"며 "진심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보통 2주간 이어지는 노루즈 연휴 동안 가족들은 서로의 집을 방문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일부 이란 국민들은 가장 격렬한 공격이 집중된 테헤란으로 돌아가기를 꺼리고 있다.
미나 씨는 "올해는 친지 방문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우리 역시 테헤란을 떠나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으로 피난길에 올랐다"고 말했다.
"악몽을 꾸다가 깨어난 것처럼, 이 모든 일이 우리 기억 속에서 완전히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예년과 같았다면 노루즈를 며칠 앞둔 이 시기, 이란 전역의 시장과 쇼핑센터, 거리는 쇼핑에 나선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같은 활기차고 들뜬 명절 분위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테헤란에 사는 20대 여성 파르미스 씨는 "예전에는 노루즈 제단에 올릴 물건들을 구하는 게 정말 쉬웠다"며 "하지만 지금은 어딜 가든 공습을 당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파르미스 씨는 지난 3월 17일, 평소처럼 네일 관리를 받기 위해 외출했다. 해마다 이맘때는 노루즈를 맞아 가장 단정한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미용실과 네일숍이 가장 붐비는 시기였다.
그는 "나처럼 많은 사람이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상을 이어가려 애쓰는 것 같다"며 "네일숍에 있을 때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지만, 그곳에 있던 누구 하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마리암 씨는 일부 사람들이 전쟁에 굴하지 않고 노루즈 축제와 그 핵심인 '하프트 신(Haft Sin)' 제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리에는 여전히 하프트 신 제단에 올릴 물건들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꽃도 보이고 노점상들도 눈에 띄었죠. 하지만 예전과 같은 활기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루즈는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전통입니다. 우리는 이를 꼭 기념해야만 하죠. 그래서 저도 필요한 물건들을 조금 샀고 집에 있던 것들도 챙겨놓았습니다. 내일은 하프트 신 제단을 차릴 겁니다."
한편, 이란 내부에는 전쟁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일부 존재한다.
"지금 노루즈가 무슨 소용입니까? 이슬람 공화국 체제가 유지되는 한 우리는 끝없는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노루즈는 언제나 그랬듯 왔다가 갈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슬람 공화국이 물러나야 할 때입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30대 람틴 씨의 말이다.
테헤란 출신의 키안 씨는 자신의 어머니가 "종교 지도자들의 집권 체제만 끝낼 수 있다면 차라리 내 머리 위로 집이 무너져 내려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슬람 공화국 체제는 이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노루즈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올해 우리 가족은 하프트 신 제단조차 차리지 않습니다."
노루즈는 추운 겨울이 물러가고 생명력 넘치고 희망찬 봄이 찾아오는 기점을 상징한다. 노루즈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새해의 새로운 시작을 기원하며 소원을 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20대 여성 시린 씨는 전쟁이 노루즈와 시기적으로 맞물린 상황에 대해 "기분이 한층 더 참담하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문을 연 가게들이 더러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노루즈의 정취를 느낄 수는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