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프랑스, 캐나다, 서안지구 정착촌 제재 발표 … 이스라엘, 격렬히 반발
영국 정부가 이스라엘 정부가 정착민들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겨냥한 "인종 청소"를 묵인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지난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불법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에드 밀리밴드 외무장관은 이번 조치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불의와 고통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밀리밴드 장관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하며, 동예루살렘 소재 영국 영사관을 폐쇄하는 등의 대응 조치를 발표했다.
영국의 이번 조치에 따라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수입이 금지될 뿐만 아니라, 정착촌 확장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 개인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게 된다.
이번 제재는 프랑스와 캐나다 등도 공동 추진했다. 이들 국가는 영국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두 국가 해법을 보호하기 위한 우리의 접근 방식의 또 다른 전환점이"이라고 밝혔다.
정착촌은 국제법상 불법이며, 최근 몇 달간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정착민들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태가 증가하고 있다.
밀리밴드 장관은 자국 의원들에게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 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일부 지역에서 정착민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 청소가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는 너무 자주 이에 대해 눈감아 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당국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강제 추방을 지지하는 발언과 관련 행동을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밀리밴드 장관은 UN은 인종 청소를 "특정 민족이나 종교 집단이 폭력적이고 공포심을 유발하는 수단을 동원해, 다른 민족·종교 집단의 민간인 주민을 특정 지역에서 의도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의도적인 정책"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제력을 고착화하고, 주권을 영구적으로 확장하고, 불법 정착촌을 통해 팽창주의적 의제를 펼치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점령은 불법이라는 것이 영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는 지난 2024년 국제사법재판소의 자문 의견과도 일치하며, 이러한 입장이 서안지구와의 영국 감 "경제적 관계"에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향후 6~9개월 이내에 영국은 "새로운 포괄적 제재 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설명이다.
영국 내에서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불법 정착촌에 대한 홍보도 금지된다.
밀리밴드 장관은 "이번 제재안은 이스라엘이 아닌 불법 정착촌과 정착촌 확장을 겨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8일) 오후 앤디 번햄 총리도 나서 이러한 조치들은 "이스라엘 국민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두 국가 해결 방안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스라엘의 사르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예루살렘·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를 관할하는 영국 정부 대표 기관인 영사관을 폐쇄한다고 밝히며, "우리는 영국에 우리 친구들이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스라엘 국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적대적인 행보를 보이는 노동당 정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그들의 적대적 행동에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어 제러미 코빈, 다이앤 애벗 의원과 현직 녹색당 의원 5명을 포함한 영국 의원 11명에 대해 "반유대주의 및 반이스라엘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이스라엘 입국을 금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영국 정부는 이번에 프랑스, 캐나다, 덴마크, 스페인, 핀란드,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스웨덴 등 11개국과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해당 국가들은 두 국가 해법을 확고히 지지하며, 서안지구 내 정착촌과의 교역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조치에 나서거나, 유럽 차원에서의 제한 조치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의 이번 발표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동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이른바 'E1 지역'에 정착촌 주택 약 1200채를 건설하기 위한 입찰을 공고한 이후 나왔다.
이스라엘의 이 같은 계획은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비난을 받아왔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이 지역에 대한 건설 계획을 보류해 왔다.
밀리밴드 장관은 하원 의원들에게 서안지구 내 E1 개발 계획은 "팔레스타인의 심장을 갈라놓음"으로써 두 국가 해결법을 "실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기에 영국은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동시에, 이번 가자 전쟁의 발단이 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주도의 이스라엘 남부 공격에 대해서도 "수 세기 간 이어져 온 유대인 박해의 참혹한 과거의 재현"이라며, 이스라엘은 "국민을 보호하고 영토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가자에서 일어난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밀리밴드 장관은 "국제 인도법은 전쟁 중인 국가들이 식량 및 의료 물자의 공급을 보장하고, 민간인의 대규모 강제 이주를 방지하며,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지 않는 등의 규칙을 지키도록 명시하고 있다"면서 "이 법을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위반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이는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의 행동을 비롯해 그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UN 독립 국제 조사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은 집중 조사 중입니다."
"이들 기관이 내놓은 보고서의 결론은 전쟁범죄가 자행됐다는 증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법절차를 지지합니다."
다만 밀리밴드 장관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는지는 국제재판소가 판단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지도부는 자국군은 국제법에 따라 작전을 수행해 왔다고 주장하며, 집단학살·반인도적 범죄·전쟁범죄 등의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밀리밴드 장관은 자신의 유대인 혈통, 어린 시절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경험, 최근 영국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적 공격 사건들을 언급하며 하원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자랑스러운 영국계 유대인"이라고 소개하며,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확고한 지지도 표명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수천 명의 유대계 영국인들의 삶은, 유대 민족의 조국으로서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내외 그 누구에게나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수많은 이유입니다. 당신들은 틀렸으며, 이스라엘을 지워버리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당신들을 규탄할 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수석 랍비(유대교 지도자)인 에프라임 미르비스는 이날은 "유대계 영국인들에게 진정으로 암울한 날"이라고 규정하며 반발했다. 그는 이번 제재 조치에 대해 "거짓으로 가득한 반이스라엘 선동에 동조하며 정치적으로 숟가락을 얻는 행태"라고 비난하면서, 이는 "유대인을 상대로 증오라는 무기를 휘두르는" 이들을 더 부추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유대인 대표위원회' 또한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영국과 이스라엘 양국 정부에 "국익보다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듯한 행보를 삼가 달라"고 촉구했다.
밀리밴드 의원은 하원 연설 이후 '유대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행동을 핑계로 유대계 영국인들을 겨냥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유대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입장은 "하원 전체가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보수당의 톰 투겐트하트 그림자내각 외무장관은 현 정부가 "외무부조차 효과가 없을 것임을 알고 있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법 정착촌은 옳지 않으며, "일부 이스라엘 장관들이 증오 선전과 선동에 빠져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 지역의 복잡성을 단 한 문장으로 단순화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는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의 사르 외무장관은 8일 저녁 투겐트하트 의원 및 케미 베이드녹 보수당 대표와 통화했다고 밝히며, "오늘 적대적인 노동당 정부의 발표와 집권 이후 이어진 일련의 반이스라엘 정책에 단호히 반대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어 이스라엘 남부 키리얏 가트에 위치한 '국제 가자 지원 센터'에서 영국 대표단은 물러날 것이며, 유대-사마리아(이스라엘 정부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지칭하는 용어)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군대를 훈련시키고 있던 영국의 활동도 중단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8일) 이삭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영국의 이번 결정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는 일"이라며 "(현 역사의) 맥락에서 이는 주권 국가의 민주적 선거에 대한 심각한 간섭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헤르조그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것이라고 지적하며,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외국 정부들에게 "건설적인 대화"와 협력으로 접근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들에게 "당연히 우리는 영국이 한 일을 따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백악관은 이번 공동 조치에 대해 따로 논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대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예상되는 제재에 "의심할 여지 없이" 대응할 것이라고 말하며, "영국 기업들에 막대한 경제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연방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미국 각 주 차원에서도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암시하기도 했다.
한편 팔레스타인 대통령실은 영국의 결정을 환영하며, 이는 "이스라엘의 식민 체제와 팔레스타인 국민 인권 침해에 맞서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밝혔다.
밀리밴드 장관은 이같은 제재와 함께,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단체인 레바논 헤즈볼라의 자금 조달 조직에 대한 제재도 발표했다.
또한 미국 및 유럽연합(EU)에 발맞춰, 이란에 대한 새로운 제재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키어 스타머 정부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평화로운 미래를 지원하는 것이 영국의 도덕적 책임이라고 밝힌 지 거의 1년 만에 나왔다.
이스라엘은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해왔다. 최종 해결책은 반드시 팔레스타인과의 협상 결과를 통해 도출돼야 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 전제 조건이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지만,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반대하기 때문에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하마스는 난민들에게 돌아올 권리가 보장된다면, 이스라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1967년 사실상의 국경을 기반으로 한 임시 팔레스타인 국가 상태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중동 전쟁 당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이후 정착촌 약 160개를 건설해왔으며, 현재 이곳에 유대인 70만 명이 살고 있다. 이 지역에는 이들과 팔레스타인인 약 330만 명도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주도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된 이번 가자 전쟁 이후,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과 그들의 재산을 대상으로 한 정착민들의 공격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