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AfD당의 역사적 약진이 유럽에 갖는 의미는?
'지각변동', '사회·정치적 지진', '독일의 분수령.'
정치 분석가들과 많은 언론 매체들은 지난 6일(현지시간) 치러진 독일의 한 주 선거에서 반이민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거둔 놀라운 승리를 이처럼 묘사했다. 이는 과연 과장된 표현일까.
동부 작센안할트주는 광활한 독일의 16개 주 중 면적이 가장 작은 곳 중 하나로, 5900만 명에 달하는 전국 유권자 중 이곳의 유권자는 고작 170만 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번 작센안할트주 선거에서 AfD가 압승을 거두기는 했으나 과반 의석 확보에는 가까스로 실패한 상황에서, 이곳의 정치적 분위기는 과연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까.
그 답은 간단하다. '매우 크다.'
무엇보다 독일 국내 정치에 미칠 파장은 만만치 않다.
선거 자체는 한 지역에서 치러졌으나, 그 영향은 국가 단위로 확장된다.
AfD가 이번 선거에서 압승하며 이미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태였던 중도 연립 정부는 더욱 큰 압박을 받게 됐다. 이는 지지도가 바닥을 맴도는 보수 성향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정치적 종말을 고하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그는 AfD의 지지율을 대폭 낮추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유럽이 러시아의 침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변덕, 중국의 경제적 위협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대륙적 위기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의 주요국 중 하나인 독일의 힘을 더 빼놓고 주의를 분산시킬 것이다.
작센안할트주의 이번 선거 결과는 나치 과거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진 독일 전역에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1945년 나치독일이 몰락한 이후 극우 민족주의 정당이 압승한 최초의 사례이며, 이번 경우에는 지역 차원에서 실제로 정권을 잡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독일 당국은 AfD를 일부 측면에서 반민주적 정당으로, 작센안할트주를 포함한 당의 여러 지역 조직을 극우 극단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AfD는 옛 동독 지역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현재는 전국적 여론조사에서도 주요 정당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무래도 독일의 주류 정당은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 실패한 듯하다. 그렇다면 러시아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유럽 최대의 단일 경제 대국인 독일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AfD에 대한 트럼프의 관심
독일의 작은 작센안할트주는 현재 독일 밖에서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다름 아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자신의 SNS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작센안할트주 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재빨리 게시했다.
AfD의 반이민, 반-워크(woke) 주장과 '독일인을 위한 독일'이라는 메시지는 도널드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도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유럽의 다른 여러 민족주의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AfD 또한 트럼프의 정치 전략을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 주류 언론의 영향력을 떨어뜨리고, 판사들의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식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정작 유럽 내 선거 유세 현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은 좀처럼 거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 정치인들은 자국 유권자들 사이에서 이 미국 대통령이 얼마나 인기가 없는지 잘 알고 있다.
한편 6일 밤, 트럼프 대통령이 SNS 게시물을 올린 이후, 영향력 있는 러시아 사업가인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직접투자기금(RDIF)'의 CEO도 등장했다. 그는 AfD의 이번 선거 결과를 "역사적"이라고 평가하며, 독일 연방 정부는 "신뢰를 잃었고", 올여름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의 키어 스타머 전 총리와 비교하며 메르츠 현 총리는 "굴욕을 당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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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이번 일에 이해관계가 있는 이유는?
러시아가 독일의 특정 주 선거에 대체 무슨 관심이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드미트리예프 CEO의 영국을 향한 이 빈정거림은 도대체 무엇일까.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최대 단일 원조국이며, 영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미사일을 제공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러시아는 크게 분노하는 상황이다.
이에 비해 AfD는 상당히 친러 성향을 띠고 있다. AfD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 중단, 대러제재 철회, 훨씬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재개를 원한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독일 산업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이 중단되면서 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이처럼 AfD의 러시아에 대한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은 서부보다 여전히 훨씬 가난한 동부 지역에 또 다른 호소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 정부가 2.3조~3조파운드(4160조~5400조원. 다만 보고서에 따라, 물가 상승률을 고려했는지 여부에 따라 2조~2.6조파운드로 조사되기도 한다)를 투입해 구 공산주의 지역 통합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옛 동독 지역은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다.
작센안할트주는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이곳을 비롯한 동독의 많은 지역의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종종 '오스탈기'가 느껴진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비교적 더 안정적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동독에 대한 향수'를 의미한다.
유럽 전역 정당들의 반응은?
EU 역시 이번 작센안할트 주 선거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앞으로 12개월은 EU의 선거 성수기라고 할 만하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 주요 국가에서 줄줄이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EU는 좌우를 막론하고, 특히 우파 '극단주의' 정당들이 전반적으로 수혜를 보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스페인의 민족주의 정당 '복스'의 대표 산티아고 아바스칼은 6일 X를 통해 작센안할트주에서의 AfD 승리는 "독일과 유럽에 대한 큰 희망"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동맹인 벤자민 하다드 유럽 담당 장관은 "독일의 한 지역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승리했다. 이는 유럽에 있어 중대한 순간"이라고 경고했다.
AfD를 비롯해 '극우'나 '강경 우파'로 분류되는 다른 유럽 정당들은 이러한 이름표를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들은 당의 방향이나 어조 면에서도 서로 다르다. 일례로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의 '국민연합'은 2년 전 AfD가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유럽의회 내 연합에서 AfD를 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당들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반이민 정책과 강력한 민족주의적 메시지야말로 EU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대목이다.
'독일 우선주의'이든, '이탈리아 우선주의'이든, '프랑스를 위한 프랑스'이든 간에 EU는 외부 상황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유럽의 내부 결속이 요구되는 시점에 민족주의 정당이 부상하며 결속력이 흐트러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AfD나 이탈리아의 '리가당'과 같은 민족주의 정당들은 대개 EU 통합에 매우 회의적이지만, EU는 트럼프의 강압적 행태에 맞서거나, 중국의 덤핑 상품으로부터 유럽 기업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상황에서는 유럽이 단결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유럽의 국방 당국 또한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이나 독일의 AfD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의 대러 제재 전열에 균열이 생기거나, 나토(NATO) 회원국 지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가들이 늘어나면 러시아만 더욱 과감해질 뿐이라고 경고한다.
안보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이 단결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발트 3국과 같은 NATO 회원국까지도 공격하고자 기웃거릴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유럽 유권자들도 이러한 외부 위협과 이러한 요소가 자국 내 미치는 영향을 매우 잘 인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의 여파를 걱정하지만, 동시에 자국의 의료 서비스가 붕괴하는 현실과 자신과 가족이 경제적으로 위태로워지는 상황도 걱정한다. 통제되지 않는 이민과 치안 문제 역시 이들의 큰 걱정거리다.
바로 이 점에서 작센안할트 주 선거가 왜 중요한지 명확해진다. 이번 선거는 전통적인 정당들뿐만 아니라 사법부와 보안 기관 등 유럽 전역의 제도권 전체에 보내는 붉은 경고등이다. AfD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기득권'이라며 비난하는 바로 그 기관들이다.
유럽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수십 년간 끊임없이 지지해 온 정당들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 선거 때 좌우로 눈을 돌린다고 해서 모든 유권자들이 갑자기 극단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작센안할트주에서 AfD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슬로건을 내걸며 희망을 말했다. 여기에 더해 독일인들이 다시 국가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정 운영은 전무한 이 정당에 대해 국민들은 점점 더 기꺼이 기회를 주고 싶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