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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로 개 사료를 먹으며 15개월 고립생활…일본 예능이 던지는 시사점

2024.06.16

1998년, 일본의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본 남성이 전라 상태로 거의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남겨졌다.

'나스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하마츠 토모아키에게는 펜과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엽서 몇 장, 전화기, 잡지로 가득 찬 선반만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는 책을 읽기 위해 출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인간이 잡지, 라디오 등에 경품을 응모해 얻은 대회 상금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도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가 받은 상금의 가치가 일정 금액(백만 엔, 당시 약 1000만원)에 도달해야 했다.

그는 15개월간 고립 생활을 하는 동안 배고픔과 고립감으로 인해 서서히 우울증과 조증에 빠졌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나스비가 겪은 시련은 셰필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상영된 새 영화의 일부로 재조명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더 콘테스턴트(The Contestant)'의 감독인 클레어 티틀리는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인터넷의 늪에 빠졌을 때 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제가 접한 내용 중 상당수가 거의 경멸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스비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가 왜 그 공간에 머물렀는지, 그곳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 궁금한 점이 많았죠. 그래서 그의 경험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연락을 취했습니다."

공개 오디션에서 무작위로 선발된 나스비는 자신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영상이 어디에 쓰일지에 대한 설명이 모호했기 때문에 아마도 방송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22살이었던 나스비는 예능 프로그램 '나아가라! 전파 소년'에서 매주 그의 현황을 알려주는 코너가 최고 인기 코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면서 점차 일본 최고의 유명인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비평가들은 대부분 이 프로그램을 싫어했지만, 많은 젊은 시청자들이 이를 시청했다.

이 쇼는 배우 짐 캐리가 자신의 인생이 TV 시리즈로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트루먼 쇼' 개봉 전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빅 브라더'가 네덜란드에서 방영되면서 TV 예능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놓기 1년이 더 남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선구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밖에서는 나스비가 출연한 코너 '경품 응모로만 생활하기'에 대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티틀리는 BBC에 "유튜브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지난 10년 동안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 더 많이 들어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일본과 한국 이외 지역에서는 상영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밖의 국가에서는 절대 방영될 계획이 없었던 거죠."

당시 코미디언 지망생이었던 나스비는 도전을 시작하기 전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는 옷이나 기본적인 생필품, 심지어 화장지도 없이 창문도 없는 방에 갇혀 외부와 단절된 채 남겨졌다.

'더 콘테스턴트'는 나스비뿐만 아니라 당시 코너를 기획한 프로듀서 츠치야 토시오와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한 전직 BBC 일본 특파원을 비롯해 취재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다큐멘터리 제작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야기 대부분이 영상 자체에 담겨 있다. 다큐멘터리 시청자들은 당시 TV 시청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스비의 일과를 따라가게 된다.

티틀리는 자신과 팀이 원본 영상을 '공들여' 살펴보고 원본에서 사용한 효과 대부분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티틀리는 "(원본) 영상은 일본어 자막으로 덮여 있었고 일본어 내레이션, 녹음된 웃음, 음향 효과 등 소음과 자막의 불협화음으로 가득했다"라며 "그래서 영어를 사용하는 시청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팀은 일본어 자막을 영어로 덮고 오디오를 최대한 정확하게 재현했다. 또 영어를 구사하는 내레이터를 고용해 원본 해설을 번역했다.

그 결과물은 이미 미국 훌루를 통해 공개됐고, 평론가들은 나스비가 겪은 시련에 혐오감을 느끼는 만큼 이 이야기에 매료됐다.

롤링스톤의 데이비드 피어는 "('더 컨테스턴트'는) 외면할 수 없는 교통사고이자 시청자 공모 행위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디어 현상의 연대기이자, 기념비적인 예능 TV 프로그램이자, 오락으로 포장된 악몽에 관한 것으로, 시청자들은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것이 100% 사실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에를리히는 원본 영상이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가학적"이라며 다큐멘터리를 위해 새로 촬영한 영상이 이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회고 인터뷰는 솔직하고 사려 깊지만, 나스비의 시련을 담은 원본 영상만큼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티틀리의 영화는 궁극적으로 매체 전반에 대한 논평이라기보단, 그 매체에서 등장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 한 명에 대한 연구입니다."

쇼가 진행되는 동안 나스비는 많은 대회에 참가해 우승했지만, 그가 받은 경품이 항상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쓸모없는 경품으로는 타이어, 골프공, 텐트, 지구본, 테디베어, 영화 '스파이스 월드' 관람권 등이 있었다.

나스비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제작자들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듯 보였는데, 제작자 중 한 명은 다큐멘터리에서 나스비가 쌀을 경품으로 받지 못했다면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나중에 당첨된 가당 음료와 개 사료로 몇 주 동안 살아남았다.

약 1500만 명의 사람들이 나스비가 경품에 당첨되는 모습과 그가 생존을 위해 경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기 위해 TV를 켰다.

나스비는 참가하는 내내 알몸으로 지냈는데, 그 이유는 의류가 당첨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중요 부위는 편집을 통해 가지 모양 스티커로 가려졌다)

아파트 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이론적으로 나스비는 언제든지 원하면 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나스비는 떠나지 않았을까?

티틀리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며 "하나는 그가 후쿠시마 출신으로 엄격한 부모님 아래 자랐기 때문에 매우 금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매우 충성스러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아주 어리고 순진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겨내고 끝까지 버틸 것이다'라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도 갖고 있습니다."

고통의 시간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나스비는 이 쇼를 "잔인하다"라고 표현하며 "행복도 자유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나스비는 미국 매체 데드라인에 "내가 일주일을 살았다면 3~5분 정도만 매주 (방송에)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며 "그리고 그 부분은 (경품을) 타냈을 때 행복감을 강조하기 위해 편집됐다"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아, 저 사람이 뭔가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말하겠지만, 제 삶의 대부분은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나스비는 이러한 경험에 대해 씁쓸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티틀리는그가 매우 "긍정적인 상황"에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티틀리는 "사람들이 그에게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항상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나스비는 마이클 매킨타이어 스타일의 스턴트 액션을 통해 마침내 풀려났다. 끌려간 새로운 가짜 방의 벽이 무너지며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객들 앞에 실시간으로 서게 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탈출 후 나스비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그가 새롭게 얻은 명성을 좋은 일에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티틀리는 나스비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느꼈다고 말하며, "어쩌면 그에게 일어난 일을 평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주의 의무 관행은 오늘날과 다르며, 오늘날 시청자들이 그런 형식을 지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있어 선을 어디까지 그어야 하는지, 그리고 시청자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티틀리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 및 예능 TV 쇼와 자신의 관계를 되돌아보길 바란다"며 "우리 모두가 시청자이자 소비자로서 얼마나 깊이 연루되어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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