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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갈등 심화…애매한 트럼프의 행동이 동북아에 미치는 영향

1일 전
2025년 10월 경주 APEC 참석 차 한국에 온 일본 총리 사나에 다카이치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Reuters

일본과 중국 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 시작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이다. 지난 7일 '대만 유사시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하자 이에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 및 내정 간섭을 주장하며 반발하고 나선 것. 또한 중국은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예고한 것이라며 다카이치 총리를 맹비난했다.

중국의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발언 철회 및 시정 요구는 물론 외교 채널을 통해 '참혹한 대가', '불장난하면 타죽는다' 등 극단적이고 위협적인 수사 사용으로 비난 수위를 높였으며 일본 여행 자제 권고,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 중단 등 경제 보복 조치까지 감행했다.

실제 일본 여행 자제령 직후 3일간 49만 장이 넘는 일본행 항공권이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인기 노선 전체 예약의 약 32%에 해당한다고 한다.

중국은 또한 서해 전역에서 강도 높은 군사 활동을 전개해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였는데, 특히 산둥반도 류궁다오 인근 해역은 청일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전략적 요충지로, 일본을 위협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짙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아울러 일본이 추진하던 한중일 정상회담은 물론 이미 예정되어 있던 한중일 문화장관회의 역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이유로 참석 거부 및 연기 의사를 밝혀왔다.

중국 당국은 '발언 철회'가 없을 시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거론되는 추가 압박 조치로는 일본 여행 금지, 비자 발급 면제 종료,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일본 제품 수입 제한 및 투자 규제 등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련의 대응은 중국이 대만 문제를 핵심 이익이자, 절대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한중일 3국 협력이 취소되는 등 중일 갈등은 이제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렇듯 압박 수위를 높이는 중국보다 일본을 더욱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중국 중시하는 트럼프, 불안한 일본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일본 보도들을 종합하면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문제에 대한 일본 측 입장과 중일 대립 관계 등을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갈등 고조에 대한 우려를 전했을 뿐 동맹국인 일본을 지지한다는 입장은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일 갈등 확산에 반대하고 사태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특히 내년 4월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중일 갈등이 미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무역 협상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 듯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하루 앞선 24일에는 미중 정상 간 통화가 이뤄졌다. 중국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대만의 복귀'가 전후 국제 질서의 중요 구성 부분이라고 말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은 대만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전화통화가 미국 측 제안으로 이뤄졌으며 "통화 분위기는 긍정적이고 우호적이며 건설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미국의 행동은 오히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쓰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 일본이 초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통화 직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시 주석의 초청으로 내년 4월 베이징을 방문한다"며 "그 이후 시 주석이 미국을 국빈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BBC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일본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는 어떤 확신이 중국에게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만 문제를 지적하면 중국은 그 어느 나라라도 '내정 간섭'이라며 지금 같은 반응을 보였을텐데, 더군다나 미국의 대통령이 트럼프이기에 그가 중일 관계에 간섭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김 교수는 "일단 트럼프 입장에서 최근에 어렵사리 중국과 무역 협상을 맺고 한숨 돌린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외교 갈등에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시 주석은 통화에서 "중미 관계는 (무역 합의 이후) 총체적으로 안정됐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와 중국의 관계는 대단히 강력하다"고 답했다.

캐롤라인 레빗 미 백악관 대변인 역시 "이날 전화 통화가 1시간 동안 이어졌다"며 주요 초점은 "중국과 논의해온 무역협상, 미중 관계가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의 성향 자체가 경제나 무역이 아닌 외교안보 이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이렇게 일본을 때려도 미국이 관여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미일 동맹의 내구력을 시험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희토류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도 중국 공급망에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골치 아플 것"이라고 지적했다.

팽팽한 줄다리기

전문가들은 일본과 중국 간 긴장감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중국 전문가인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 이익을 건드렸고,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유사시' 발언을 취소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양국 간 적절한 타협이 이뤄질 수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 매체들 역시 "내부에서는 다카이치 새 내각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이어지고 있다"며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아 양국 갈등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발언을 철회해야 한다, 철회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식의 이분법적 논리로는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 전문가인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이번 대응이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중국에게 올해는 전승 80주년이고 최근 반일 정서가 상당히 높은 시기였고, 또 여기저기에서 시진핑 주석이 다음 연임을 또 노린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온다"며 "중국에게 대만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은 알겠는데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이 좀 과하게 대응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출구 전략을 찾기 위해 일본이 '대만 유사시' 발언을 취소한다고 해도 이는 중장기적으로 일본에게도 결코 좋은 전략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치원에서 중일 갈등이 상당히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 연구위원은 "이날(BBC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한 날)도 원래 중국 출장이 있었다"며 "한중일 3국 회의였는데 중국이 이를 취소하면서 '일본 측 발언으로 불편하다'는 식으로 공식 레터를 보내왔다, 이제 중일 갈등이 더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주변국 민간 협력으로까지 파급 효과가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25년 10월 30일 한국 부산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는 모습
Reuters
2025년 10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국 부산에서 만나 회담을 가졌다

중국의 '통미봉일'?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에게 '베이징을 자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만 주권 문제에 대해 발언의 수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언급을 했다는 것인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어조가 '미묘'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기하라 미노루 일본 관방장관은 즉각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또다른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사태 진정을 위해 협력하자는 뉘앙스의 이야기는 있었다'고 말해 트럼프 대통령이 중일 갈등 고조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음을 시사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이처럼 미일 동맹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미일 동맹은 단순히 양국 간 군사협력을 넘어 동북아시아와 전 세계 안보와 경제 질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동맹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기반으로, 특히 주일 미군은 미국의 글로벌 전략 수행에 있어 필수적인 전진 배치 거점 역할을 한다. 한반도 유사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미중 무역 협상 등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일 관계에 직접 관여하면서 이 사안이 미일 간 불협화음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의향에 따르지 않고 중일 대립이 격화하면 미일 간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인데, 일본 정부 관계자는 "사태가 심각해지면 아베 신조 정권부터 구축해 온 미일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병광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이 국력을 내세워 일종의 통미봉일 전략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미국과 직접 소통하면서 일본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정치적으로 중국이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을 시 주석이 대만 외교에 활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미일 동맹 약화 혹은 한미일 안보 협력 균열 등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최은미 연구위원은 "한미일 안보 협력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입장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에는 북한 문제가 기본으로 전제되어 있지만, 미국과 일본이 생각하는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는 '대만' 문제 역시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만 유사시 한국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게 될 경우, 또한 실제 대만 유사 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국이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하지 않더라도 정보 교환이나 군수 물자 지원 등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면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 안에서 한국의 입장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동맹국인 일본 지지'

박병광 연구위원은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이재명 정부가 한미 동맹 중시 및 한미일 안보 협력 기조를 밝혔고, 일본도 중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한일-미일-한미일 관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더 커지기 때문에 "안보 협력 약화를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도 일본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토미 피곳 미 국무부 수석 부대변인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일 동맹과 일본 방위에 대한 미국의 공약은 확고하다"고 밝혔다.

이어 "미일 동맹은 여전히 인도·태평양 평화·안보의 초석"이라며 "대만해협과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무력이나 강압 등을 통해 현상을 변경하려는 어떠한 일방적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 반대'는 미국이 대중 견제 메시지로 자주 활용하는 문구로, 해당 문구는 지난 14일 한미가 공동으로 발표한 정상회담 팩트시트에도 담겨있다.

조지 글라스 주일 미국대사도 최근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단에 대해 "중국의 전형적 경제 위압"이라며 일본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위압적 수단에 호소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끊어내기 어려운 악습 같다", "동맹국인 일본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러한 지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도 옮겨지고 있다. 미 상원은 지난 18일 '대만 보장 이행법'을 이견 없이 통과시켰고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 절차만을 기다리고 있다.

미 국무부가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재검토할 경우 대만 고위층의 미국 방문을 포함한 양측의 공식 교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18일 "한일-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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