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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음지에 머물렀던 한국 타투이스트들, 이제는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4시간 전

김태남 씨가 지난 23일 서울의 한 무대에 올랐을 때, 그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을 맞이했다.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더 이상 불법이 아니게 된 것,

그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안도감을 드러냈다.

"이건 우리 모두의 노력, 여러분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 같이 외쳐볼까요? 타투는 예술이다!"

관중들은 환호로 화답했다.

이날 서울 성수동의 한 옥상에서 열린 '잉크 밤(Ink Bomb)' 행사에는 90명이 넘는 타투이스트와 예술가들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수십 년 동안 음지에서 이어져 온 바디아트를 공개적으로 기념하는 자리를 가졌다.

행사가 열린 지 불과 며칠 전, 대법원은 타투 시술을 의료행위로 규정했던 1992년 판례를 뒤집었다. 이에 따라 한국 타투이스트들이 수십 년간 이어온 합법화 투쟁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앞서 국회는 지난해 9월 의료인이 아닌 사람의 타투 시술을 합법화했다. 이는 타투이스트들이 단속과 낙인, 괴롭힘에 맞서 오랫동안 벌여온 캠페인의 결과였다.

34년 동안 한국에서는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만 타투 시술을 할 수 있었다. 이를 어길 경우 거액의 벌금이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이 같은 규제는 위생과 안전 문제를 고려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바디아트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여전히 강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측면도 있었다. 여기에 타투를 조직폭력배나 범죄 조직과 연결 짓는 인식까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부정적인 시선은 더욱 굳어졌다.

김 씨는 "정말 먼 길을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가 2004년 타투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썬렛 타투(Sunrat Tattoo)'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첫 작업실은 지하에 마련했으며 간판도 없었다. 오직 소개를 받은 사람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2008년 '잉크 밤' 행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포되거나 기소될 수 있다는 위협 때문에 행사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올해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다시 행사를 열게 됐는데, 이제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함께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행사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타투이스트부터 펑크록 음악 팬, 10대 자녀와 함께 온 부모들까지 얼굴도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타투 시술은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 타투 작업에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방문객들은 타투이스트들이 제작한 스티커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많은 이들에게 이날은 그저 오랫동안 기다려온 축제의 자리였다.

48세의 허제이 씨는 팔뚝에 새겨진 거북이 타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타투를 의료행위로 보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타투이스트가 되기 위해 의과대학에 가는 사람은 없잖아요."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은 이 아름다운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타투이스트가 기소됐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한국 타투유니온은 매년 최소 50명의 타투이스트에게 법률 지원을 제공했다고 밝혔으며,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벌금 처분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직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2021년 정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타투이스트 수는 약 35만 명에 이른다.

타투이스트 칼리는 지난주 대법원 결정을 접했을 때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신고를 당한 적은 없지만, 주변 동료들이 기소되고 재판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늘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고 했다.

"늘 불안감을 안고 일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이 같은 규제는 타투이스트들을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하기도 했다. 불만을 품은 고객들이 신고를 빌미로 협박하거나 성희롱,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타투유니온에 따르면 피해자의 대부분은 젊은 여성 타투이스트들이었다. 이들은 신고 과정에서 자신 역시 불법 시술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웠다.

한국타투유니온을 설립한 김도윤 씨(활동명 도이)는 "그런 끔찍한 법적 싸움 때문에 일부 여성 타투이스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을 잃은 충격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고, 한국에서 타투이스트들이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일할 권리를 위해 싸우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타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직접 시도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2010년대 들어서는 점점 더 많은 타투이스트들이 유리창과 간판을 내건 채 공개적으로 작업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불법이었지만 한국 타투는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섬세한 선과 부드러운 표현, 때로는 화려한 색감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식 타투는 201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타투이스트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셜미디어에 적극적으로 공유하면서 인기가 더욱 확산됐다.

이제는 가는 선을 활용한 '파인라인 타투(fine-line tattoo)'를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한국 타투이스트들은 여전히 이 분야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타투이스트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등장한 다양한 스타일의 타투가 대중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여기에 스포츠 선수와 배우, 가수 등 유명인들이 자신의 타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인식도 점차 바뀌었다.

소녀시대의 태연, 빅뱅의 태양, 래퍼 박재범, 가수 현아, 다이빙 국가대표 우하람, 배우 한예슬, BTS의 정국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BTS 정국(왼쪽)은 2025년 6월 전역 행사에 참석했으며, 우하람(오른쪽)은 2024 파리 올림픽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 결승전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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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의 우하람(왼쪽)과 전역 후 모습을 공개한 BTS 정국(오른쪽)

하지만 타투를 둘러싼 사회적 낙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타투는 취업 면접이나 격식을 갖춘 모임에서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일부 헬스장과 사우나는 지금도 타투가 있는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거나, 특정 구역에서 타투를 가리도록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설은 "타투가 다른 이용객들에게 위압감을 주거나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김 씨는 "한국 사회는 매우 획일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정해진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이 굉장히 강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거나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면 끊임없는 비판에 노출됩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런 규범을 깨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타투이스트 자격을 인증하고 업계를 표준화하기 위한 새로운 시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관련 제도가 어떻게 마련될지를 두고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법적 분쟁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도이는 2019년 배우 한예슬에게 타투 시술을 한 혐의로 의료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그는 배우 브래드 피트와 스티븐 연, 그룹 엑소(EXO) 멤버 등의 타투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 판결에 따라 도이를 비롯한 수십 명의 타투이스트들은 자신들에게 제기된 혐의가 면소되거나 무죄 판단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이는 "모든 것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동료 예술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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