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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은 엡스타인 사건에서 이제 벗어나야' … 과연 그럴 수 있을까

3시간 전
지난 1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EPA

지난 두 달간 미국 법무부가 제프리 엡스타인의 성매매 수사와 관련된 문서 수백만 건을 공개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는 미국이 이 사건에서 벗어나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토드 블랑쉬 미 법무부 차관은 지난해 11월 의회에서 통과된 관련 법률에 따라 진행된 엡스타인 관련 문서 식별 및 검토 과정이 마무리됐다고 설명하며, 새롭게 기소를 진행할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블랑쉬 차관은 지난 1일 "수많은 서신, 이메일, 사진이 있다"면서 "하지만 이 자료들이 반드시 누군가를 기소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법무부의 문서 검토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미 의회 하원은 자체적인 엡스타인 조사를 계속 추진 중이다. 의회 모독죄로 기소하겠다는 공화당의 위협 끝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번 달 말 의회 증언대에 설 예정이다.

한편 의원들과 엡스타인 피해자들은 추가 공개를 요구하며, 여전히 공개되지 않은 문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처럼 분명 이 사건을 빨리 넘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이 이야기가 얼마나 떨쳐내기 어려운지 사안인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신호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이 논란의 폭풍 속에서 뚜렷한 피해 없이 무사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 문서 공개를 통해 엡스타인이 2008년 성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음이 더 자세히 드러난 전 세계 다른 부유층과 권력층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앤드루 전 왕자, 피터 멘델슨 전 주미 영국대사,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등은 모두 엡스타인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 IT 업계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 등도 공개된 문서에 등장한 이메일과 언급된 자신의 이름에 대해 해명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백악관에서 "이제는 이 국가가 다른 일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했다.

엡스타인과 관련해 꾸준히 자신은 잘못한 바가 없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관해 그 어떠한 내용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관련 문서에는 그의 이름이 6000번 이상 등장한다. 엡스타인과 그 측근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자주 언급했다.

둘다 뉴욕과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에 거주지를 두고 있던 트럼프와 엡스타인은 1990년대 대부분 기간 친분이 있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사이가 틀어졌다.

12월에 공개된 이메일 중 트럼프 관련 언급 하나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

엡스타인은 2011년 유죄 판결을 받은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트럼프가 바로 그 짖지 않은 개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며 "(피해자가) 내 집에서 그와 함께 몇 시간을 보냈는데도 … 그는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고 적었다.

트럼프와 엡스타인이 나란히 포착된 사진
House Oversight Committee
1990년대 어느 파티장에서 촬영된 트럼프와 엡스타인 사진. 트럼프 대통령은 2000년대 초반 사이가 틀어졌다고 말한다

가장 최근에 법무부가 공개한 사건 자료에는 FBI가 접수한, 대부분 검증되지 않은 제보 목록도 포함돼 있다. 이중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 출마했던 2016년에 접수된 제보도 있으며. 트럼프와 엡스타인 및 기타 유명 인사들이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는 의혹 등이 담겨 있다.

뒷받침할 증거가 없는 내용이 대부분인 이러한 FBI 제보는 지난달 31일 법무부 웹사이트에서 일시적으로 사라지기도 했는데, 이는 법무부가 현 대통령을 보호하려 한다는 의혹을 더 부채질하는 결과만 낳았다.

법무부는 이번에 문서를 공개하며 "일부 문서에는 2020년 선거 직전 FBI에 제보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허위적이고 선정적인 주장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주장은 근거가 없고 거짓이며, 조금이라도 신빙성이 있었다면 이미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하는 무기로 이용됐을 것입니다."

트럼프와 관련된 새로운 사진 몇 장이 더 공개됐으나, 기존에 공개된 사진이나 영상보다 특별히 더 많은 내용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메일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과 직접 소통한 기록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나온 정보 중 엡스타인과의 우정은 2004년경 끝이 났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반박하는 내용도 없다.

정치적 파장을 일으킬 폭탄에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2년 엡스타인의 생일 기념책에 실리도록 그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외설적이고 암시적인 메모이다. 그러나 이 자료는 정부가 아니라 엡스타인 유산 관리인이 공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날조된 것이라며 강하게 부인한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법무부가 유죄를 입증할만한 문서를 은폐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민주당 소속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성명을 통해 "(법무부는) 모든 문서가 공개됐다고 말한다. 공범자 메모, 기업 보호 메모, 팜비치 경찰의 원본 보고서 등이 모두 포함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라는 단어가 언급된 모든 문서가 공개된 것입니까?"

한편 엡스타인의 피해자 중 한 명인 리사 필립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다른 생존자들은 법무부의 대응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법무부는) 우리의 3가지 요구를 모두를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첫째,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가 많습니다. 둘째, (법이 정한) 공개 시한을 한참 지났습니다. 세번째, 법무부는 여러 피해자의 이름을 그대로 공개했는데, 이는 괜찮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들이 우리를 농락한다고 느낍니다만, 결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현 행정부가 모든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는 데 명백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트럼프 지지층에서는 분노와 좌절감이 고조된 바 있다. 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여겨진 요소이나 이번에 새롭게 공개된 문서들로 인해 이러한 감정도 다소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 전 하원의원 같은 일부 비판자들은 여전히 대통령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통령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 대부분은 이제 엡스타인 관련 뉴스에서 관심을 돌린 듯하다.

현재 이들의 시선은 미니애폴리스에서 계속되는 시위, 2020년 대선 투표 사기 의혹에 대한 FBI 수사 등 다른 주요 사안으로 분산됐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선 민주당은 법적 요건을 근거 삼아 공개된 문서의 비편집 원본을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클린턴 전 대통령의 증언은 중대한 정치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법무부의 조치와 무관하게 독립적인 새로운 폭로가 나오면 대중의 관심은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민주당 의원들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자신들이 하원을 장악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공화당 인사들에게도 증언대에 서라는 소환장을 발부하겠다고 공언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는 국가가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엡스타인이 사망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은 여전히 자체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또 한번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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