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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러시아 파병' 공식 인정…어떤 의미 있나?

2025.04.28
김정은과 푸틴
SPUTNIK/KREMLIN POOL/EPA-EFE/REX/Shutterstock

북한이 한때 부정하고 오랜 시간 침묵해 왔던 러시아 파병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28일 "러시아연방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모험적인 무력침공을 격퇴하기 위한 쿠르스크 지역 해방작전이 승리적으로 종결됐다"라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서면 입장문을 전했다.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수반의 명령에 따라 쿠르스크 지역 해방작전에 참전한 우리 무력 구분대들은 높은 전투정신과 군사적 기질을 남김없이 과시하였으며 대중적 영웅주의와 무비의 용감성, 희생성을 발휘하여 우크라이나 신나치 세력을 섬멸하고 러시아연방의 영토를 해방하는 데 중대한 공헌을 했다"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북한군의 참전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러시아는 이에 앞서 지난 26일 북한군의 파병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화상회의에서 "쿠르스크 해방 작전에 참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인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라며 북한군의 "영웅적 행동"을 칭찬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쿠르스크 지역을 탈환했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 군은 쿠르스크와 벨고로드 특정 지역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군 정보 당국과 한국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러시아 파병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 국무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까지 내용을 확인하면서 사실상 파병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였지만, 북한과 러시아는 이를 부인했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북한이 파병 사실을 공식 인정한 의도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

협상 카드

전문가들은 미국의 중재로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 협상(휴전 및 종전 협상)에 주목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BBC 코리아에 "휴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북러 간 협력이 매우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러시아가 미국이나 우크라이나와의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북한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전쟁 과정에서 상당 부분을 기여했다는 것을 과시하고 나아가 전후 복구 사업에서의 선점 효과를 노린 부분도 있을 것"이라며 "이후 북한 공병 등 노동 기술자들이 복구 과정에 대거 투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동시에 북한 입장에서도 국제 사회에서의 존재감을 높이고 추후 협상 우위를 점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푸틴 종전협상 교착 속에서 북러 동맹을 강조하며 미국과 서방에 압박을 가하고, 북한의 협상 지렛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올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미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지난 27일(현지시간) 미 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대화를 재추진하기 위해 내부 논의와 전문가와의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 협정 체결이 북미 회담의 물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응급치료 매뉴얼 책자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지난 1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 북한군 병사로부터 획득한 한국어 응급 치료 매뉴얼 책자

파병 북한군의 향방

향후 북한군이 철수할지, 우크라이나 본토로 재배치될지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만약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본토로 재배치될 경우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당은 이번 입장문에서 상당 부분을 참전 명분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러시아연방 경내에서 진행된 공화국 무력의 군사활동은 유엔헌장을 비롯한 국제법과 조-로(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의 제반 조항과 정신에 전적으로 부합"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후 북한과 러시아는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관련 조약에 서명했다. 조약 제4조는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당할 경우 지체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 입장에서는 쿠르스크가 우크라이나에 침공당한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조약에 따라 북한이 참전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북한군이 루한스크·도네츠크·자포리자·헤르손 등 국제 사회가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로 보내질 경우 북러 조약 4조를 파병 근거로 내세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담한 것은 유엔 헌장과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명백한 불법적 행위"라며 "이를 공식 인정했다는 것도 스스로 범죄 행위를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 시점에서 북한군 재배치 여부는 확신할 수 없고 국제사회의 제재 등이 더 이상 유효하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북한이 북한군 피해 규모나 국제사회에서의 명분 등을 고려했을 때 재배치를 하지 않는 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김정은이) '쿠르스크를 탈환해서 정리했다'라는 선에서 끊는 것이 북한 정권에 유리할 것인지, 아니면 4개 지역에 다시 (북한군을) 재배치해서 러시아를 계속 도와주는 것이 유리할 것인지 생각을 하지 않겠어요? 내가 김정은이라면 조약 제4조에 걸맞게 명분도 가져가면서 북한군의 추가 희생 없이 승리로 포장하면서 마무리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지난 1월 서방 정부 관계자들은 BBC에 북한에서 파견된 1만1000명의 추정 병력 중 약 1000명이 3개월 간의 쿠르스크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사망자에 부상자와 실종자, 포로 등을 더한 사상자 수는 약 4000명이라고 밝혔다.

더 밀착하는 북러

러시아와 북한이 파병 사실을 거의 동시에 공식화함으로써 북·러 관계가 더 공개적이고, 더 끈끈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다음 달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 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일(전승절) 80주년 기념식에 김 위원장이 참석할지 여부다.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모스크바로 초청한 바 있다.

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다자 간의 만남에 간 적이 없다"라며 "그가 전승절에 여러 국가 지도자들하고 같이 만나는 자리에 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라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러시아의 북한군 파병 공식 확인, 북한군 참가 쿠르스크 지역 탈환 승리 소식 등은 김정은 위원장의 전승절 참가에 대한 긍정적 명분으로 작용 가능"하다면서도 "북한 입장에서는 다자무대의 데뷔보다는 푸틴과의 단독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로부터의 전쟁 참가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봤다.

북한은 이번 파병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경제 및 군사 분야를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대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 교수는 "북한의 참전 인정은 2024년 6월 체결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의 실질적 이행의지와 역량을 보여준다. 이는 북러 동맹이 단순한 상징적 협력을 넘어 실질적 군사 협력으로 발전했음을 의미한다"라며 "향후 북러 간에는 경제협력뿐 아니라 군사분야에서의 협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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