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지난 15일(현지시간) 개막했다. 유세 중 피격을 당한 지 이틀 만에 진행된 이날 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공식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귀에 거즈를 댄 그가 등장하자 대회장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고 지지자들은 그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그리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했다.
암살미수 이후 일각에서 ‘메시아급 개인숭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화당과 지지층에 대한 결집 효과가 크게 강화된 모양새다. 미국의 한 베팅 사이트에서는 피격 사건 이후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70%로 뛰어올랐다. 온라인상에서 ‘저격수는 트럼프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결과적으로는 바이든을 저격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리고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11월 미국 대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여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나토에 회의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우려하며 동맹 공고화 방안을 모색하고 나섰고, 우크라이나는 오는 11월 대선 이전에 평화회의를 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그의 재선이 유럽 경제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재집권이 한반도, 동아시아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북핵, 북러 군사협력, 미중 갈등, 한미일 안보협력 등 한반도 주변국 이슈가 산적한 현 상황에서 그의 재등장은 어떤 바람을 몰고 올까.
김정은과 다시 만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이 꽤나 높다.
트럼프는 그간 유세 현장에서 북한을 자주 언급해왔다. “북한은 거대한 핵 보유국이다, 우리는 좋았다, 나는 김정은과 잘 지냈다”며 김 위원장과의 인연을 과시했다. 18일(현지시간) 미 공화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북한과 "잘 지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는 재임 당시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을 연달아 개최하며 김정은 위원장을 외부로 나오게 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외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는 평가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임성남 전 외교부 차관은 BBC에 “트럼프 본인 스스로 ‘북한을 안정적으로 컨트롤 해왔다’고 강조하고 있고 또 기존의 회담을 성사시킨 업적이 있으니 그것을 더욱 확대∙발전시키고 싶어할 것”이라며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북미간 아무런 대화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계속 증대되고 있고 이런 여건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에도 안성맞춤”이라면서 “김정은 입장에서도 핵을 기반으로 미국 대통령과 또다시 대화를 재개한다면 체제 결속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전 차관은 다만 “3차 북미회담이 개최되는 것과 그 회담이 언제 성사될지, 또 어떤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북한이 핵 보유국 인정, 대북제재 해제 등을 원하는 상황에서 세부 내용을 조율할 때 북미 간 어떠한 역학 관계가 펼쳐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미 두 번의 북미정상회담으로 ‘재미’를 봤기 때문에 어떻게든 성과를 도출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적인 이목을 이끌었고 김정은 마케팅으로 정치적 효과도 충분히 누렸다는 것.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는 늘 탑다운 방식으로 본인이 직접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복잡한 북핵 해법을 도출하겠다는 판단을 한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정권의 목적은 기존 핵을 보유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인데 핵 개발에 무한정 돈을 쏟아부을 수도 없고, 현 바이든 정부와는 관계 개선에 한계가 있으니 김정은 입장에선 상대하기 쉽고 일정 선에서 협상도 가능한 트럼프의 당선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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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문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주한미군 방위비와 관련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한국을 압박했다. 돈 많은 먼 나라를 왜 미국이 지켜줘야 하냐며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내세운 것.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주한미군 주둔을 ‘손해’로 간주하고 "한국의 비용 부담이 푼돈"이라는 주장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상대로 대만을 방어하겠냐”는 질문에 다짜고짜 “우리에게 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만이 우리의 반도체 사업을 모두 가져갔다. 대만은 엄청나게 부유하다"며 안보지원 비용을 대만에 별도로 청구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이에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거래적 외교정책 관점과 모든 거래를 다 이기겠다는 그의 욕망은 전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미국 동맹간 파열음을 초래할 것"이라고 평했다.
따라서 그가 다시 집권한다면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 트럼프 진영은 상호방위 조약이 체결된 한국에도 방위비를 추가로 청구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국은 자국 방어를 위해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매우 부유한 국가가 됐다"며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돈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수사적으로 한국을 압박할 때 주한미군 철수 혹은 감축 언급이 나오긴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한미관계가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방위비 및 미군 철수 문제로 중국 코앞에 있는 나라를 압박하기에는 미국에게도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특히 “2만명이 넘는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서 과연 당장 어디로 보낼 수 있겠나. 미국 내 반발도 반발이거니와, 단계적으로 감군한다 하더라도 수 년은 걸릴 것”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명령하면 철수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실무적인 차원에선 제약 요인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100%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성남 전 차관은 “주한미군 주둔 목적 중 가장 큰 부분은 북한의 위협인데, 만약 3차 북미회담이 이뤄지고 북한의 위협이 제거됐다고 판단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굳이 주한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미국의 해외 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평택 캠프 험프리스는 그 존재 자체로 동아시아의 안정 장치 역할을 하고 있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캠프 험프리스의 지정학적 전략적 위치가 지닌 가치 때문”이라며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것을 포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임 전 차관은 설명했다. 평택에서 중국 다롄까지의 거리는 520km 정도다.
한편 조태열 한국 외교부 장관은 17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시 방위비 인상 압박 가능성에 대해 "이미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때 얻은 경험을 교훈 삼아 여러 상황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중갈등 심화할까?
확실한 것은 중국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에게 ‘적’이라는 사실이다. 현 바이든 정부는 동맹과 협력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것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독자적으로 압박하겠다는 것일뿐, 중국에 대한 인식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가 중시한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인도를 끌어들여 ‘인도태평양전략’으로 확대∙발전시키고 중국을 포위하게끔 만든 인물이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가 출범 당시 트럼프의 모든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이것만은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성남 전 차관 역시 “경제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럼 당연히 미중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보적 측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앞선 트럼프 정부의 대중 봉쇄 압박 정책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사실”이라며 결국 “트럼프가 대만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느냐 여부가 미중 관계에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도 가장 우려되는 미중 갈등 시나리오로 “양국 간 골이 깊어져 대만 해협이나 남중국해 등에서 충돌이 벌어질 경우 트럼프가 과연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을 꼽았다. 미중 경쟁이 대만 문제 등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것.
그는 “미중이 현재는 임시 휴전한 상태로, 시진핑 체제에 현재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이를 안정시키는 데 우선 힘을 쓸 것”이라며 “미국도 대만 여행법까지 만들어 놓고 이를 무시하고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시진핑 주석이 겉으론 어떨지 몰라도 속으로는 바이든 대통령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더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무조건 싸움으로 치닫는다고 해서 미국도 얻을 게 없기 때문에 미중 패권 경쟁 구도를 미리 속단해서 그리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한편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에게는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에서 우위에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향후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한미일 3국은 지난해 8월 정상회의에서 '위기시 협의'를 공약하며 안보 밀착의 강도를 전례없이 높였다. 또 최근인 지난 18일에는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를 열고 올해 처음 실시된 3국 다영역 정례 연합훈련인 '프리덤 에지'를 확대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이들은 공동보도문을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 그리고 3국의 공동 이익에도 중요하다"며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그 너머의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의하고 3국 안보협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18일(현지시간)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다시금 미국 중심의 고강도 대외 정책 등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동맹국이 미국을 이용했다는 불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부유한 나라'들의 무임 승차론을 앞세운 거래주의적 동맹관의 부활을 예고한 셈이다.
한미일 안보협력 역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물론 바이든 시기보다는 그 중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한미일 협력 구도 강화라며 “겨우 단추를 만들어 놓은 만큼 트럼프 2기 역시 중국에 대한 압박 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고 해서 한미일 협력 구조가 근본적으로 와해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바이든 대통령이 주한미군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보다 좋은 날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 한미일 협력이고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어야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굳이 나서서 이것을 깰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히려 “변수는 한일 관계”라며 일제 강점기 성노예, 강제징용, 독도 문제 등이 휘발성이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재집권 이후 북한의 위협이 소멸되거나 감소되는 상황 하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는 중국에게 상당히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다른 전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임성남 전 차관은 “트럼프 1기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은 초기에 딱 두 번 개최됐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미일 안보 협력의 전략적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또 그렇다고 해도 과연 3국 협력을 강화해 나갈지는 여전히 미지수”라고 밝혔다.
아울러 한미일 3국의 안보 협력은 결국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북러 협력 그리고 북러에 의한 안보 위협 역시 사그라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북한 입장에서도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