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타인 문건은 언제 공개되고, 원본 그대로 공개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성년자 성 착취로 유죄판결을 받은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 문건을 법무부가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는 법안에 서명했다.
엡스타인 관련 자료를 "검색 가능하고, 다운로드 가능한 형식"으로 30일 이내에 공개해야 한다는 이번 법안은 지난 18일 미 하원과 상원 모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통과되었다.
하루 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플랫폼 '소셜 트루스'를 통해 해당 법안에 서명했음을 밝혔고, 이에 따라 조만간 해당 문건이 공개될 전망이다.
지난 몇 달간 해당 사건에 관한 연방 수사 문서 공개에 반대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 사건의 피해자들과 일반 공화당원들의 압박 속 지난 16일 법안 처리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대대적인 입장 변화를 보였다.
지난 18일 오전 미 하원은 해당 법안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표결을 진행했다. 이날 의사당 앞에서는 여러 엡스타인 피해자가 모여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법안은 427대 1로 하원을 통과했다. 반대표를 던진 유일한 인물은 공화당 소속 클레이 히긴스 연방의원(루이지애나주)이며, 공화당 소속 의원 2명과 민주당 소속 의원 3명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상원도 법안을 가결했다.
이미 지난주 미 하원 감독위원회가 엡스타인과 관련된 문건 수천 건을 공개했으나, 이번 법안은 현재 법무부가 보유 중인 자료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이론적으로, 이 기록에는 엡스타인의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에 관한 자료, 정부 관료를 포함한 이번 사건에 언급된 인물들에 관한 자료, 법무부 내부 문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트럼프는 언제 이 법안에 서명했나?
19일 아침, 상원은 해당 법안을 가결한 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밝혔고, 같은 날 늦은 저녁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자신 또한 법안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보통 트럼프 대통령의 법안 서명식에는 취재진이 초대되곤 하지만, 이번에는 서명 장면이 공개되지 않았다. 서명 발표 소식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과 연관되었다고 주장하는 민주당원들을 비난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성과를 자랑하며, 트럼프 1기 행정부 중 열린 2차례 탄핵 재판을 비난하는 내용과 더불어 긴 게시물 형태로 공개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원들에 대한 진실, 이들과 엡스타인 간 연관성에 대한 진실이 곧 밝혀질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지금 엡스타인 파일 공개 법안에 서명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또한 자신이 공화당원들에게 이 법안을 지지하라고 요청했기에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엡스타인 문건은 언제 공개되나?
상·하원 표결 및 대통령의 서명까지 모두 완료된 현재, 법무부는 앞으로 30일 이내에 관련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장애물이 존재한다.
하원 법안에 따르면 "대단히 제한되고 일시적인 경우"여야 하지만, 법무부는 "현재 진행 중인 연방 수사나 기소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문서"의 공개는 보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문건 공개 과정에서 지연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며 빌 클린턴, 래리 서머스 등 거물급 민주당 인사들과 엡스타인 간 연관성에 대한 수사를 요구한 바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엡스타인의 범죄 행위에 대해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으며,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2019년까지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며 사과했다.
오하이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에서 헌법을 가르치는 조나산 엔틴 교수는 "이는 잠재적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이 주장에 대한 진지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면, 아마도 검찰은 기소 여부를 검토하는 동안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엡스타인 문건의 전면적인 공개를 요구해 온 쪽에서는 완전한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오히려 더 큰 의구심과 분노를 제기할 것이다.
이미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법무부에 엡스타인 관련 조사를 지시한 것이 이번 기록 공개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공화당 소속 토머스 마시 연방하원의원(켄터키주)는 법무부가 기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을 경우 자신과 공화당 내 동료 비주류 의원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 연방하원의원(조지아주)은 "반드시" 하원 본회의장에서 기록에 등장하는 "일부 사람의 이름"을 낭독하겠다고 경고했다.
일부 편집된 상태로 공개되나?
한편 지연 가능성에 더해 새로 공개되는 엡스타인 문서는 군데군데 편집된 상태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주 하원 감독위원회가 공개한 문서에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름과 전화번호 등은 검은색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엔틴 교수는 "그대로 공개할 경우, 대중이 접하기에 부적절하거나 관련 없는 사적인 정보까지 대량 유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법안에도 법무장관이 피해자 이름, 의료 기록 및 기타 개인정보 등 "명백히 부당한 사생활 침해에 해당할 수 있는" 내용 등의 기록은 "공개 보류하거나 편집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 전문 변호사는 의회가 이러한 조항을 넣어 다행이라면서도, 여전히 이러한 문서가 공개되면 엡스타인 생존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샌포드 하이스러 샤프 맥나이트' 로펌의 워싱턴 DC 사무소 소속 크리스틴 던 파트너변호사는 "법안 자체에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를 강화하는 구체적인 문구가 있다는 점에 환영한다"면서도 "나 또한 투명성은 거의 늘 좋다고 생각하기에 고민이 된다. 누군가 (이 사건에) 빛을 비추기 전까지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는 미디어를 통해 이 사건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점이 힘들 것입니다."
아울러 법무장관은 기밀로 분류된 자료, 성적 학대 이미지 등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미 법무부는 이미 엡스타인 관련 수사에서 확보한 300GB 분량의 데이터 중 상당량이 미성년자 이미지와 영상, 그리고 아동 성착취물 수천 건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문서에 담긴 일부 정보는 대배심 비밀 유지 규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
지난 19일 오전, 팸 본디 미국 법무장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 없는 기자회견에서 엡스타인 문건과 관련한 언론의 질문에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최대한의 투명성을 지키며 법을 준수하고자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추가 보도: 카일라 엡스타인(BBC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