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킬존'에 고립된 군인들의 생명줄이 된 '지상 드론'
"장난감이 배달되었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무전기로 속삭인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이 군인은 전우와 함께 밴에서 화물을 신속하게 내리고자 움직였다. 목숨이 위태로운 러시아 드론의 사정권 내에 있기에 빠르게 움직여야만 한다.
제5여단의 이 새로운 '장난감'은 바로 무인지상차량(UGV)이다. 동부의 전략 요충지인 포크로우스크와 미르노흐라드 전선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로봇이다.
현재 러시아군은 이 지역 내 우크라이나군의 보급로를 끊고자 거듭 노력하고 있다.
식량과 탄약이 제때 공급되지 않는다면 전선의 병사들은 항복하거나 큰 희생을 치르며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측은 포크로우스크와 그 주변 지역의 병력을 강화하고자 특수부대, 정예 공격 부대, 드론 부대 등을 보내고 있으나, 러시아가 도시 진입로를 장악한 탓에 장갑차로 접근하는 것은 거의 확실히 죽음을 의미한다.
무거운 보급품을 보병이 운반하는 것 또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바로 이때 '지상 드론'으로도 알려진 UGV가 유용하게 활용된다.
포크로우스크 전투는 UGV가 대규모로 투입된 최초의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UGV는 주로 보급품 수송, 부상자 이송 등에 활용됐다.
UGV는 자전거 도로에서 달릴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으며, 그 형태는 포탑이 없는 소형 탱크를 닮았다. 외부에서 탐지하기 어렵고, 공중 드론보다 교란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인들은 안전한 후방에서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 제7군단의 무인 시스템 책임자 이호르에 따르면 UGV는 병사들의 생명을 지켜주고 있으며, 군대의 미래와도 같다. 포크로우스크 전선으로 향하는 물자의 약 90%가 현재 UGV를 통해 전달된다고 한다.
한편 러시아군은 보급로를 차단하는 한편, '킬존'이라 불릴 만큼 접전지인 이 지역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향해 원격 조종 드론을 끊임없이 보내며 이 곳을 장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전선을 따라 30km 폭으로 펼쳐진 이곳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의 드론 사정권 내에 있다.
수시로 공중 순찰이 이루어지기에 이곳 킬존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드론은 물론 각종 포탄과 공중 폭탄과 같은 재래식 무기에 의해 빠르게 탐지되어 공격 대상이 된다.
의무병인 '비치크'와 UGV 조종사 '오디터'는 이러한 상황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비치크'와 '오디터('회계감사관'이라는 뜻)'는 이들의 본명이 아닌 콜사인(호출신호)이다.
지난달 비치크와 오디터는 포크로우스크에서 부상당한 자국 군인들을 후송하고자 했으나, 순식간에 발각되는 바람에 고작 몇 초 만에 윙윙거리는 러시아 드론을 피해 근처 민가로 달려가야만 했다.
비치크는 "드론이 연이어 우리를 공격했다"면서 "드론 하나가 땅에 떨어지며 폭발하니 바로 다른 드론이 나타났다. 또한 그들(러시아는)은 우리를 죽이고자 포탄도 쏘아댔다"고 회상했다.
이들이 숨은 건물 벽은 폭발음이 울릴 때마다 흔들렸다. 포격은 59분가량 지속되었고, 이후 이들은 근처 건물로 재빨리 대피한 뒤 탈출할 수 있었다.
포크로우스크 도시 상공에서는 언제나 드론 위협이 도사린다.
비치크는 "우리는 덤불 사이를, 민가 사이를, 거리 사이를 이동할 때마다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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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포크로우스크로 향하는 모든 진입로는 차단하고자 일명 '일인칭 시점(FPV)' 드론을 끊임없이 날려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미 이 지역 전체를 포위했다고 말하나, 우크라이나 측은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거듭 부인하고 있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HUR) 국장은 현지 언론에 포크로우스크 상황이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자국군이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포크로우스크 내에서, 주변에서 병력을 이동시키는 행위는 극도로 위험하다. 이에 우크라이나 군은 병력 교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곳 전선의 군인들은 몇 주 혹은 몇 달씩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급품 전달은 더욱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고, UGV의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제5여단 소속의 한 부대는 UGV를 이용하여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물자를 실어 나른다.
이러한 임무의 시작점은 낡고 초라한 창고이다. 취재진은 드론 조종사들에게 물, 탄약, 연료를 전달하는 임무를 지켜볼 수 있었다.
물자는 약 200kg을 운반할 수 있는 '테르미트'라는 UGV에 실린다. 조종사는 원격 조종으로 UGV를 밴 뒤에 싣는다. 이후 배터리 소모를 줄이고자 밴이 UGV를 싣고 전선 가까이 다가간다.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두워지자 군인 2명이 밴에서 뛰어내린 뒤 UGV를 내보낸다. 그중 한 명은 무전으로 통제실에 UGV를 지상에 내려두었다고 고한다.
몇 초 만에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조종사가 로봇과 연결되었음을 확인하고, UGV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지난해부터 일부 우크라이나 여단에서 테르미트 같은 로봇을 사용하긴 했으나, 최근 몇 달간 점점 더 수요가 커지고 있다.
제79여단 작업장에서는 과거에는 공중 원격 조종 드론만 제작하던 기술자들이 이제는 전투 지역에 투입하기 위한 UGV 개량 임무를 맡고 있다. 위장 도색도 새로 하고, 용접도 다시 하고, 추가 통신 장비도 장착한다.
그러나 이렇게 개량하였음에도 여전히 UGV는 공중 드론 공격에 취약하다.
콜사인이 '로이어('변호사'라는 뜻)'인 UGV 조종사는 "아무리 잘 숨기고, 어떤 통신 방식을 쓰고,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든" 간에 드론이 너무 빨리 탐지하여 파괴해버린다고 토로했다.
한번은 포크로우스크에서 부상병을 후송하던 중, 로이어의 UGV가 지뢰를 밟아 손상되기도 했다. 다른 부대에서 또 다른 UGV를 급파하였으나 이조차도 파괴되었다. 로이어는 이 '부상병'이 끝내 살아서 탈출했는지 아직도 모른다고 했다.
제7군단의 이호르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도시 접근에 성공하는 UGV는 3대 중 1대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로봇이 임무를 달성하지 못하고 도중에 적발되나, 전선의 군인들에게 이 로봇은 여전히 생명줄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