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새 대통령' 이재명 앞에 놓인 트럼프발 위기
이재명 후보는 지난 3일 치러진 대선에서 폭풍 같은 승리를 거머쥐며 한국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승리를 만끽하는 꿀같이 달콤한 기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야당 대표 출신인 이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당선인에게 주어지는 2개월의 정권 인수 기간을 누리지 못한다. 보통 이 기간 당선인은 행정부를 구성하고 국가 비전을 확립한다.
대신 지난해 12월 국가 비상사태 선포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며 물러나며 그 공백을 메우고자 즉시 취임하게 되었다.
이 대통령이 49.4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번 대선에서 한국 유권자들은 강제로 이루어질 뻔한 군사 독재 체제를 단호히 거부했다.
지난 6개월간의 분열과 혼란을 뒤로 하고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내걸며 선거에 나섰다.
그러나 그 약속은 잠시 미뤄야 한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발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앞으로 몇 달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 안보, 북한과의 불안한 관계 등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했을 때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미 철강, 자동차 등 한국의 핵심 산업에 대해 공격적인 관세가 부과된 이후였다.
6·25 전쟁 이래 양국은 오랫동안 군사 동맹 관계를 유지해왔고, 자유 무역 협정도 체결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은 이런 조치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기대가 빗나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 자문인 문정인 전 외교안보특보는 "이러한 관세가 실제로 시행된다면,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이전부터 한국 경제는 이미 둔화하고 있었다. 게다가 계엄령으로 인한 혼란으로 상황이 악화하며 올해 1분기에는 경제가 역성장하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경제 문제 해결은 유권자들의 최우선 요구 사항이었다. 심지어 위태로운 민주주의 회복보다도 더 시급한 과제로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부재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은 중지된 상태다. 그러나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이번 협상에서 걸려 있는 것은 한국 경제만이 아니다.
미국은 핵을 지닌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동원한 방어를 약속하며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고 있다. 그 약속의 일환으로 현재 한국에는 미군 약 2만 8500명이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협상에서 무역과 안보를 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으며, 한국이 두 분야에서 충분한 몫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견해를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4월 자신의 SNS 플랫폼 '트루스 소셜'을 통해 한국과의 초기 관세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 보호 비용에 관해 논의했다"고 밝히며 "이는 아름답고 효율적인 원스톱 쇼핑"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한국을 유난히 취약한 위치로 몰아넣는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우려했다.
"우리 생애 처음으로 한국에 대해 도덕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 미 대통령의 등장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당시에도 주한미군의 가치를 의심하며 한국이 더 많은 비용을 분담하지 않을 경우 병력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번에는 더 많은 주둔 비용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방위비 지원을 늘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나, 부담할 능력은 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와 미 국방부의 계산이 변했다는 점이다.
이제 이 문제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아시아 내 최우선 과제에는 이제 북한의 남한 공격 억제뿐만 아니라 중국의 아시아 및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야심 억제도 포함된다.

지난해 미 국방부 고위 관료인 엘브리지 콜비는 미국이 중국과의 싸움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자체 방어에 "압도적으로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한 가지 방안은 주한 미군이 중국 견제 주력으로 임무를 전환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지난달 몇몇 미국 국방부 관계자 언급한 대로, 미군 병력 수천 명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시키는 동시에 한국군도 중국 견제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되면 한국은 군사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질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매우 난처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한편 미국과의 동맹에 대해 지금껏 회의적 입장이었던 이 대통령은 당선 이후 막강한 힘을 지닌 이웃이자 주요 파트너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 그는 여러 차례 한국은 중국과 대만 간 갈등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달 TV 토론회에서도 "우리는 중국-대만 긴장 관계에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우리는 양측과 모두 잘 지낼 수 있다"고 발언했다.
문 전 외교안보특보는 "우리는 미국이 우리를 버릴까 봐 걱정하지만, 동시에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 가두려는 미국의 전략에 휘말리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이라며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우려를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미국이 우리를 위협한다면 (군을) 철수시키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이재명, 트럼프, 중국이라는 세 요소의 결합이 "완벽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두 지도자의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면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이 훼손될 것입니다."
한편 북한의 김정은 지도자는 현재 상황을 주시하며 변화하는 환경을 활용하려 들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상태로, 1기 행정부 시절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북한의 지도자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그 누구도 김정은을 설득해 핵 축소를 끌어내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후 2019년에 합의 없이 종료된 김정은과의 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에서는 이번에 북미 정상이 한국에 매우 불리한 합의를 맺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고수하며 북한에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서울을 겨냥한 단거리 핵무기 문제는 다루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김정은은 큰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2019년에 비해 김정은의 협상력은 더욱 향상되었다. 그는 더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무기 수준도 더 발전했다. 아울러 그의 정권을 압박하고자 도입된 제재들은 대부분 무력화되었다. 여
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김정은에게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큰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김정은은 미국에 더 대담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을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고, 핵무기 전면 폐기 대신 감축하는 협정에는 동의할 수도 있다.
혹은 미국에 병력 등 한국에 제공하는 안보 지원 일부를 철회하라고 제시할 수도 있다.
2019년 협상에 참여한 바 있는 시드니 세일러는 "현재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 북한"이라면서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지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주한미군 철수 같은 내용이 (북미 간 합의에) 포함될 가능성도 결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일러는 미국이 "한국을 그저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조기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구축하라"는 조언과 함께 만약 협상이 진행될 경우 모든 과정에 한국이 참여할 수 있길 바란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 또한 신임 대통령은 모든 분야에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 대통령의 첫 번째 과제는 회의적이고 거래 중심적인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왜 한국이 미국의 필수적인 파트너인지, 왜 미국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이 기대하는 주요 설득 지점 중 하나는 선박 건조 기술이다. 한국은 세계 최대의 선박 건조국이자 최대 해군 함대를 보유한 중국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선박을 만드는 국가다. 중국의 이 같은 능력은 자체 조선업과 해군이 쇠퇴 중인 미국에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BBC는 한국 남해안에 자리한 세계 최대의 조선소인 울산의 현대중공업 조선소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해군 구축함을 포함해 연간 신규 선박 40~50척을 생산하고 있다. 튼튼한 크레인들이 금속판을 조립하며 작은 마을 크기만 한 선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국은 이러한 조선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의 군함을 건조, 수리, 정비하며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정우만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상무는 "미국의 조선업의 위기는 미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협상 카드 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성급히 합의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제 집권하게 된 그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