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불 해협의 이민자: 수많은 베트남인들이 국외로 떠나는 진짜 이유
지난 2024년 상반기 소형 보트로 영불 해협을 건너 영국에 도착한 이들 중에 베트남 출신이 가장 많았다.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베트남인들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영국에 가려고 아는 것일까.
푸엉(가명)은 작은 고무보트를 바라보며 정말 저기에 타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이미 보트는 70명이 가득 차 있었고, 물에 겨우 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렵고, 지치고, 절망스러운 감정이 가득했다. 심지어 구비된 구명조끼도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푸엉의 상황은 더없이 절박했다. 베트남 출신 여성인 그는 프랑스로 건너오는 데 성공했으나, 2달간 프랑스에 발이 묶이면서 관목이 우거진 숲에 자리한 텐트에서 지냈다.
이미 푸엉은 위험할 정도로 탑승 인원이 많다는 이유로 소형 보트 탑승을 거부한 바 있다. 또 악천후, 엔진 고장 등으로 인해 영불 해협 한가운데에서 다시 프랑스 땅으로 돌아간 것만 해도 3번이다.
현재 영국 런던에 사는 푸엉의 자매 히엔은 프랑스에 있는 푸엉이 눈물을 흘리며 전화를 걸곤 했다고 회상했다.
"푸엉은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의욕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푸엉은 경비를 마련하고자 약 2만5000파운드(약 4500만원)을 빌린 상태였습니다. 되돌아가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푸엉은 기어이 배에 몸을 실었고, 현재는 합법적인 신분 없이 히엔과 런던에 살고 있다.
푸엉은 두려움이 커서 BBC와 직접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다. 이 이름도 가명이다. 취재진은 현재 영국 시민권자인 히엔을 통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24년 1~6월 기준, 소형보트로 영국에 들어오는 사람 중 베트남 출신이 2248명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등 인권 유린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를 제치고 가장 많았다.
영국으로 가기 위한 베트남 이민자들의 비상한 노력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며, 2024년 BBC도 베트남 중개 조직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람들을 밀입국시키고 있는지 보도한 바 있다.
큰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부 베트남 이민자들은 결국 성매매 목적으로 팔리거나, 불법 마리화나 농장으로 팔리기도 한다. 영국에서 자신들은 현대판 노예제의 피해자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이들 중 10분의 1 이상이 베트남 출신이다.
한편 베트남은 빠른 경제 성장률을 바탕으로,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작은 중국'이라는 찬사를 듣는 나라다. 베트남인들의 1인당 소득은 20년 전에 비해 8배나 뛰어 올랐다. 게다가 열대 지방 특유의 해변과 풍경에 저렴한 물가까지 더해지며 관광지로도 더욱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많은 베트남인들은 고국을 떠나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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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베트남인의 이야기
일당제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대부분의 인권 및 자유 관련 지수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한다. 이곳에서 정치적 반대의 목소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나마 당국에 목소리를 높이던 소수의 반체제 인사들도 괴롭힘을 당하거나 투옥된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공산당(베트남 공산당은 경제 성장 기록을 바탕으로 집권 정당성을 주장한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그렇기에 정치적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가난을 견디다 못해 오는 것도 아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인구 1억 명의 베트남은 거의 독보적인 빈곤율 감소 기록을 세운 국가다.
오히려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눈부신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기는 하나, 냉전이 끝난 1989년 이후에서야 성장하기 시작한 탓에 대부분의 아시아 이웃 국가에 비하면 훨씬 뒤처진 상태다.
그 결과 베트남의 평균 임금은 월 230파운드(약 42만원) 정도로 태국 등 이웃 국가에 비해 훨씬 낮으며, 550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 중 무려 4분의 3이 사회적 보장 장치가 없는 비공식 일자리에 종사한다.
싱가포르 소재 'ISEAS – 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베트남 전문가인 응우엔 칵 지앙은 "(수도) 하노이와 같은 대도시와 농촌 지역 간 격차가 엄청나다"며 말을 꺼냈다.
"고급 기술이 없는 노동자 대부분이 유리 천장 아래 살아갑니다. 하루 14시간씩 열심히 일해도 집을 짓거나, 가정을 꾸릴 만큼의 돈을 모으지 못하는 것이죠."
푸엉 또한 베트남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하이퐁 출신임에도 이러한 현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편 자매인 히엔은 9년 전 선적 컨테이너를 타고 밀입국해 영국에 들어왔다. 당시 히엔은 2만2000파운드를 들여 영국에 왔으나, 식당 주방과 네일숍에서 열심히 일해 2년 만에 이를 다 갚을 수 있었다. 이후 히엔은 이미 영국 시민권을 가진 베트남 남성과 결혼하여 딸을 낳았고, 현재 세 사람 모두 영국 시민권자다.
히엔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하이퐁에서는 일자리가 부족해졌고, 38세였던 푸엉은 히엔처럼 살고 싶어 했다. 돈을 모으고, 가정을 꾸리는 삶이다.
"베트남에서도 먹고 살 수는 있으나, 푸엉은 집이나 더 나은 삶, 안정된 삶을 원했습니다."
호주 멜버른 대학교의 란 안 호앙 개발학 교수는 지난 수년간 이주 패턴을 연구하고 있다.
호앙 교수는 "(베트남에서는) 20~30년 전만 해도 모두가 가난했기에 굳이 해외로 이주하려는 충동이 강하지 않았다"면서 "사람들은 소 한 마리, 오토바이 1대, 하루 3끼로 행복해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몇몇 사람들이 독일이나 영국으로 이민을 가더니 그곳의 대마초 농장에서 일하거나 네일샵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본국에 엄청난 돈을 보내왔죠. 베트남에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 상황이 (객관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음에도 유럽에서 일하는 이민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하다고 느낍니다."
'따라잡아 부자가 되자'
해외로 이주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이러한 전통은 과거 베트남 남부에서 미국이 패배하고 베트남이 소련과 동맹을 맺었던 7,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트남의 국가 주도 경제는 바닥을 쳤다. 수백만 명이 빈곤에 시달렸으며, 일부 지역은 식량이 부족했다. 이에 베트남인 수만 명이 폴란드, 동독,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에 노동자로 떠났다.
또한 이 시기는 주로 화교로 구성된 보트피플 80만 명이 베트남 공산당의 억압을 피해 위험한 남중국해를 건너 결국 미국, 호주 또는 유럽에 정착한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베트남 공산당은 어려운 국가 경제로 인해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이에 1986년 결국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세계 시장에 문을 열며 급격하게 정책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베트남 국가의 새로운 화두는 단연 어떻게든 따라잡아 부자가 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베트남인들에게 이는 해외 이주를 의미했다.
호앙 교수는 "베트남에서는 돈이 곧 신"이라면서 "즉 '좋은 삶'이란 부를 쌓을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베트남 중부 지역의 경우 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도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가족 전체가 집안 내 젊은 청년 한 사람의 이주 자금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먼저 외국으로 건너가서 가족들에게 많은 돈을 송금해 줄 것이고, 다른 가족 구성원의 이민도 결국 가능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돈: 성공한 이민의 전리품
응에안은 수도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다. 이곳의 논밭 사이를 이동하다 보면 한때 작은 콘크리트 집들이 모여 있던 곳에 새로 지어진, 빛나는 대문이 달린 큰 집들을 볼 수 있다.
군데군데 이러한 새 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서방 세계에서 일하며 보내온 돈 덕이다.
이렇듯 새 집은 해외에서 돈을 벌어 금의환향한 이들이 이룬 성공의 상징이다.
현재 공급망 다각화를 꿈꾸는 전 세계 기업들이 베트남을 중국의 대체제로 눈여겨보면서 베트남의 외국인 투자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투자는 응에안과 같은 가난한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애플'의 주요 협력업체인 '폭스콘' 등 여러 외국 기업이 현재 응에안에 공장을 짓고 있다. 이에 새로운 일자리 수천 개가 생겨났다.
하지만 비숙련 노동자는 초과 근무 수당을 합해도 1달에 300파운드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이는 영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중개인들의 달콤한 속삭임에 비하면 부족한 액수다.
중개업체
영국행을 꿈꾸는 이들을 돕는 산업도 호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업체들은 겉으로는 여행사 혹은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은 해외 근로자들의 이주를 돕는 업체 등으로 포장하나, 실상은 영국 등 다른 유럽국으로의 불법 입국을 돕는다.
영국에서의 삶을 장밋빛으로 묘사할 뿐 위험과 고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중개업자'들은 보통 영국행을 위해 1만5000~3만5000파운드 정도의 비용을 요구한다. 헝가리는 이주노동자 비자를 제공해주기에 베트남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EU행 창구다. 더 많은 돈을 낼수록 더 빠르고 쉽게 유럽으로 갈 수 있다.
미국, 영국, UN은 베트남 공산당 당국에 더 철저한 밀입국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베트남이 해외 송금액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약 130억 파운드에 달하며, 베트남 정부는 취업 이주를 정책적으로 장려한다. 물론 합법적인 경로를 통한, 주요 아시아 내 부국으로의 이주를 권한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공식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해외로 떠난 베트남인들은 2024년 기준 13만 명을 웃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 프로그램은 그 수수료가 비싸고, 영국에 비하면 받을 수 있는 임금도 훨씬 낮다.
2019년 영국 에식스에서는 화물차 컨테이너 안에서 베트남인 39명이 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영불 해협을 건너고자 이들이 이 밀폐된 차 안에 실려 이동하다 질식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불법 이민 경로의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하지만 해당 사건으로도 밀입국 중개업자들을 찾는 수요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화물차 컨테이너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면서 중개업자들은 해협을 건널 또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고, 이에 따라 소형 보트를 이용하는 베트남인들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비극을 압도하는 성공담
2019년 당시 사망한 베트남인 중 하나인 르 반 하의 사촌이라는 한 남성은 "39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날의 비극은 거의 잊혔다"고 토로했다. 르 반 하는 아내와 어린 두 자녀 및 막대한 빚을 남겼다.
익명을 원한 이 남성은 해당 사건 이후로도 지역 사회의 생각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 비극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국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해외에서의 성공담이 위험보다 더 크게 느껴집니다."
당시 희생자 중 3명이 농촌 지역인 꽝빈 출신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곳 지역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졸업 예정자의 80%가 곧 해외로 갈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이곳의 부모들 대부분이 저소득층"이라는 그는 "자녀가 견문을 넓히고,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는 생각은 그리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최우선 사항은 자녀가 어서 빨리 돈을 벌어 본국으로 송금해 가족의 생활 수준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지난해 3월 영국 내무부는 베트남인들의 불법 이주를 막기 위한 SNS 캠페인을 시작했다. 베트남 정부 또한 밀입국중개업자들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 더 매력적인 경제적 기회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신매매 방지 단체 '파시픽 링크'의 공동 설립자인 디엡 부옹은 "한번 캠페인을 벌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면서 "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옹은 1980년 베트남 보트피플 출신으로 베트남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기에 직접 이를 경험한 인물이다.
"베트남인들은 가족을 위해 뭐든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족쇄와도 같죠. 하지만 앞으로 수년간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면 이러한 태도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캠페인에 맞서 성공담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해외로 갔다 실패한(다수가 그렇다) 이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종종 자신들의 경험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하지 않고 침묵한다. 오직 성공한 이들만이 응에안 등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 얻은 부를 과시한다.
응에안 지역 사회에서는 죽은 39명은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