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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총선 여당 압승…글로벌 불안 속 '안정 선택'

2일 전
로렌스 웡 싱가포르 총리가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며 양팔을 높이 들고 미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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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웡 싱가포르 총리는 작년에 PAP 당 대표가 됐다

싱가포르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번 선거는 생계비 부담과 국가 경제 안정에 대한 우려 속에서 치러졌다.

로렌스 웡 총리가 지난해 당 대표에 오른 뒤 처음 치른 이번 총선에서 PAP는 전체 97석 중 87석을 차지했다. PAP 의석 점유율과 득표율은 각각 89.7%, 65.6%로 집계됐다.

싱가포르 유권자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임금 정체, 일자리 전망 등의 고민을 안고 투표소를 찾았다. 이번 결과는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PAP를 선택한 '안정 지향' 표심으로 해석된다.

이안 총 싱가포르국립대(NUS) 정치학과 부교수는 "싱가포르는 경제 규모와 국제 의존도가 높아 특히 취약함을 느낀다"며 "싱가포르 유권자들은 전통적으로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제1야당인 중도좌파 노동자당(WP)은 추가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기존의 10석을 지켜냈다.

중도우파인 PAP는 1959년부터 싱가포르를 연속 집권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정당 중 하나로 꼽힌다. PAP는 특히 당의 치세 아래 국가가 번영하는 모습을 지켜본 고령층 유권자들로부터 두터운 지지를 받아왔다.

선거 부정과 같은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비판론자들은 게리맨더링(선거구 조작)과 언론 통제를 통해 PAP가 부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일 총선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최근 세 차례 선거에서 PAP는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는 와중에 WP는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2020년 총선이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국민투표로 여겨진 가운데 PAP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PAP가 다시 저력을 발휘했다. 유권자들은 웡 총리에게 강한 권한을 부여하며 그를 지지했다. 웡 총리는 4일 새벽(현지시간) TV 연설에서 "싱가포르가 이 격동의 세계에 맞서기 위해 더 나은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며 유권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는 "국제 언론, 투자자, 외국 정부 등 많은 이들이 이번 선거를 주목했고, 오늘 밤의 결과를 지켜봤을 것"이라며 "이는 정부에 대한 신뢰, 안정, 자신감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라고 강조했다. 이어 "싱가포르 국민들도 이번 결과에서 힘을 얻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 지지자들이 선거 유세에서 파란색과 흰색 원 안에 붉은 번개 모양의 당 상징이 그려진 포스터와 깃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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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는 싱가포르 국민, 특히 노년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는 개방적이고 세계화된 구조 덕분에 비교적 탄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몇 년간 인플레이션이 급등했다. 정부는 그 배경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분쟁, 공급망 차질 등 외부 요인을 꼽았지만, 일각에서는 논란이 된 소비세(GST) 인상 조치가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과 10%에 달하는 미국 관세 부과가 예고되면서, 당국과 전문가들은 경기 충격과 기술적 경기침체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PAP는 '안정'을 핵심 메시지로 내세우며 선거전을 치렀다. 웡 총리는 "싱가포르를 폭풍 속에서도 이끌겠다"고 거듭 약속했고, 야당 의원 수가 늘어나면 "유능한 장관들을 잃게 되고, 좋은 국정 운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상당수 유권자에게 울림을 줬다. BBC와 인터뷰한 스타트업 창업자 아만다(가명)는 "경제 상황 때문에 고객들이 일부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등 사업에 영향이 있다"며 "앞으로 불확실성이 큰 만큼 경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내각 장관 연루 스캔들이 잇따랐지만, 선거 기간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에 대한 보다 시급한 우려가 유권자들의 관심을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싱가포르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노인이 포장된 빵 진열대를 둘러보는 동안 옆에서 한 여성이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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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싱가포르인들이 생활비 상승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웡 총리에 대한 신뢰의 표시로 해석했다. 웡 총리는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를 이끌며 팬데믹 동안 대중에게 익숙한 얼굴로 자리 잡았다.

"윙 총리는 코로나19 대응에서 능력을 입증하며 신뢰를 얻었다. 그가 당시 상황의 길잡이 역할을 맡았고, 앞으로 닥칠 글로벌 금융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런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인물로 비친다"고 레베카 탄 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 강사가 말했다.

웡 총리는 첫 선거에서 당의 득표율을 끌어올린 PAP 최초의 총리다. 이전 총리들은 첫 선거에서 흔히 '신임 총리 효과'로 불리는 현상, 즉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확실성을 반영하듯 득표율 하락을 경험했다.

PAP의 강력한 성과에는 분열된 야권도 한몫했다. 10개 야당이 선거에 나섰지만 대부분 부진한 성적을 냈다.

테오 케이 키 싱크탱크 정책연구소의 연구원은 "최근 선거에서 정치적 다양성에 대한 욕구가 드러나긴 했지만, 이번 결과는 현 시점에서 유권자들이 현 야당 의석 수에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싱가포르 유권자들이 이제 야당 투표에 있어서도 더 신중해진 듯하다"며 노동자당의 선전을 예로 들었다.

WP는 생계비 부담 완화와 사회 안전망 강화 공약을 내세웠으며, 비록 추가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기존 지역구에서 득표율을 높였고 PAP와 접전을 벌이며 여전히 최강 야당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최근 WP는 전직 의원과 프리탐 싱 야당 대표가 의회에서 거짓 증언을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논란에 휩싸였지만, 지지층 다수는 싱에 대한 사건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WP 대표 싱은 지역구 개표 직후 지지자들을 향해 "이번 선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모든 것이 초기화됐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노동당 당수 프리탐 싱이 집회에서 연단에 서서 주먹을 공중에 치켜들며 연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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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노동당은 프리탐 싱이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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