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코넬대 사건'이 보여준 캠퍼스 성폭력 신고 시스템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현실

2시간 전

이 기사에는 살해 묘사와 보기 다소 불편한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대학 1학년생이던 메리(가명)는 한 남학생 사교클럽의 파티가 끝난 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온몸에 멍과 물린 자국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또 이를 신고할 용기와 적절한 방법을 찾기까지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

메리가 지목한 남성은 결국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물리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소를 거부했다.

메리는 정의를 찾아가는 이 과정이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웠다고 기억한다.

"결국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긴 했으나, 감정적으로 너무나도 지치고 힘들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해 적응해나가는 시기에 이 모든 것을 해내야 했기 때문"이라는 그는 "여러모로 내가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나 자신을 대변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지역 경찰과 연락하는 과정에서도 "이 시스템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최근 미국 코넬대학교를 졸업한 한 여성이 2년 전 한 남학생 사교클럽 회원 여러 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민사 소송을 제기하면서,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하는 성폭행에 대한 대학과 형사 사법 시스템의 대응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코넬대 사건의 경우, 당시 검찰은 기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

메리는 코넬대학교 출신이 아니며, 그가 겪었던 사건 또한 해당 대학과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성폭력 생존자 지원단체들은 메리의 사건과 코넬대학교 의혹 모두 특히 대학 캠퍼스 내 성폭력 신고 및 그 이후 시스템이 지닌 문제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관련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학마다 제각기 다른 혼란스러운 시스템과 대응 방침은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하는 성폭행 사건 대부분이 신고되지 않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대학 캠퍼스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해 온 미시간주 웨인주립대학교 낸시 치 칸탈루포 법학과 부교수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 않은 사람 조차도 따라가기 힘든 절차"라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면, 이 모든 절차를 밟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학생들의 뒷모습
Getty Images

이달 초, '제인 도(익명의 여성)'로만 알려진 이 여성은 2024년 대학 내 한 남학생 사교클럽 건물에서 약물을 투여당한 뒤 여러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코넬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코넬대 측이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가해 남성들에게 적절한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당시 자신은 캠퍼스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으며, 이후 캠퍼스 경찰이 지방 검찰청에 정보를 넘겼다고도 밝혔다.

당시 검찰은 기소를 거부했으나, 이번 주 뉴욕주 톰킨스 카운티의 매슈 밴 하우튼 지방검사장은 이 사건을 재수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코넬 대학과 밴 하우튼 검사장 모두 2024년 사건 당시 자신들의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우선 대학 측은 성명을 통해 "수개월에 걸쳐 광범위한 조사와 심리를 진행했으며, 각 학생의 조사 결과와 사정에 따라 각각 제재를 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캠퍼스 내 성폭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체계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코넬 대학은 '타이틀 나인'으로 불리는 연방 민권법에 명시된 절차도 준수했다고 밝혔다. 해당 법은 대학이 성폭력 조사 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대학 측은 자체 조사 결과 사건과 관련된 사교클럽은 캠퍼스 내에서 퇴출당했으며, 연루된 학생들은 정학 또는 제적 처분을 받았다고 전했다.

복잡한 두 신고 시스템

일반적으로 학생이 캠퍼스 내 성폭행 사건을 신고하면, 해당 대학의 '타이틀 나인' 담당 부서가 해당 혐의 행위가 방침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판단한다.

이후 당사자들은 교수나 기타 중재자로 구성된 패널이 주재하는 청문회에 참석해 사건에 대한 증거와 증언을 제시하고, 학교 측이 결정을 내리게 된다.

비영리 성폭력 방지 단체인 '성폭행, 학대 및 근친상간 전국 네트워크(RAINN)'의 정책 코디네이터인 조이 샤인블럼-브루어는 성폭력 생존자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학교 시스템과 형사 사법 시스템을 동시에 헤쳐 나가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복잡한 이 두 신고 시스템은 "서로 목적이 다르고, 다른 규칙과 일정에 따라 운영되며, 서로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샤인블럼-브루어는 "이렇듯 두 절차가 동시에 이어지는 가운데 (피해 학생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침은 불분명하고, 이는 엄청난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이어진다. 결국 일부 학생들은 신고를 포기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메리 또한 성폭행 사실을 신고하기로 마음먹을 당시, 소속 대학의 관련 절차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메리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내가 어떤 과정을 겪게 될 것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며 당시 대학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그들도 나와 함께 그 절차를 배워가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코넬 대학과 같은 일부 대학은 지역 경찰과 정보 공유 협약을 맺고 있지만, 메리는 별도로 경찰서에 가서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육체적으로도 무척 지치는 과정이었다.

메리의 변호사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밤 감시카메라 영상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몸이 축 늘어진" 메리를 안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으며, 메리는 자신의 몸에 남은 멍과 물린 자국 사진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메리에게 가해자를 체포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으며, 지방 검사장 또한 대학 측이 이 문제를 처리하길 바란다는 입장임을 전했다.

메리는 "경찰이 대학이 내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들은 손을 떼도 된다고 여기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해당 경찰서는 BBC에 이 사건에 대한 세부 사항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으며, 현지 지방 검사장실은 의견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비밀 유지 및 보호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 여러 명을 대리한 바 있는 헬렌 와이스 변호사는 대학 차원의 조사는 보통 비공개로 조용히 진행된다며, 그 배경에는 대학이 자신들의 명성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절차가 비공개로 진행되기에 다른 학생들은 사건을 알지 못하고, 또 증인들도 나서지 못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대학 캠퍼스에서 성 관련 비위 혐의를 받은 사람들을 변호해 온 마이클 다이아몬드스타인 변호사는 이러한 비밀 유지는 피해자와 피고발인 모두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정에서 직면하게 될 상황과 비교해 보면, 학생들에게는 훨씬 더 수월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그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고, 언론의 주목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코넬대 학생들은 최근 의혹에 대한 대학 측의 대응을 비판하고 나섰다.

학생 신문인 '코넬 데일리 선'은 "코넬은 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하겠다"라는 제목 아래 가해 혐의를 받는 이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코넬대 측은 성명을 통해 연방 개인정보 보호법에 때래 "학교 측은 개별 학생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며 따라서 "그 외 징계 조치와 관련해서도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내 유일한 길'

많은 성폭력 피해 지원 단체들은 대학이 형사 사법 제도와는 별도로 사건을 조사하는 데 나름의 장점도 있다고 말한다.

우선 성폭력 사건 기소는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다. 관련 연구를 종합한 최근 분석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 중 유죄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는 10% 미만에 불과하다. 형사 재판에서 검사는 피고인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유죄임을 배심원단에 입증해야 한다. 반면 대학 내 징계 절차에서는 입증 수준이 더 낮다.

샤인블룸-브루어에 따르면, 타이틀 나인에 따라 대학은 자체적인 해결책도 마련해야 하는데, 사법 기관이 제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조사 기간 피해 주장 학생이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과 같은 수업에 배정되지 않도록 조치하거나, 과제 제출 기한을 연장해 주는 식이다.

이것이 바로 피해자와 생존자 지원단체들이 대학과 형사사법 시스템이라는 두 가지 별개의 절차를 통한 대응에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말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한편 메리의 경우, 경찰이 사건을 기각하면서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타이틀 나인을 통해 가해자로 지목한 인물이 대학에서 퇴학당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떤 형태든 내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설명이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