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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니 아내, BBC 인터뷰서 '푸틴 사라지면 러시아 대선 출마 의사 있어'

2024.10.22
알렉세이 나발니와 율리아 나발나야
Navalny family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를 앞두고 집회에 참석한 알렉세이 나발니와 율리아 나발나야 부부

율리아 나발나야는 러시아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나발나야에게서는 그 어떠한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러시아의 유명 야권 지도자이자 나발나야의 남편이기도 했던 알렉세이 나발니와 함께 내린 수많은 결정과 마찬가지로 나발나야의 이번 결정에도 흔들림은 없었다.

나발나야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여전히 통치 중인 고국 러시아로 돌아갈 경우 체포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푸틴 행정부는 나발나야는 극단주의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이는 말뿐인 위협이 아니다. 러시아에서는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전 푸틴 대통령을 가장 공개적으로 비난하던 남편 나발니는 극단주의 혐의로 징역 19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정치적 보복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나발니는 올해 2월, 북극권의 차가운 교도소에서 숨을 거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 죽음의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 살해 의혹을 부인한다.

영국의 한 법률 도서관에서 만난 나발나야는 그 모습도, 목소리도 모두 나발니를 닮아 있었다. 나발니는 원래 변호사였으나 러시아의 변화를 꿈꾸며 정치 운동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나발나야는 남편이 생전 집필하고 있던 회고록 ‘패트리어트(‘애국자’라는 뜻’)를 출간하면서 민주주의를 향한 남편의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자신의 계획을 또 한 번 강조했다.

나발나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때가 맞으면 “후보로서 … 선거에 참여할 것”이라고도 했다.

“제 정치적 상대는 푸틴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정권이 최대한 빨리 무너지도록 모든 걸 다할 것입니다.”

율리아 나발나야
BBC
율리아 나발나야는 케이티 라잘 BBC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진정한 애국자”라고 했다

현재로서 이러한 활동은 러시아 밖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발나야는 푸틴 대통령이 계속 집권하고 있는 동안은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발나야는 언젠가 푸틴의 시대가 끝나고 러시아의 문이 다시 열리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고 있다.

고인이 된 남편과 마찬가지로 나발나야 또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자신도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나발니 부부와 아들 자카르
Evgeny Feldman
201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나발니 부부와 아들 자카르가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나발나야 가족은 이미 러시아 현 정권과의 싸움으로 인해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인터뷰 내내 나발나야는 푸틴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강한 태도를 유지하며 침착한 모습이었다.

나발나야의 개인적인 슬픔은 어쨌든 공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로 표출된다. 그러나 나발나야는 남편의 죽음 이후 남편과 자신이 품은 정치적 믿음과 결정이 딸 다샤(23)와 아들 자카르(16)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이 선택한 상황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한 번도 남편에게 살아가는 방향을 바꾸라고 요구한 적 없다고 한다.

나발니 부부와 아들 자카르, 딸 다샤
Navalny family
독일에서 함께한 나발니 부부와 아들 자카르, 딸 다샤

나발니는 생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금지당했다.

푸틴 대통령이 흑해 연안에 10억달러(약 1조원)짜리 궁전을 지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가장 최근 영상 등 그가 설립한 ‘반부패 재단’의 조사 결과는 온라인에서 수백만 명이 시청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러한 의혹을 부인했다.

흑해에 자리한 대저택
Alexei Navalny/Anti-Corruption Foundation
나발니는 흑해에 자리한 이른바 ‘푸틴의 궁전’에 대한 조사에 몇 달이 걸렸다고 말했다

나발나야는 “이러한 삶을 살다 보면 그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발니는 2020년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에 중독됐다. 그는 치료를 위해 독일로 이송됐고, 당시 독일 총리는 러시아 측에 해명을 요구했다.

나발니는 오픈소스 조사 기관 ‘벨링캣’과 협력해 해당 독살 미수 사건의 배후가 러시아의 정보 기관인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이라고 추적했다.

2020년 노비촉에 중독돼 병실에서 회복 중인 나발니와 가족들
Navalny family
나발니는 회고록에서 노비촉 중독에서 살아남은 이후 아내 율리아로부터 자신이 다시 중독될 수 있다는 “중요한 의견”을 들었다면서, 이에 자신이 “신체적으로 건강해지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복하며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2021년 1월, 나발니 부부는 러시아로 돌아왔고, 나발니는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체포됐다.

당시 많은 이들이 부부에게 왜 돌아가는지 물었다.

“논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남편을 응원해주면 됩니다. 그가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함을 알았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용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 독재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저는 그가 살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 저희는 수십년간 이러한 삶을 살았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견해를 나누는 게 중요합니다. 그를 지지하니까요.”

러시아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의 나발니
Getty Images
나발니는 2021년 1월 러시아로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지금 걱정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다

투옥된 이후에도 나발니는 노트나 SNS 게시물, 옥중 일기 등을 통해 저술 활동을 이어나갔다. 나발니에 따르면 일부 글은 교도소에서 압수해갔다고 한다.

회고록 ‘패트리어트’는 세상에 알리는 글이자, 마음이 아파지는 글이다. 우리 모두 나발니 삶의 마지막 장이 어떠한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 속에 담긴 그의 처우와 이에 맞선 그의 용기가 더욱더 마음을 찌른다.

회고록에 따르면 나발니는 작업복의 윗단추를 잠그지 않았다는 등의 규율 위반 행위로 295일 동안 독방에 갇혀 지내며 처벌당했다. 당시 그는 전화 통화도, 면회도 받지 못했다.

나발나야는 “보통 처벌은 2주 정도 이뤄지고, 그것도 가장 가혹한 처벌이다”면서 “그러나 남편은 그곳에서 거의 1년을 보냈다”고 했다.

2022년 8월의 옥중 일기 속 나발니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내가 있는 감방은 너무 더워서 숨을 쉬기도 힘듭니다. 신선한 공기를 갈망하며 바닷가에 내던져진 물고기가 된 느낌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곳은 차갑고 습한 지하실 같습니다 … 시끄러운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아주 고독한 공간입니다. 서로 다른 감방에 있는 수감자들끼리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틀어놓는 것이라고는 하나, 현실은 고문받는 이들의 비명 소리를 덮기 위한 음악입니다.

IK-3 교도소
Reuters
나발니는 올해 2월 16일 북극권에 있는 ‘IK-3’ 교도소에서 숨을 거뒀다

나발나야는 남편이 사망하기 전 2년 동안 면회를 갈 수도,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나발니는 고문도 받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끔찍한 환경”에서 지내야만 했다고 한다.

나발니의 죽음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영국은 새로운 대러 제재를 발표했다. 나발니가 숨을 거둔 북극권 교도소를 운영하는 교도소장 6명의 자산 동결 및 나발니에 대한 형사 소송에 관여한 재판관들에 대한 제재도 포함돼 있다.

나발나야는 남편의 죽음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이 “웃기다” 면서 푸틴 대통령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푸틴이 감옥에 갇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저는 그가 외국의 어느 감옥, 컴퓨터도 쓸 수 있고 좋은 음식도 나오는 그런 멋진 감옥이 아니라 … 그가 러시아의 감옥에 갇혀 있길 바랍니다. 남편이 견뎌야 했던 환경과 똑같은 곳에 있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만 이는 제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편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자연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발나야는 푸틴 대통령이 살해를 지시했다고 믿는다.

“푸틴은 내 남편의 죽음과 살인에 대해 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현재 남편을 대신해 자신이 이끄는 반부패 재단이 이미 “증거”를 확보했다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나오면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
Getty Images
나발니는 옥중 일기에서 푸틴 대통령은 “불법적인 통치자이자 부패 조장자”라고 비난했다

나발니의 이 책은 회고록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러시아가 오리라 믿는 모든 이들에게 힘차게 보내는 외침이다. 러시아어로도 출판되며, 전자책과 오디오북으로도 출간된다. 그러나 출판사는 세관을 통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러시아나 벨라루스에는 양장본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얼마나 많은 러시아인이 전자책 형태로라도 이 회고록을 구매할지는 불분명하며,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시위 중인 나발니
Evgeny Feldman
2018년 대선 출마가 저지된 이후 시위에 참석한 나발니

모든 페이지에 새겨진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바로 나발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의 유쾌한 재치가 빛을 발한다.

그는 형벌로 갇히게 된 독방에서 침묵을 유지하고, 부족한 듯 음식을 먹고,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됐는데, “부자들이 중년의 위기를 맞아” 비용을 지불하고 하려는 체험을 자신은 “무료로” 하고 있다고 적었다.

나발니가 “박살 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 건 단 한 번뿐으로, 지난 2021년 민간 의료진에게 의료 서비스를 받게 해달라며 단식 투쟁을 벌였을 때다. 당시 “처음으로 감정적으로, 도덕적으로 무너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발나야는 남편이 정권에 의해 무너질 것이라고는 걱정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저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저들이 마침내 남편을 죽이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은 거죠.”

나발니는 죽기 하루 전날 온라인으로 재판에 참석해서도 재판장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카메라에 담겼다.

교도소에 있는 나발니
SOTA VISION
나발니는 사망 전날인 2월 15일, 온라인으로 재판에 참석해 재판장에게 자기 계좌에 돈을 좀 넣어달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나발나야는 웃음이야말로 남편의 ‘수퍼파워’라고 했다.

“그는 이 정권을, 푸틴을 향해 정말 진심으로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푸틴이 그를 그토록 미워했습니다.”

회고록에는 수많은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나발니는 자신이 죽으면 책이 더 잘 팔릴 것이라고도 적어놨다.

인정합시다. 화학 무기를 동원한 수상한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고, 감옥에서 비극적으로 죽어간 사람의 책이 잘 팔리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으로 책을 팔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책의 저자가 악당 같은 대통령에게 살해당했는데, 출판사 마케팅 부서 입장에서는 대체 더 무슨 이야기가 필요할까요.

그리고 이 책은 자신들이 믿는 대의에 전적으로 헌신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내는 이제 그 대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됐다.

젊은 시절 나발니 부부
Navalny family
나발니는 회고록에서 아내는 자신의 소울메이트라며, 율리아는 “오히려 나보다도 러시아의 권력자들을 더 싫어한다”고 적었다

면회 온 아내를 만난 나발니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아내의 귀에 ‘잘 들어요. 너무 극적으로 들리긴 싫지만, 아마 나는 이곳에서 절대 나가지 못할 확률이 높아요 … 저들이 날 독살하겠죠’라고 속삭였다.

이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나도 알아요’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

이는 내가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아내가 날 찾은 것일 수도 있겠다.

나발니의 회고록 ‘패트리어트’는 10월 22일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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