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견해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은 연출됐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에서 ‘와일드 마더’라는 이름을 쓰는 데지레는 미국 콜로라도주 산속에 거주하며 8만 명에 달하는 팔로워들에게 전인적인 웰니스 및 딸 양육 관련 콘텐츠를 게시한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길 바란다.
한편 콜로라도주 덴버 교외에서 북쪽으로 약 70마일(112.6km) 떨어진 곳에 사는 카밀은 인종 및 성 평등을 열렬히 지지하는 여성으로, 구조해온 반려견 여러 마리를 데리고 산다. 카밀은 지난 15년간 계속 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와일드 마더와 카밀은 정치적 성향으로만 보면 극과 극이지만, 이 둘 모두 트럼프를 향한 암살 시도가 연출된 것이라 믿는다.
지난 7월 발생한 총격 사건과 이번 달 초 발생한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 이 두 여성 모두 자신의 소셜미디어 피드에 올라온 여러 게시물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나는 BBC 라디오4의 ‘왜 당신은 나를 미워합니까? USA’ 제작을 위해 지난 2020년 대선이 도둑맞았다는 음모론의 온상이 된 콜로라도주를 찾았다. 이곳에서 나는 증거도 없는 암살 음모론이 어떻게 이토록 정치권 전반에 퍼지게 됐는지, 와일드 마더와 카밀 같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X(구 ‘트위터’)에서는 트럼프를 노린 두 사건 모두 조작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증거는 없는 온라인 게시물 수십 개가 조회수 3000만 건 이상을 기록 중이었다.
이러한 게시물 중 일부는 과거에는 이러한 음모론을 공유한 적 없는 듯한 반트럼프 계정이 그 출처였다. 한편 트럼프 지지자들의 지지자들이 올린 것도 있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카밀의 경우, 트럼프 팀이 대선 승리 가능성을 높이고자 이같은 사건을 계획했다고 믿는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가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성애자 엘리트 집단과의 비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근거 없이 주장하는 음모론인 ‘큐어넌(QAnon)’의 추종자이기도 와일드 마더는 트럼프 팀이 ‘딥 스테이트’ 내 적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자 이번 사건을 계획했다고 믿는다.
‘딥 스테이트’는 특정 정치인들을 방해하려는 비밀스러운 보안 및 정보 집단의 연합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물론 이 두 여성의 주장 모두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다.
- '트럼프 암살 시도 사건' 이후 SNS를 뒤덮은 음모론과 혐오 발언
- 팀 월즈 부통령 후보와 소말리아는 무슨 관계?…기괴한 음모론은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나
- 미국 대선: 음모론, 결과에 영향 줄까?
대중을 흔들고자 사건을 연출했다는 생각은 음모론의 고전적인 방식으로, 와일드 마더는 자신은 더 이상 주류 뉴스가 아닌 이러한 대안 뉴스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카밀은 자신이 이러한 사건을 다룬 뉴스에 대해 ‘연출(조작)됐다’고 말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카밀은 코로나19가 실재한다는 것도 믿었으며, 2020년 대선이 조작됐다는 주장에도 열렬히 반대해왔다.
하지만 올해 7월 13일, 집에서 TV로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총격을 당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면서 ‘아 저건 연출됐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트럼프가 이내 하늘로 주먹을 들어 올리며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 더욱 의심하게 됐다.
카밀은 애초에 미국 비밀경호국이 어떻게 이 같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내버려뒀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비밀경호국 국장은 경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총격범의 정체는 토마스 매튜 크룩스(20)로, 비밀경호국 소속 저격수에 의해 사살당했다. 크룩스의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아 여전히 수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이에 카밀의 의문은 더욱 커지게 됐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의심하게 된 카밀은 답을 얻고자 X에 접속했다.
사실 총격 사건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카밀은 X에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밀은 친민주당 성향의 반트럼프 계정들에 관심이 있어 이러한 계정 일부를 팔로우하고 있었다.
카밀 또한 “나는 SNS를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인정하며 “어떻게 보면 문제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최근 X의 ‘포 유’(사용자를 위한 추천 게시물) 피드의 운영 방식이 변하면서 카밀은 자신이 직접 팔로우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정치적 의견과 일치하는 계정의 게시물에 더 많이 노출되게 됐다. 또한 이러한 계정 중 상당수가 파란색 체크 표시(트위터 유료 사용자)를 달아 자신들이 올린 게시물이 더 눈에 잘 들어오도록 해뒀다.
그런 와중에 첫 번째 암살 시도가 발생했고, 해당 사건이 조작됐다는 근거 없는 음모론이 카밀의 피드에 추천 게시물로 등장했다. 게다가 트럼프에 대해 카밀과 같은 정치적 의견을 지닌 여러 계정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자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SNS 업체 대부분이 사용자 보호 및 유해 콘텐츠 퇴치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X 측은 BBC의 의견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마치 마술쇼를 보는 듯’
와일드 마더 또한 SNS에서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수천 명에 달하는 이들과 연결되게 됐다. 오프라인에서 ‘괴짜, 외계인, 가공하지 않은 다이아몬드’ 등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와일드 마더가 고향이라 부르는 작은 마을의 한 폭포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와일드 마더는 내게 지난 2021년부터 자신은 자연 요법과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 후 영국의 캐서린 웨일스 공작부인의 건강 및 올해 초 발생한 미국 볼티모어 교량 붕괴 사고 등 굵직한 뉴스 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런 근거 없이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올린 게시물의 조회수와 ‘좋아요’ 수는 계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와일드 마더는 자신은 어릴 적부터 “현실에 대한 대안적 생각”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면서, 1960년대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2001년 9.11 테러,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해 우리 모두 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19 기간 온라인 활동에 더욱더 몰입하면서 트럼프의 팬이 됐고, 큐어넌 활동도 접하게 됐다. 그리고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큐어넌과 연관돼 있다고 믿는다.
엄마이기도 한 와일드 마더는 특히 큐어넌 지지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주제인 아동 학대 및 인신매매에 대한 의혹이 가장 우려된다고 했다.
와일드 마더는 “지금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들은 이러한 일이 실제 벌어지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정말 충격적이다. 우리는 가장 순수한 존재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1년 1월 6일, 조 바이든 후보의 대선 승리에 반대하며 미 국회의사당 건물을 습격한 이들 중에는 큐어넌 지지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와일드 마더는 딥스테이트 세력에 죄를 뒤집어씌우고자 큐어넌 지지자들이 어떻게든 지난 7월 발생한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에 관여했다는, 자신이 SNS에서 접한 음모론을 믿고 싶어 했다.
하지만 와일드 마더는 자신이 온라인에서 본 게시물에 따르면 이른바 ‘화이트 햇’으로 알려진 “군대 내 선한 이들”이 딥스테이트에 맞서고자 은밀히 작전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와일드 마더의 피드에 제시된 음모론 중에는 지난 7월 발생한 해당 암살 미수 사건이 대중에게 트럼프가 위협받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계획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와일드 마더는 큐어넌의 이론이 사실이라고 확실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믿고 싶은 게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다. “나는 지금 미국은 우리 정부로부터 구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지독하게 난장판이다. 지독한 난장판”이라는 설명이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의 조작 여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부터 와일드 마더에게는 모든 게 다 가능해 보인다.
와일드 마더는 “어렸을 때는 (생각 없이) 마술 쇼에 갔지만, 조금 커서 마술사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기분과 같다”면서 “(이를 알게 되고 나면) 마술 쇼에 갈 때마다 마술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지 않냐”고 말했다.
이렇듯 카밀과 와일드 마더 모두 SNS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면서 자신들이 믿고자 선택한 신념으로 인해 현실 세계의 인간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밀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가까운 가족들과 더 이상 대화하기 힘들어졌으며, 와일드 마더는 음모론을 강하게 반대하는 전남편과 별거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와일드 마더는 “(음모론에 대한 부부간 이견으로) 힘들었냐고요? 네. 그게 사이를 갈라놨냐고요? 내 결혼 생활을 끝낸 원인 중 하나였나고요? 아마도요”라고 했다.
아울러 카밀은 X에서 논쟁에 휘말리면서부터 현실 세계에서도 경계를 늦출 수 없게 됐다. “집을 나설 때마다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은 무섭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과 갈등의 분위기는 이렇듯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선거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게 조작되고 연출됐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미국 전역의 공무원, 선거 종사자, 정치인들은 증오와 위협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와일드 마더에게 사람들은 현재 정의 추구와 해로운 행동 사이 “정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타고” 있다.
“상원의원에게 편지를 쓰거나 이들에게 인종차별적인 모욕을 가하자는 게 아니”라는 그는 “그러나 정말 사건에 대해 잘 알아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문제가 있음을 알아챈 사람이라면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냐. 난 그렇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에게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그 방법인 거고요.”
와일드 마더와 카밀 모두 자신은 누군가를 협박한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나는 이들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SNS 피드에서 조성된 불신을 통해 사회와 제도에 대해 이들이 지녔던 믿음을 약화시켰다.
음모론에 반대하던 카밀이지만, 이제 자신의 입에서 음모론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종종 튀어나온다.
지난 7월 발생한 트럼프 암살 시도와 SNS 알고리즘이 더 많은 사람들을 현실과 동떨어진 온라인 세계로 더 깊이 끌어들이고 있는 가운데 카밀 또한 이러한 사고방식에 포섭된 많은 사람 중 하나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