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사이신까지 꺼냈다'...윤석열 탄핵 선고 앞둔 서울은 긴장 속 준전시 상황
"이곳은 진입이 불가합니다."
안국동 인근에 가면 마주할 수 있는 소리다.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헌재를 중심으로 서울의 모습은 준전시 상황처럼 바뀌었다.
헌재 인근 경찰특공대 배치 경찰이 인 4일 오전 0시부로 전국에 '갑호비상'을 발령했다. 갑호비상은 경찰력을 100% 동원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근무 체제다.
경찰은 이날 전국에 기동대 338개, 부대 2만여명을 배치했다. 헌재가 있는 종로구 일대는 기동대 110여개 부대 7000여명이 지키고 있고,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과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는 각각 30여개 부대 2000여명, 20여개 부대 1300여명이 자리를 잡았다.
기동대원들은 과격·폭력시위에 대비해 신체보호복을 착용하고 소화기와 캡사이신 이격용 분사기를 지참하고 있다.
인근 공사장, 주유소 등은 '헌재 반경 150m 진공화'를 위해 줄줄이 폐쇄됐다. 폭력 사태와 안전에 대비하기 위한 강력 조치다.
안국역 5번 출구 인근의 한 주유소 사방은 바리케이드와 쇠사슬로 둘러싸였다. 주유소는 휴업 상태였고 주유기기는 아예 전원이 꺼진 채 사용할 수 없도록 설정됐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은 1~4번 출입구를 폐쇄하고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 각 출구에는 출입금지 팻말과 접근 금지 테이프, 바리케이드 등이 설치되며 3중 통제선이 쳐진 상태다.
출입구에 배치된 경찰과 사회복무요원 등은 출구를 이용하려 접근하는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종각·시청·종로3가·을지로입구·을지로3가·안국·경복궁·광화문·여의도·여의나루·한강진·이태원·버티고개·국회의사당·여의도·샛강·대방·보라매·신림역에는 일일 415명의 안전관리 인력이 배치됐다.
혼잡한 동선은 이동형 안전펜스와 임시 유도선을 이용해야 한다.
공공자전거 따릉이와 공유 개인형 이동장치(PM), 가로쓰레기통은 집회 지역 밖으로 이동 조치됐다.
이동통신사들도 선고 전후로 트래픽이 폭증할 것을 우려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시간 모니터링과 함께 기존 장비 사전 최적화, 이동기지국 배치 등으로 통신 장애나 지연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헌재 주변 학교 11곳도 임시 휴업에 들어가고 궁궐, 미술관 등 주요 관광지도 문을 닫는다. 종로 일대에 사옥을 둔 현대건설 등 기업들도 재택근무를 실시하거나 휴무일로 지정해 쉰다.
현재 한남동 관저 주변도 바리게이트와 버스로 통제된 채 경찰의 삼엄한 경계가 이뤄지고 있다.
관저 앞 육교는 폐쇄됐고 용산구청은 대신 인근에 임시 건널목을 마련했다.
집회 인원이 오전 9시부터 점점 몰리면서 관저 주변도 교통통제가 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오전 9시부터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6인근 호선 한강진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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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상점도 문을 닫거나 긴장 속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큰 대로변에는 차가 다닐 수 없도록 경찰 버스가 벽을 치고 있고, 촘촘히 세워진 바리케이드 사이로 간신히 '한 줄 서기'를 해야만 지나다닐 수 있는 거리도 있다.
경찰들이 거리 곳곳에 서서 사람들을 주시했고, 일부 좁은 거리에서는 정치색을 강하게 띤 소품이나 옷을 입고 있으면 진입할 수 없도록 통제됐다.
"지금 거리 상태가 이렇잖아요. 손님들은 이미 절반 이상 줄었죠."
안국역 근처에서 감자튀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최승열 씨는 전날인 3일 BBC 취재진에 경찰 버스가 빽빽하게 들어선 거리를 보며 토로했다.
최 씨의 가게 앞으로는 현재 경찰 기동대 버스 수십 대가 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단순히 도로 통제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일부 시위대들의 과격한 행위로 이 지역이 소위 '기피 지역'이 됐다는 설명이다.
"시끄럽게 욕하면서 소리 지르는 시위대에게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인상 찌푸리거나 시끄럽다고 얘기하면 더 크게 욕을 하면서 반응해요. 그렇다고 경찰들도 그 사람들을 잡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기피 지역이 된 거죠."
헌재 밖은 혼잡...경찰 '불법 행위 무관용'
헌재 주변 반경 150m는 사실상 사람이 오갈 수 없는' 진공상태'가 됐지만, 경찰의 통제구역 밖 안국역 일대는 경찰 인력과 시위대가 뒤섞이며 여느 때보다 혼잡하다.
양쪽은 약 300m의 거리를 두고 밤샘 농성을 펼치는 등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탄핵 반대 측은 약 200명, 찬성 측은 약 100명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앞서 2월 19일 있었던 한덕수 총리 및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변론기일 재판을 방청했었던 김산정 씨 역시 당시 현장의 엄청난 시위 인파와 경찰 인력에 놀랐다고 BBC에 말했다.
김 씨는 "그중에 어떤 분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욕설이 섞인 의견을 표출하는 모습도 보였다"라며 "뭔가 의견 일치 여부를 떠나서 기분이 좋지 않고 위축이 되면서 '집에 갈까'라는 생각도 잠깐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고 당일에는 경찰이나 시위대나 유혈 사태가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동안 시위대들이 너무 고생도 하고 모두 화도 나 있으니 제 생각에는 어느 진영이든 난동을 부릴까봐 걱정이 된다"고 추측했다.
윤 대통령 5차 변론 기일 방청에 당첨돼 참여한 경험이 있던 40대 오미아 씨 역시 혼돈 속인 헌재 앞 광경이 기이했다고 말했다.
"헌재 속은 개미 한마리도 다닐 수 없는 느낌이었고 밖은 전쟁이었죠."
당시에도 헌재 앞은 시위대와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투입된 경찰 인력으로 가득했다.
"헌재 건물까지 들어가는 길이 참 험했습니다. 통행도 제대로 안 시켜주는 분위기니까 문을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어요. 막혀있는 경찰 버스를 뚫고 경찰들에게 (헌재가 보낸) 방청 허가 문자를 보여주면서 물어가면서 길을 찾았고, 정문도 좁은 통로로 한 명씩 겨우 들어갔어요."
대규모 집회가 예정된 광화문과 한남동 관저에도 수많은 시민이 몰려들어 이날 오전 11시에 있을 윤 대통령 탄핵 선고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헌재에 출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앞서 "대통령은 내일 예정된 탄핵 심판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혼잡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질서 유지와 대통령 경호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서 TV로 생중계되는 탄핵 심판을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선고 결과는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날 당시 헌재 앞에선 선고 결과에 분노한 지지자들이 헌재 진입을 시도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소화기를 뿌리거나 경찰 버스를 탈취해 차 벽을 들이받기도 했다. 뚫고 가려는 지지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관 사이에 큰 몸싸움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방송 차량 위에 있던 철제 스피커가 참가자 머리 위로 떨어져 사망했고 몰려든 참가자들 사이에 짓눌린 3명도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시위 과격화 조짐 역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탄핵 집회가 본격화한 지난해 12월(15건)과 비교해 지난달 헌재 인근에서 폭행이나 부상 등으로 접수된 119 신고는 96건으로 6배 넘게 늘어났다.
앞서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는 3일 헌재 정문 앞을 찾아 경비 상황을 점검했다. 그는 "폭력과 손괴 등과 같은 묵과할 수 없는 불법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또 온라인상 테러 협박을 포함해 어떤 불법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헌재가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내리면 윤 대통령은 즉시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해 업무에 복귀할 예정이다. 국군통수권을 비롯한 윤석열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그 즉시 회복된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해 대국민 담화 혹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이 인용된다면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한남동 관저를 떠나야 한다. 윤 대통령 부부가 별도의 주거지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자택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로 돌아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관련 경호 대책이 갖춰져야 하는 만큼 당분간은 관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경호 문제에 따라 헌재 파면 결정 이틀 뒤인 2017년 3월 12일 저녁,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사저로 이동했다.
추가 보도: 이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