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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기록한 가자 지구의 일 년… '제 아들은 장난감 소리보다 폭탄 소리에 더 익숙합니다'

2일 전
어린 할룸(왼쪽)과 하무드(오른쪽)
BBC
가자 지구 북부 자발리아에서 전쟁을 겪으며 살아온 할룸(왼쪽)과 하무드(오른쪽)

지난 10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전쟁을 시작한 지 며칠 뒤부터 팔레스타인인 2명은 자신들의 일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아셀은 안전을 위해 가자 지구 남쪽으로 피신했고, 칼리드는 북쪽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폭발, 수차례의 피난, 죽음 및 분쟁에 휘말린 아동들의 트라우마 등을 기록했다.

칼리드

가자 지구 북부의 폭격으로 파괴된 집 거실 바닥에서 하무드(6)와 할룸(4) 남매가 구급대원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인형을 끌어당기더니 인형의 몸통 피부를 작게 꿰매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하무드는 “이 친구는 부상을 입었다”면서 “수많은 잔해가 몸 위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어린 하무드 남매는 자신들이 지난 1년간 수없이 많이 봐온 장면을 그대로 놀이에 적용하고 있다. 이들이 사는 가자 지구 내 하마스가 운영하는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이번 전쟁으로 사망한 이들 중 3분의 1이 아동이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약 1200명이 사망한 후 발발한 이스라엘의 이번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 칼리드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멀리서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칼리드는 “아이들이 이런 놀이를 해선 안 된다”면서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진다”고 호소했다.

전쟁 발발 몇 달 후인 12월, 칼리드는 남부로 대피하라는 이스라엘의 명령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가자 지구 북부 자발리아에 남아 주민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칼리드는 의사는 아니지만 물리치료사 교육을 받았으며, 의료용품 회사의 유통업자로 일했다.

“동네 사람들은 제가 의사가 아니라 물리치료사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힘들어지면 제가 붕대를 갈아주거나, 상처를 꿰매줄 수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위해서요. 저마저 떠나면 이곳에는 병원이나 진료소가 없어 제가 돌보는 이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인 수술 기술을 익히고 의약품(일부는 사용 기한이 지난 상태다)을 구할 수 있게 된 칼리드는 집에서 진료소를 열고 어린이 치료에 집중했다. 그리고 칼리드의 자녀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하무드는 “구급차, 구급차로 데려가!”라고 소리쳤다. 이건 여동생과 전쟁 중 만들어낸 ‘구급대원’이라는 새로운 놀이다. 칼리드는 아들이 미사일, 파편, 혹은 건물 붕괴 중 원인이 무엇이냐며 부상의 종류를 맞추는 소리를 들었다.

칼리드는 “아들은 장난감 소리보다 폭탄 소리에 더 익숙하다. 그리고 할룸은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걸 견뎌야 했다”면서 “이 전쟁이 아이들에게 미칠 장기적인 심리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인도주의 기구 ‘국제구조위원회’는 피난, 트라우마, 학교 교육의 부재 등이 가자 지구의 어린이들에게 평생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가자 지구 북부에 고립된 칼리드의 자녀들은 심리적 외상뿐만 아니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굶주림도 견뎌야 했다. 지난 6월, UN은 가자 지구 주민의 96%가 ‘심각한 식량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고 추정했다.

하무드가 옥상으로 올라가 임시로 만든 깃발을 흔들며 구호품 비행기에 집 근처에 소포를 떨어뜨려달라고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순간, 끔찍한 굉음이 땅을 뒤흔들었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방금 근처 건물에 폭탄을 투하하자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무드는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폭탄을 떨어뜨리는 전투기가 참 싫다”면서 “대신 우리에게 식량을 떨어뜨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생후 6개월 된 아기
BBC
2023년 12월 가자 지구에서 태어난 하야트는 전쟁 외의 삶을 알지 못한다

아셀

한편 가자 지구 남부로 피난 온 초보 엄마 아셀(24)은 갓 태어난 딸 하야트를 어떻게 먹일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아셀은 “시장에 먹거리가 없어 내가 제대로 먹고 모유수유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분유를 먹이고 있다”고 했다.

이번 달 유엔인구기금(UNFPA)은 가자 지구의 임신부 1만7000명이 기근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아셀의 남편 이브라힘은 “분유, 기저귀 등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의 가격이 전쟁 중 치솟았다”면서 애초에 이런 물품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셀은 딸을 낳고 이런 삶을 살게 되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앞서 이스라엘의 대피 명령에 따라 아셀과 이브라힘은 14개월 난 딸 로즈도 데리고 집을 떠나 남쪽으로 대피했다.

UN은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 10명 중 9명꼴로 적어도 1번 이상 살던 곳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추산한다.

임신 8개월이었던 아셀은 지정된 안전 경로를 따라 수 km를 걸어 남부로 향했다.

“마실 물도 충분하지 않았고, 전 빈혈을 앓고 있었습니다. 땅에 시신이 널려 있었어요. 전 오직 딸 로즈와 뱃속이 아기만을 생각했습니다.”

아셀과 이브라힘은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이 길을 계속 혼자 걸어가 딸과 뱃속의 아기를 돌보겠다고, 그리고 내가 지쳐 쓰러지면 남편이 나를 두고 딸과 떠나기로” 서로 약속했다.

이들 가족은 비교적 안전한 남부의 데이르 알-발라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아셀이 아기를 낳을만한 제대로 된 병원이 거의 없는 것이다. 누세이라트 소재 ‘알 아와다 병원’이 인근에서 분만이 가능한 유일한 병원이었다.

그렇게 딸 하야트가 12월 13일 알 아와다 병원에서 태어났다. ‘하야트’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삶 생명’을 뜻한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온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부부의 희망이 담겼다.

“이 모든 파괴의 현장에서 딸이 제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준 듯한 느낌입니다. 하야트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워줬습니다.”

한편 사진작가인 이브라힘은 아내와 딸 로즈, 갓 태어난 하야트를 남겨두고 현장에 나가 일해야만 했다. 가족을 부양하고자 목숨을 걸고 일터에 나선 것이다.

총격전에 휘말렸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적도 있다는 그는 “가족들에게 기저귀, 분유, 옷 등 필수품을 구하고자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자 지구의 모든 무게가 제 어깨 위에 있는 느낌입니다. 딸들이 매우 걱정되고, 제가 갓 태어난 딸을 잘 부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5월, 데이르 알-발라에서 다시 만난 이브라힘과 아셀은 딸들을 데리고 나들이에 나섰다.

이브라힘은 “하야트는 전쟁이 없는 날을 단 하루도 알지 못한다”면서 “딸은 폭격음이 울려 퍼지고 곳곳이 파괴되는 가운데 태어났다”고 했다.

생후 6개월 된 하야트는 앞 좌석에 앉은 아셀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이들이 탄 차는 무너진 건물 사이로 겹겹이 쌓인 모래와 잔해에 뒤덮인 도로를 달렸다.

이브라힘은 “하지만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야트는 계속 웃고 있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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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가자 지구의 삶과 죽음에 대한 BBC Eye 팀의 영상은 BBC 월드 서비스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이 영상은 지난해 10월 7일 및 그 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벌이고 있는 전쟁 이후 지난 1년간 BBC가 제작 중인 여러 프로그램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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