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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고 백세희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

4시간 전
세로로 분할된 그림 왼쪽엔 책을 읽고 있는 백세희 작가의 모습이, 오른쪽엔 저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영문판 표지가 있다
Bloomsbury Publishing
백세희 작가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에 전 세계에서 애도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에게 떡볶이는 단순한 간식 이상이다. 떡볶이는 소울 푸드에 가깝다.

쫄깃한 쌀떡으로 만든 이 달콤하고 매콤한 음식은 한국 길거리 음식 문화의 상징이며 모든 연령대에서 사랑받는다.

학생들이 긴 학교 일과를 마친 후 찾는 음식이기도 하고, 힘든 하루를 보낸 성인들이 찾는 음식이기도 하다.

2018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흥미를 느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솔직하면서도 장난기 넘치는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이들은 떡볶이를 얼마나 사랑해야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해 했다. 많은 이들이 곧 이 책의 꾸밈없는 솔직함에 매료됐다.

이 책은 한국에서 곧 화제에 오르며 큰 인기를 얻어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런데 지난 16일, 이 책의 저자인 백세희 작가가 3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백 작가의 사망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백 작가가 장기 기증으로 다섯 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그가 타인을 돕고자 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백 작가의 소식은 그의 글에서 위로와 이해를 얻었던 독자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의 책에서 위안을 얻었던 사람들은 추모글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에 가득 채웠고, 전 세계 언론 매체들도 백씨의 사망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

본질적으로 이 책은 백 작가가 경도・만성 우울증인 기분부전장애와 불안 장애를 헤쳐나가면서 정신과 의사와 나눈 대화 기록이다. 이 상담을 통해 백 작가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외모에 집착하며, 자기 의심과 씨름하는 등 자신의 일상적인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책은 임상적 우울증을 파고들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우울에 대해 성찰한다.

백세희 작가의 이야기가 그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그 솔직함에 있다. 백 작가는 일상적인 슬픔과 함께 고단하게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섬세한 모순을 포착했다. 힘든 날에 위안을 주는 따뜻한 떡볶이 한 접시처럼, 그의 글은 따뜻함과 이해를 담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취약함 속에도 힘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25세 조은빛 씨는 백 작가의 책에 공감한 수많은 이들 중 하나다. 조씨는 이 책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모든 세대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와 자신을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경쟁심을 불러일으킬 뿐이에요"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이 사회가 정한 기준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나는 나밖에 없는 존재,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존재, 내가 평생 동안 돌봐야 할 존재…나를 들여다볼수록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는 구절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조은빛 씨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을 들고 웃으며 앉아 있다
BBC
조은빛씨는 백 작가의 책에 깊이 공감했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안을 얻었고, 동시에 저 역시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학교에서 직장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쟁과 가족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좌절하곤 한다. 의로움과 순종 같은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을 여전히 받는 사회에서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여전히 상당한 낙인이 존재하며, 많은 이들이 이와 관련해 수치심이나 사회적 비난을 느끼곤 한다.

백 작가의 책은 사회적 성공이 잘 사는 삶의 궁극적인 척도라는 개념을 뒤집고, 많은 이들이 흔히 직면하는 정신 건강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임을 보여주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이상은(35세) 씨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이 자신에게 특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BBC에 전했다.

"소셜 미디어가 확산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너무 많이 노출되고, 이는 우리를 스스로에게 점점 더 비판적이 되도록 만든다"라고 이씨는 말한다.

"불완전하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종류의 정보는 자칫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져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이도록 용기를 줬습니다."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비결

이 책의 인기는 실질적인 영향을 미쳐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이 전문적인 도움을 찾도록 도왔다. 또한 이 책은 정신 건강 문제를 공개적인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다. 방탄소년단(BTS)의 RM 역시 온라인에서 이 책을 공유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백 작가의 글은 해외에서도 큰 공감을 얻었다. 2018년에 처음 출판된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1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25개 언어로 번역됐다. 영국에서는 출간 6개월 만에 10만 부가 팔렸다.

이 책은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한국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런던의 중학교 교사인 마리안나 수츠는 BBC에 이 책과 연결돼있음을 느꼈으며 백 작가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책은 당신만이 우울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고 알려줍니다. 백 작가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상당히 벅찬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저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영한국문화원장인 선승혜 씨는 "프로이트와 그의 딸과 같은 위대한 정신분석학자들이 인간의 마음을 탐구했던 영국에서 백세희 작가의 목소리가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며, 이 과정에서 K-문학과 K-문화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백 작가의 책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이야기를 전하며, 전 세계 수많은 익명의 독자들에게 조용하지만 따뜻한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역설적인 제목은 사실 '나는 살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깊은 절망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종종 작은 기쁨을 통해 계속 나아갈 힘을 찾는다.

백 작가에게 그 기쁨은 떡볶이였으며, 이는 일상 속의 가장 단순한 즐거움조차도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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