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2년여 간의 전쟁 … BBC가 가자지구 내부서 목격한 참혹한 파괴 현장

43분 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가 내려다보는 제방 위에서는 이 전쟁이 남긴 상처를 감출 길이 없다.

옛 지도와 기억 속 가자는 사라지고, 베이트 하눈에서 반대편 가자시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잿빛의 폐허만이 남았다.

가자시티에 그나마 남아 있는 몇몇 건물의 희미한 윤곽 너머로는 이곳의 방향을 가늠하거나, 한 때 수만 명이 살았을 마을 등을 알아볼 만한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곳은 전쟁 초기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장 먼저 진입한 지역으로, 이후로도 하마스가 이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뭉치는 동안 이스라엘군도 여러 차례 되돌아왔다.

이스라엘 당국은 언론사의 독립적인 가자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늘 이스라엘군은 BBC 등의 언론사 기자들을 자국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데려갔다.

엄격한 통제 속에 이루어진 짧은 방문이었으며, 팔레스타인 주민과 접촉하거나, 가자지구 내 다른 지역으로는 출입할 수 없었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군사 검열법에 따라 보도 전 군 관계자들이 자료를 사전 검토하였다. 다만 BBC는 이번 보도에 대한 편집권은 계속 유지했다.

건물들이 완전히 붕괴되어 평평해진 현장
BBC
가자시티 동부 셰자이야의 파괴 현장

우리가 방문한 지역의 파괴 수준에 대한 질문에 나다브 쇼샤니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그건 "목표가 아니었다"는 답을 내놓았다.

이어 "목표는 테러리스트와의 싸움이다. 거의 모든 민가에 터널 입구 혹은 부비트랩, RPG(로켓추진유탄)이나 저격수 거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차량으로 빠르게 이동하면 (이러한 민가에서는) 1분 안에 이스라엘 할머니나 아이가 있는 거실 안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10월 7일에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죠."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약 1100명이 숨지고 251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내 보건부에 따르면 그 이후 숨진 가자 주민은 6만8000명 이상이다.

쇼샤니 대변인은 이 지역에서 이타니 첸 등 인질 여러 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첸의 시신은 이번 주 하마스에 의해 이스라엘로 넘겨졌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른 7명의 인질 시신에 대한 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이스라엘 군사 기지는 황색선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져 있다. 황색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휴전 계획에 명시된 임시 경계선으로,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군이 여전히 통제하는 구역과 하마스가 통제하는 구역을 가른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대원 및 민간인 모두에게 경고하고자 지상에 황색 블록을 하나둘씩 세워가며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구간에는 아직 그런 표식이 없었다. 한 병사가 무너진 건물 사이 어딘가, 작은 모래밭 한 조각을 기준으로 방위를 잡으며 그 경계가 어디쯤인지 알려주었다.

파괴된 건물들 사이로 차를 타고 지나가는 하마스 대원들
EPA
지난 5일 가자시티에서 포착된 하마스 대원들(선명도를 위해 사진 밝기 보정함)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지만, 이스라엘군 당국은 "거의 매일" 황색선을 따라 하마스 무장대원들과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가자시티를 내려다보는 제방에 쌓인 청동색 탄피들이 발사 지점을 짐작하게 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을 "수백 차례"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있으며, 가자지구 내 하마스의 보건부는 이로 인해 240여 명이 숨졌다고 주장한다.

쇼샤니 대변인은 이스라엘군은 미국이 주도한 휴전 합의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면서도, 하마스가 더 이상 이스라엘 민간인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확실히 할 것이며, 자국군은 필요한 만큼 주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마스가 (여전히) 무장 상태이며, 가자지구를 장악하려 한다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다"며 "이는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부서지고 무너진 건물들
Moose Campbell/ BBC
가자 시티의 건물들은 회색 먼지투성이 잔해로 변해버렸다(선명도를 위해 사진 밝기 보정함)

미국이 주도하는 휴전 합의의 다음 단계는 하마스의 무장해제 및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국제 인사들이 감독하는 팔레스타인 위원회로의 권력 이양이다.

그러나 쇼샤니 대변인은 하마스가 무기와 권력을 내려놓기는커녕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쇼사니 대변인은 "하마스는 계속 무장하고, 지배력을 확립하려 하며, 가자지구를 장악하고자 애쓰고 있다"면서 "그들은 대낮에 사람들을 죽이고, 민간인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가자지구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알리고자 한다. 이번 휴전안이 하마스를 무장해제 시킬 만큼 충분히 강한 압력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은 "거미줄처럼 얽힌 방대한 터널 네트워크"라면서 우리가 목격한 건물 잔해 아래에서 자국 군인들이 발견했다는 터널 지도를 보여주었다. 일부는 이미 파괴되었고, 일부는 여전히 형태가 남아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아직 수색 중이라고 한다.

이번 휴전 합의의 다음 단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이 협정 이후 가자는 긴장과 불안정함이 뒤섞인 상태에 놓여 있다. 미국 또한 이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잘 알고 있다. 휴전은 이미 2차례나 위기를 맞았다.

미 당국은 이 불안정한 대치 국면을 넘어 보다 지속적인 평화로 나아가고자 압박을 가하고 있다. BBC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UN 안전보장이사회에 가자지구의 치안을 유지하고, 하마스를 무장 해제시킬 국제 안정화군을 2년간 운영하자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보냈다.

그러나 다음 단계의 구체적인 사항은 거의 알려진 바 없다. 하마스 무장 해제 전 가자지구의 치안 유지를 위해 어느 국가들이 병력을 파견할지, 이스라엘군은 언제 철수할지, 정치색이 없는 임시 기술관료형 가자 행정부의 구성원들은 어떻게 임명될지 등은 명확하지 않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투자를 바탕으로 건설된 미래형 중동 허브로서의 가자지구 비전을 제시한 바 있으나, 이는 오늘날 가자의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이스라엘에 의해 대부분 파괴된 이 땅을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대상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누가 전투를 멈출 수 있는가가 아니라, 가자 주민들은 자신의 공동체와 땅의 미래에 대해 과연 얼마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이다.

 가자지구의 황색선
BBC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