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월드컵: 출생국 아닌 다른 나라 대표팀 택하는 선수가 많아지는 이유
지난 14일(한국시간) 모로코는 1-1 무승부를 기록한 브라질과의 조별경기에서 25분 동안 월드컵의 새 역사를 썼다. 당시 경기장을 누비던 모로코 대표팀 선수 중 모로코 출생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번 2026년 FIFA 북중미 월드컵은 출생국이 아닌 다른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비율이 역대 가장 높은 대회다. 전체 참가 선수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미 이번 대회에서는 출생국을 상대로 득점한 선수도 나왔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브라힘 음바예는 17일 세네갈 대표팀 소속으로 프랑스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 해당 경기는 3-1로 세네갈의 패배로 끝났다.
지난 2022년 월드컵 당시에는 카메룬 태생이지만 스위스 대표팀 소속 공격수로 출전한 브릴 엠볼로가 월드컵 90여 년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출생국을 상대로 득점하며 어색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엠볼로는 기쁨과 승리를 만끽하며 뛰어다니는 대시, 마치 사과하는 듯한 제스처로 잠시 양손을 들어 올렸다.
엠볼로는 당시 기자들에게 "골을 넣더라도 존중의 의미에서 세리머니를 하지 않기로 미리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출된 공식 명단에 따르면, 올해 월드컵에 참가한 48개 대표팀 중 해외 출생 선수가 없는 팀은 단 8개에 불과하다.
이번이 월드컵 본선 첫 출전인 퀴라소의 경우 대표팀 26인 중 퀴라소 태생은 단 1명뿐이다. 카리브해의 섬인 퀴라소는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으로, 이번 대표팀 선수 대부분은 네덜란드 태생이다.
한편 카타르 대표팀은 아프리카, 유럽부터 남미에 이르기까지 선수들의 국적이 10개국에 달한다.
이러한 선수 구성은 흥미로운 집안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서로 다른 팀을 대표하는 형제가 4쌍에 달한다. 우선 데지레와 겔라 두에 형제는 각각 프랑스와 코트디부아르 팀에, 니코와 이냐키 윌리암스 형제는 각각 스페인과 가나 팀에, 해리와 존 수타 형제는 각각 호주와 스코틀랜드 팀에 속해 있으며, 이부형제인 데릭 루카센과 브라이언 브로비는 각각 가나와 네덜란드 팀에 속해 있다.
2026년 대회 이전까지는 월드컵에서 서로 다른 대표팀으로 출전한 형제 사례는 단 2차례뿐이었다. 이복형제인 제롬과 케빈프린스 보아텡이 2010년과 2014년 월드컵에 각각 독일과 가나를 대표해 출전했다. 보아텡 형제는 두 대회 모두 경기장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네덜란드 에라스므스 대학교의 역사학자이자 이주 및 정체성 연구 전문가인 기스베르트 오온크 교수는 축구 경기장에서의 이러한 흐름은 변화하는 세계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전 세계 인구의 거의 4%가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그는 "노동자와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경우 이 비율은 훨씬 더 높다"며 "이는 오늘날 세계의 이주 패턴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국기 바꾸기'에 관한 (다소) 짧은 역사
월드컵 참가 팀 내 해외 출생 선수의 비율은 최근까지 수십 년간 오르락내리락해 왔다.
옥스퍼드 대학교 '이민, 정책, 사회 센터(COMPAS)'의 연구에 따르면, 이 비율은 지난 2차례 대회까지는 2~14% 사이를 유지했으나, 이후 급증해 2022년 카타르 대회에서는 16.5%에 달했다.
2026년에는 참가 팀 수가 32개에서 48개로 늘어나면서, 해외 출생 선수의 비율도 23% 이상으로 상승했다. 즉 참가하는 선수 총 1248명 중 289명이 외국 출생 선수다.
FIFA는 1904년에 창설됐으나, 196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공식적인 국적 규정을 마련했다. 그 전까지는 선수들이 원하는 어떤 국가 대표팀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루이스 몬티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이 미드필더는 1930년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대표로 출전해 준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1934년 대회에서는 국기를 바꿔 달고 이탈리아 대표로 참가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로써 몬티는 서로 다른 2개의 국적으로 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해본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다.
1962년, FIFA는 출전 자격 기준을 발표했다. 선수들은 대표로 뛰고자 하는 국가의 시민권을 소지해야 하며, 선수 생활 동안 단 1개의 대표팀에서만 뛸 수 있게 됐다.
다만 구소련이나 유고슬라비아 출신 선수들처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적이 바뀐 경우는 예외가 인정됐다.
이후 2004년, FIFA는 유소년 대표팀과 성인 대표팀의 국적은 서로 다를 수 있도록 허용했다따. 대신 선수는 해당 국가와 "명확한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즉 부모나 조부모 중 적어도 1명이 해당 국가에서 태어났거나, 해당 국가에 최소 2년 이상 거주했어야 한다.
그 이후 거주 요건은 5년으로 늘어났으며, 21세 이전에 이전 소속 국가대표팀에서 3경기 이하만 출전했다면 이후 소속 대표팀을 바꿀 수 있도록 완화됐다.
'아틀라스 라이온스'에 합류
이러한 규정 완화는 모로코처럼 해당 자격을 갖춘 선수 상당수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른바 디아스포라(재외 동포) 국가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난 2010년대, 모로코는 자국 축구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 모로코계 공동체 규모가 큰 유럽 국가들에 스카우트를 파견했다.
이 과정에서 유입된 인재들은 모로코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핵심 요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아틀라스 라이온스(모로코 축구 대표팀)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4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스페인과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성공한 모로코 선수 총 3명 중 2명은 모로코 태생이 아니었다. 하킴 지예시는 네덜란드 태생이었고, 아슈라프 하키미는 바로 상대팀인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COMPAS의 선임연구원인 미리암 체르티 박사는 "이는 디아스포라를 부수적인 존재가 아닌, 국가 축구 시스템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국가의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심장이 시키는' 결정
체르티 박사는 축구 선수들의 국적 선택은 가족의 기대뿐만 아니라 국제 무대 진출 기회 등 "커리어, 정서, 정치 관련 요소"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세네갈 대표팀의 이브라힘 음바예는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을 거쳤으나, 지난해 17세의 나이로 세네갈 소속 대표팀을 선택했다. 어머니의 고국이다.
그는 당시 세네갈 방송사 'RTS'와의 인터뷰에서 "세네갈을 선택한 일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심장이 시킨 결정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 페페와 같이 귀화한 국가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브라질 언론이 그의 부친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브라질 태생의 페페는 2006년 브라질 대표팀 제의를 거절하는 대신, 자신이 2001년부터 거주하며 선수 생활을 했던 포르투갈을 선택했다.
그는 결국 2010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자신의 출생국인 브라질과 맞대결을 펼쳤다.
당시 페페는 기자회견에서 "포르투갈 국적 취득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며 "브라질과의 경기도 다른 어떤 경기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언제나 포르투갈의 유니폼을 빛낼 것"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국가대표 합류 제안을 받기도 한다.
카보베르데 태생 아버지 밑에서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로베르토 로페스는 2018년 '링크드인'을 통해 루이 아구아스 당시 카보베르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부터 대표팀 합류 제안을 받았다.
아일랜드의 샴록 로버스FC에서 뛰고 있는 로페스는 스팸 메시지로 오해해 몇 달을 무시했으나, 이후 실제 제안임을 알게 됐다.
로페스는 BBC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이 수비수는 지난 16일(한국시간), 유럽 챔피언인 스페인과 0-0으로 비긴 경기에서 카보베르데의 영웅이 됐다.
논란
그러나 이른바 '국적 고르기'에는 논란이 뒤따른다.
1998~2015년 FIFA 회장을 지낸 제프 블라터는 재임 기간 선수들(특히 브라질인 선수들)의 귀화 절차가 신속히 처리되는 추세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그는 2007년, "브라질인 선수들로 가득 찬" 팀들이 지배하는 월드컵은 "진정한 위험"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대중의 눈초리 또한 가혹할 수 있다.
브라질 태생의 스페인 공격수 디에고 코스타는 2014년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유럽 국가인 스페인을 대표하기로 선택했다. 스페인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해당 대회에서 그는 유럽 대표팀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현지 관중들로부터 끊임없는 야유를 받았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오온크 교수는 강의에서 이 사안을 언급할 때마다 논란이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일부 학생들은 만약 국가대표팀이 외국 출신 선수들에 의존할 경우 팬들은 "더 이상 그 나라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학생들은 인권의 관점에서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자. 그것은 선수들의 직업이자 생계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체르티 박사는 축구 또한 사회적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국가대표팀은 더 이상 특정 국경 내 인구만을 담지 않습니다. 점점 더 이주, 역사, 글로벌 이동성의 흐름을 반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