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서 BTS 월드 투어 티켓 사기 기승…'몇달치 월급을 날리기도'
지난 9일, 비비(26)는 '티켓마스터'에 로그인하며, 자신이 수년간 기다려온 BTS 완전체 공연을 마침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그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팬들과 마찬가지로, 티켓 예매 전쟁을 앞두고 자신이 철저히 대비했다고 믿었다. 심지어 이날을 위해 회사에 휴가도 냈다.
7인조 그룹 BTS의 대규모 월드 투어가 수도 자카르타에서 열릴 예정이었고, 이는 오랜 팬으로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공연이었다.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운명을 좌우할 대기 순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막상 차례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티켓이 모두 매진된 뒤였다.
이후 추가 판매가 몇 번 더 있어 계속 도전했지만, 번번이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비비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너무나도 인기가 높았기에 (티켓 구매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어떻게든 콘서트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비비는 X(구 트위터)에서 티켓을 재판매한다는 계정을 발견했고, 1200달러(약 180만원)를 주고 VIP 좌석 티켓 4장을 구입했다. 물류 회사에 다니는 그의 두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판매자는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다.
비비는 "돈을 보내자마자 판매자가 사라져버렸어요. 끔찍했죠. 너무 슬프고 가슴이찢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총 88회에 달하는 BTS의 이번 월드 투어 공연 중 15회가 동남아시아에서 열린다. 하지만 이 지역의 절박한 팬들은 폭발적인 수요를 노린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면서 약 10만달러(약 1억5000만원) 규모의 달하는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를 '아미(ARMY)'라고 부르는 BTS 팬들에게 지난 한 달은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3년간의 단체 활동 공백기 끝에 멤버들이 다시 투어에 나선다는 소식에 들떴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한 티켓 예매 경쟁으로 인해 사기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태국에서는 티켓 구매를 위한 "줄서기"를 도와주겠다는 제안에 속아 피해를 입은 팬들 126명이 제기한 민원과 관련해 현지 의원들이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사기꾼들은 온라인 팬 커뮤니티에도 침투해 독점적인 구매 기회나 더 저렴한 가격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돈을 받자마자 잠적해버린다. 일부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티켓이 진짜임을 입증하겠다며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법적 의사결정권을 위임하는 데 사용되는 '위임장'과 같은 문서까지 제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수법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에 당국이 여러 차례 경고를 발령하기도 했으나, 일부 팬들은 여전히 사기 피해를 당하고 있다.
BTS는 올해 4월에 시작해 2027년까지 이어질 이번 투어에서 전 세계 34개 도시를 순회할 예정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BTS와 소속사 '하이브'가 이번 BTS 활동을 통해 콘서트, 굿즈, 라이선싱, 앨범 판매 및 스트리밍 수익 등을 합쳐 약 20억달러(약 3조원)를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했다.
BBC가 확인한 결과, 아시아에서는 티켓을 구하려는 수요가 실제 판매량의 15배에 달했다.
막대한 수요로 인해 새로운 공연 일정도 잇따라 추가되고 있다. 일례로 바로 지난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필리핀 불라칸에서는 각각 3번째 공연이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 일정이 발표되자 비비는 "다시 그 티켓을 위해 싸워보기로" 결심했고,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공식 채널을 통해 예매했다.
"당시 회의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는데, 티켓을 놓칠까 봐 너무 초초했다"는 그는 "빨리 돈을 보내서 선점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잠시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폈더라면 위험 신호를 눈치챘을지도 모르죠."
싱가포르에서도 6월 1일 이후 BTS 콘서트 티켓과 관련된 신고가 최소 62건 접수됐으며, 피해액은 6만8000싱가포르달러(약 8000만원)를 넘어섰다.
싱가포르 기반의 전자상거래 기업 '캐러셀'은 BTS의 싱가포르 마지막 공연이 열리는 12월 22일까지 자사 플랫폼 내 티켓 재판매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지난주 현지 경찰은 티켓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개인들로부터 28건의 신고를 접수했으며, 거래에 연루된 '대포통장'을 추적 중이라고 한다.
초창기 BTS의 콘서트는 주로 한국, 일본, 미국 등에서 열렸다. 이후 그룹의 인기가 높아지고 전 세계 팬들이 모여들면서 공연 장소는 아시아, 유럽, 중동,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아리랑'은 BTS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시아 5개국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펼치는 첫 월드 투어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티켓 가격은 100~300달러 수준이다. 가장 비싼 패키지 구매 시, 공연 전 사운드체크 관람, 프리미엄 좌석, BTS 굿즈 제공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멤버들의 희로애락과 글로벌 슈퍼스타가 되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비비와 같은 팬들에게 고향에서 열리는 컴백 투어는 의미가 깊다.
비비는 BTS가 데뷔한 지 약 1년 후인 2014년, 14살 때 이들을 처음 알게 됐다.
비비는 이들의 음악도 사랑하지만, 무엇보다도 RM, 진, 슈가, 제이홉, V, 지민, 정국 등 일곱 멤버들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이들이 "매우 진실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2019년, BTS의 마지막 월드 투어를 보고자 혼자 태국 방콕까지 날아갔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으며, 콘서트장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멋진 경험이었어요."
그렇게 7년이 지난 현재, BTS가 자카르타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티켓을 구하고자 정말 많이 준비했지만, 솔직히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모든 아미가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비비에 따르면 일부 팬들은 티켓 판매 당일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인근 피시방에서 일주일 내내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피시방의 빠른 인터넷 속도가 성공 확률을 높여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비비는 "인도네시아 팬들은 단순히 티켓 구하기 전쟁만 치르는 게 아니"라며 "우리는 가장 좋은 PC방을 확보하고자, 고사양 휴대전화를 빌리고자 싸우기도 합니다.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예매에 실패한 팬들은 깊은 실망감에 시달린다.
한 필리핀 팬은 스레드에 "마치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고국에서 공연이 열린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기다려온 팬들이 멤버들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우리 중 일부는 단순히 콘서트에 가고 싶은 게 아닙니다. 우리는 수년 동안 응원해 온 그 일곱 사람을 마침내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편 단순히 운에만 맡겨두지 않는 팬들도 있다.
지난주, 주랄룩 쿠나룩(23)은 피해자 125명을 대표해 태국 의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공식적인 티켓 판매 개시 며칠 전, 한 X 사용자에게 각각 수백달러를 송금했다.
해당 사용자는 피해자들에게 좋은 좌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정작 판매가 시작되자 X 계정을 삭제하고 사라졌다.
쿠나룩은 "나는 해당 계정을 꽤 오랫동안 지켜봐왔다"며, "리뷰도 많고, 팔로워도 많아서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VIP 패키지를 구매하는 줄 알고 2만5000바트(약 116만원)를 건넸다.
쿠나룩은 2주 동안 의원들을 만나고자 고향 마을에서 수도 방콕까지 몇 시간 거리를 여러 번 오가고 있다.
"의원들은 우리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그는 "그래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콘서트에 대한 희망도 포기하지 않았다
"멤버들을 직접 볼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가고 싶습니다."
사실 이는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과거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를 비롯해 엄청난 인기를 끈 콘서트에서도 유사한 사기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일부 팬들은 BTS 콘서트 주최사인 '라이브 네이션'과 티켓 판매 파트너사들에 사기 방지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이번 BTS 월드 투어 티켓 판매를 담당하는 라이브 네이션의 자회사인 '티켓마스터'는 이미 "새로운 AI 기술과 규정 강화를 통해 티켓 암표상 및 봇에 대한 대응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일례로 콘서트 당일, 관람객의 등록 이메일 주소와의 대조 및 검증 절차가 이루어질 예정이며, 재판매된 티켓을 소지한 경우 입장이 거부될 수 있다.
티켓마스터의 한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반드시 공식 경로를 통해서만 티켓을 구매하라"고 당부했다.
"아티스트의 (공식) 웹사이트는 언제나 팬들에게 올바른 구매 경로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티켓을 구하지 못해 낙담한 팬들은 마치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지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듯하다.
필리핀에서 고객서비스 담당자로 일하는 쿠키(30)는 2번이나 티켓 구매에 실패하자 결국 재판매업자를 찾았다. 그는 자신이 나름 신중했다고 생각했다. "(판매자를) 페이스북 친구로 추가하고, 그의 계정과 전공, 출신지도 모두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BBC가 인터뷰한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돈을 건넨 뒤 문제가 생겼다. 이 판매자는 페이스북에서 쿠키를 차단해버렸고, 티켓도 전달해주지 않았다.
쿠키는 "부끄럽다. 가족이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무슨 일을 당했는지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들에게 평가받거나, '너 멍청하니?'같은 말을 듣고 싶지 않거든요. 정말 콘서트에 가고 싶었기에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한편 비비는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일이 멤버 V의 생일과 겹치기에 "힘든 싸움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운을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사전 판매일인 지난 19일 또다시 실패했다.
"정말 모든 사람이 그 마지막 공연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해 눈물을 흘렸지만, 다음 날 예정된 일반 판매를 대비해 전략을 세웠다.
비비와 친구들은 자카르타 전역으로 흩어져 "각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인터넷 연결망과 계정을 통해" 예매 전쟁에 나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침내 성공했다. 결국 티켓을 손에 넣었다.
추가 보도: 버마 시모네트 기베라(마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