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파티마 보쉬 미스 유니버스 우승... 집단 퇴장과 각종 논란 남긴 대회
방콕에서 열린 제 74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멕시코 대표 파티마 보쉬(25)가 21일(현지시간) 우승을 차지하며, 특히 각종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이번 대회가 막을 내렸다.
보쉬는 이달 초 미스 유니버스의 태국 측 관계자가 참가자 수십 명 앞에서 자신을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두둔하는 다른 참가자들은 실격시키겠다고 위협하자 자리를 떠나며 주목을 받았다.
이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일주일 뒤에는 심사위원 2명이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한 심사위원은 주최 측의 결선 후보 선출 조작설을 주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인대회 중 하나인 미스 유니버스가 최근 그 존재 의미와 시청률 하락에 대한 의문에 직면한 가운데 불거진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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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최종 우승 결과 또한 논란을 더욱 부추기는 가운데, 미스 멕시코의 우승 소식에 온라인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여러 멕시코인들은 물론 보쉬의 퇴장을 지지했던 이들은 그의 승리를 축하하고 나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해당 논란을 만회하고자 주최 측이 보쉬에게 왕관을 준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편 2위는 태국의 프라비나르 싱이, 3위는 베네수엘라의 스테파니 아바살리가 차지했다. 이어 필리핀의 마 아티사 마날로, 코트디부아르의 올리비아 예이스가 그 뒤를 이었다.
방콕에서 벌어진 논란
사건이 벌어진 곳은 본선 대회를 앞두고 이달 초 열린 예비 행사였다. 태국 미디어계 거물이자 이번 대회를 조직한 나와트 이차라그리실이 참가자 수십 명 앞에서 보쉬를 공개적으로 질책한 것이다. 대회 홍보용 게시물을 SNS에 올려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보쉬가 항의하자 이차라그리실은 경비원을 불렀고, 보쉬를 두둔하는 참가자들은 실격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보쉬는 즉각 자리를 떠났고, 다른 참가자들도 이를 지지하며 집단 퇴장했다.
해당 사건에 전 세계 언론이 주목했다.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는 이차라그리실의 행동이 "악의적"이었다고 비난했으며, 동업자인 멕시코 사업가 라울 로차는 화상 연결을 통해 이차라그리실이 "그만두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나서 보쉬는 폭력에 맞서 "우리 여성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내는지" 보여주는 본보기라며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21일 치러진 결승전 당일, 이차라그리실은 인스타그램에 관객석에 있는 사진을 올렸으나, 무대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보쉬가 왕관을 받은 직후에는 자신의 SNS에 태국어로 "말할 수 없는 억만 개의 말"이라며 한 줄짜리 성명을 게시했다.
또한 기자들에게는 "이번 결선 결과에 대해서는 집에서 시청하시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 어디서든 사람들이 각자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온라인에서 일부 팬들은 이러한 논란이 보쉬의 우승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도 나왔다. 이번 우승은 멕시코의 네 번째 미스 유니버스 수상 기록이다.
한 네티즌은 "내년에도 누구든 퇴장하는 사람이 우승할 것"이라고 적었으며, 또 다른 네티즌은 "주최 측은 대회를 살리고자, 앞서 발생한 사건을 만회하고자 보쉬의 머리에 왕관을 씌울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BBC는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에 의견을 요청했다.
조직위는 공식 SNS를 통해 보쉬의 "우아함, 강인함, 빛나는 정신이 전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며 이번 연도 우승자를 칭찬했다.
한편 집단 퇴장 사건이 벌어진 지 일주일 만에 심사위원 2명이 돌연 사임 의사를 밝혔는데, 이중 한 명은 주최 측이 선발 과정을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레바논계 프랑스인 음악가인 오마르 하포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총 8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에서 자신은 사임하겠다고 밝히며, 21일 결승전을 앞두고 "즉흥으로 꾸려진" 심사위원단이 결승 진출자를 미리 선정했다고 주장했다.
몇 시간 뒤, 전직 프랑스 축구 스타 클로드 마켈렐레 역시 "예상치 못한 개인적인 사유"를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조직위는 하포취의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며, "외부 단체가 참가자를 평가하거나 결승 진출자를 선정할 권한을 부여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21일 보쉬의 최종 우승 발표 직후, 하포취는 또 한 번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별개의 사건이나 지난 19일 밤 치러진 예선 이브닝드레스 심사 무대에서는 자메이카 대표가 넘어지며 들것에 실려 이송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장면을 담은 영상이 즉각 SNS를 통해 퍼져나갔고, 이후 조직위는 자메이카 대표가 입원한 상태이긴 하나, 골절상은 입지 않았으며,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혼란한 리더십
이러한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스 유니버스를 소유한 태국인과 멕시코인 대표 사이 존재하는 문화적, 전략적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조직한 사람은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의 창립자이자 소유주로 유명한 나와트 이차라그리실이다.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은 미스 유니버스 보다는 소규모 대회로, 태국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SNS에서 활발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로 유명한 대회다.
이차라그리실이 올해 미스 유니버스 대회 개최권을 보유하고 있긴 하나,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를 운영하는 인물은 멕시코 사업가 라울 로차이다.
이 새로운 경영진은 대회 시작 직전 꾸려졌다.
지난 2022년, 태국의 유명 트랜스젠더이자 미디어 거물인 앤 짜끄라퐁 짜끄라쭈타팁이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엔데버'로부터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인수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짜끄라쭈타팁은 더 포용적인 대회를 만들고자 트렌스젠더 여성, 기혼 여성, 자녀가 있는 여성의 참가도 허용하는 한편 연령 제한도 폐지했다.
그러나 이후 수년간 시청률이 감소하자 그는 미스 유니버스 브랜드를 상품화하여 생수, 가방 등의 상품을 만들어 수익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던 2023년, 짜끄라쭈타팁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JKN'은 "유동성 문제"로 파산을 신청했다.
짜끄라쭈타팁은 올해 예선 대회가 열리기 직전 JKN의 CEO직에서 물러났으며, 과테말라 외교관 출신인 마리오 부카로가 이어받았다.
멕시코 출신 로차는 짜끄라쭈타팁이 사임 전 사업 파트너로 영입한 인물이며, 이차라그리실은 올해 대회 조직을 맡긴 인물이다.
한편 미국 출신 미인대회 우승자이자 미인대회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대니 워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스 유니버스 대회 경영진이 "변경되는 과정이 매우 매끄럽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워커에 따르면 현재 경영진의 역할이 방콕과 멕시코 사이에서 양분되어 버렸다고 한다.
워커는 엔데버, 그리고 그 이전 도널드 트럼프가 대회를 운영하던 시절에는 리더십 구조가 훨씬 더 명확했다고 회상했다.
이전 두 소유주 아래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 위원장을 역임한 폴라 슈가트 또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팬들과 외부인들에게는 매우 혼란할 수밖에 없다. 누가 진짜 리더인지, (대회 관련) 질문이 생기면 누구에게 문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이는 브랜드에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태국의 라틴아메리카학 전문가이자 미인대회 전문가인 티티퐁 두앙콩은 대회 관계자들이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앙콩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나라에서는 태국 사람끼리 태국어로 소통한다"면서 "우리는 사회적 맥락과 구조, 사회 내 권력 불평등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태국어를 통해 그것을 끊임없이 협상하고자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짜끄라쭈타팁이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점이 마초문화에 익숙한 일부 라틴아메리카 팬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라고 분석했다.
"여성이 아닌 사람이 갑자기 여성의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대회를 사들였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미스 유니버스 대회의 미래는?
1952년 시작된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어느덧 74회차를 맞이했다. 이 역사에는 1년에 1번 열리는 TV 쇼에서 벗어나 틱톡 시대에 맞는 미디어 브랜드로 진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SNS의 발달로 미스 유니버스 본선 방송은 지난 수년간 시청률 하락을 맛보아야만 했다.
우승자들, 본선 진출자들조차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수백만을 보유하며 인플루언서로 변신했다.
이차라그리실의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대회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등 이러한 이커머스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 중이다. 이차라그리실은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도 이러한 판매 방식을 적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여전히 미인대회 우승자들이 화려한 TV 유명인로 여겨진다.
심지어 라틴 아메리카 시청자들을 위한 미스 유니버스 리얼리티 쇼가 제작되기도 했는데, 쇼에서 우승하며 '미스 유니버스 라티나'로 선발된 도미니카 출신 여성은 방콕에서 열린 이번 본선에도 출전했다.
라틴 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여전히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회 우승이 가난에서 벗어나거나, 유명인이 되는 지름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한편, 현대 사회에서 그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도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논란을 의식한 주최 측도 변화에 나서고 있다. 올해 수영복 심사 무대에서 참가자 대부분이 비키니를 착용하였으나, 보수적인 국가 출신 참가자들에게는 전신 수영복 착용이 허용되었다.
슈가트 전 회장은 "물론 모두가 이 대회를 좋아하진 않을 것이며, 항상 반대하는 이들은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핵심 가치가 유지되는 한 미인대회는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여성 역량 강화가 미인대회 조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가하는 여성들의 역량 강화를 돕지 않는다면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