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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

2024.09.25
하마스 지도자 칼레드 메살(왼쪽), 야히아 아야쉬(오른쪽)와 복면을 쓴 이스라엘 요원
Getty Images

최근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던 무선 호출기 등의 통신 장치가 폭발했다.

이스라엘의 첨단 감시망을 피해 비교적 안전한 수단으로 판단해 사용하던 장치가 놀랍게도 이동식 폭탄 장치로 변모해 사용자의 손에서 폭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레바논 정부는 “범죄적 공세”라며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나섰으며, 헤즈볼라는 “정당한 보복”을 다짐했다.

아직 이스라엘은 이 같은 배후설에 대해 답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 이스라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장관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공개적 발언을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사실 이전부터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활동을 면밀히 감시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번 작전 또한 양측이 계속 이어오던 갈등의 일환일 수 있다.

만약 이스라엘이 배후가 맞다면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이 벌인 가장 놀랍고도 영향력 있는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국가 정보 기관인 ‘모사드’가 과거 벌인 여러 작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후세인 암하즈가 사망한 지 하루 뒤인 지난 18일 열린 장례식
Getty Images
통신 장치 폭발로 사망한 헤즈볼라 대원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모사드의 성공 역사

모사드는 수많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봤다.

‘나치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 성공

아돌프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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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모습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추적해 체포한 일은 모사드의 가장 유명한 첩보 작전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의 핵심 설계자였다. 홀로코스트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약 600만 명이 나치 독일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후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감시망을 피하던 아이히만은 결국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그러나 14명으로 구성된 모사드 요원팀은 그를 끝까지 추적해 체포해 이스라엘로 데려왔다.

결국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당했다.

엔테베 작전

부축받는 여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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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베 작전으로 항공기 납치 사건의 인질들은 일주일 만에 구출됐다

1976년 우간다에서 수행한 ‘엔테베 작전’은 이스라엘의 가장 성공적인 군사 작전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모사드가 정보를 제공하고, 이스라엘 군이 작전을 수행한 사례다.

당시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소속 대원 2명과 독일인 공범 2명이 이스라엘 공항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여객기를 납치한 뒤,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착륙해 승객과 승무원을 인질로 잡은 사건이다.

이에 이스라엘 특공대가 공항을 급습했고, 이스라엘인과 유대인 인질 100명을 구출해냈다.

이 과정에서 인질 3명, 납치범들, 우간다 군인 여러 명, 특공대 지휘관이었던 요나탄 네타냐후(베냐민 네타냐후 현 이스라엘 총리의 형)가 사망했다.

브라더스 작전

에티오피아 유대인들로 가득 찬 차량과 남성 모사드 요원.
Raffi Berg
수단에서 몰래 빠져나오는 에티오피아 유대인들과 모사드 요원

1980년대 초, 모사드는 메나헴 베긴 당시 이스라엘 총리의 지시에 따라 위장 다이빙 리조트를 설립해 수단에 고립된 에티오피아 유대인 7000여 명을 몰래 이스라엘로 대피시켰다.

수단은 아랍연맹에 속한 적대국이었기에 모사드 요원들은 수단의 홍해 연안에 리조트를 건설하고, 이를 근거지로 삼아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했다.

낮에는 호텔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이웃국 에티오피아에서 몰래 빠져나온 유대인들은 항공 및 해상 경로를 통해 이스라엘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해당 작전은 최소 5년 동안 진행됐으며, 발각됐을 땐 이미 모사드 요원들이 다 빠져나가고 난 뒤였다.

뮌헨 올림픽 참사 이후 보복

희생된 동료들을 위한 추모식에 참석한 이스라엘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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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대표팀 선수들이 1972년 뮌헨 올림픽 기간에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동료들을 위한 추모식에 참석해 뮌헨 올림픽 경기장에서 행진하고 있다

1972년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검은 9월단’은 뮌헨 올림픽 기간 중 선수촌에 잠입해 이스라엘 올림픽 대표팀 2명을 살해하고 9명을 납치했다.

그러나 서독 경찰의 구출 시도가 실패로 끝이 나면서 9명도 살해된 채 발견됐다.

1972년 올림픽 중 살해된 이스라엘 선수 및 스태프 11명의 초상화. (왼쪽 위부터) 요세프 구트프로인트(40), 모셰 바인베르그(33), 요세프 로마노(32), 데이빗 버거(28), 마르크 슬라빈(18), 야코브 스프링게르(52), 제브 프리드만(28), 아미추르 샤피라(40), 엘리에제르 할핀(24), 케하르 쇼르(53), 안드레 스피처(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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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뮌헨 올림픽에 참석한 이스라엘 대표팀 11명은 선수촌에 난입한 팔레스타인 무장 괴한들에 의해 사망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모사드는 마흐무드 함샤리 등 해당 사건의 의심되는 인물들을 추적했다. 함샤리는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휴대전화에 설치된 폭발 장치가 터지면서 한쪽 다리를 잃었으며, 이후 결국 부상으로 인해 사망했다.

휴대전화 폭탄으로 야히아 아야쉬 암살

야히아 아야쉬
EPA
팔레스타인 대의의 상징으로서 포스터에 등장한 야히아 아야쉬의 사진

1996년, 모사드는 비슷한 작전을 수행했다. 하마스의 주요 폭탄 제조자인 야히아 아야쉬를 모토로라 휴대전화에 장착된 폭발물 50g으로 암살한 것이다.

아야쉬는 하마스 군사부의 주요 지도자로, 특히 폭탄 제조 및 이스라엘 목표물을 향한 복잡한 공격을 조율하는 전문 지식으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그는 모사드가 가장 추적하기를 원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2019년 말, 이스라엘은 해당 암살 사건과 관련한 일부 세부 사항을 공개했고, 이스라엘 현지 방송 ‘채널 13’은 아야쉬가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음성을 공개했다.

함샤리와 아야쉬 암살은 모사드가 첨단 기술을 동원해 표적을 암살해 온 길고도 복잡한 역사 중 대표적인 사건이다.

마흐무드 알-마부 교살

마흐무드 알-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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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무드 알-마부는 호텔 객실에서 전기 충격으로 마비된 뒤 교살당했다

2010년, 하마스의 고위 군 지도자 마흐무드 알-마부가 두바이의 한 호텔 객실에서 암살당한 채 발견된다.

처음에는 자연사로 보였으나, 두바이 경찰은 감시카메라 영상을 분석한 끝에 암살팀의 정체를 특정할 수 있었다.

이후 현지 경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알-마부는 전기충격으로 마비된 뒤 목이 졸려 살해됐다고 한다.

이 작전의 배후로 모사드가 의심된 가운데, 아랍에미리트는 외교적으로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외교 당국은 모사드를 이번 작전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증거는 없다며 맞섰다. 그러나 관련성을 부인하지도 않았는데, 이는 이 같은 사건에 대해 “애매모호함”을 유지하는 이스라엘의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실패한 암살 시도

이렇듯 수없이 많은 작전을 성공시킨 모사드지만, 잘 알려진 실패 사례도 존재한다.

‘하마스 정치 지도자’ 칼레드 메샬

칼레드 메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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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드 메샬은 1996~2017년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직을 지냈다

1997년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정치부 지도자인 칼레드 메샬을 요르단에서 독살하려던 작전은 중대한 외교적 위기로 이어졌다.

이스라엘 요원들이 체포되면서 암살 작전을 실패로 끝이 났으며, 이스라엘은 메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해독제를 내놓아야만 했다.

당시 모사드의 수장이었던 대니 야톰은 메샬을 치료하고자 요르단으로 향했다.

메샬 암살 미수 사건은 당시 평화 조약을 체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의 관계를 크게 경직시켰다.

‘하마스 지도자’ 마흐무드 알-자하르

마흐무드 알-자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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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무드 알-자하르는 모사드가 가장 찾아내고자 했던 하마스 지도자 중 하나였다

2003년, 이스라엘은 가자시티에 자리한 마흐무드 알-자하르의 자택을 노린 공습을 감행했다.

하마스 지도자였던 알-자하르는 살아남았으나, 그의 아내와 아들 칼레드 등 여러 명이 숨졌다.

당시 폭격으로 그의 자택이 완전히 파괴됐는데, 이는 인구 밀집 지역에서 벌이는 군사 작전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라본 사건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발표하는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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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말 압델 나세르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발표했다

1954년, 이집트 당국은 ‘수잔나 작전’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첩보 작전을 좌절시켰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내 미국과 영국 시설에 폭탄을 설치해 이들이 수에즈 운하에 계속 군대를 주둔시키도록 압력을 가할 계획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었던 핀하스 라본의 이름을 따 이후 ‘라본 사건’으로 알려졌다. 라본 장관은 해당 작전 계획과 관련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모사드는 첩보전 측면에서 몇 가지 치명적인 실패를 겪은 것으로 짐작된다.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수에즈 운하와 이스라엘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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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아랍과의 전쟁 중 수에즈 운하를 바라보는 이스라엘 군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는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탈환하고자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유대인의 속죄일인 욤 키푸르 날 공격을 감행했기에 전쟁 초기 이스라엘 군은 허가 찔렸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전선 두 곳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집트 군은 수에즈 운하를 건넜고, 예상보다 적은 사상자만 냈으며, 시리아 군은 이스라엘 진지를 공격하고 골란고원까지 진격했다.

소련은 시리아와 이집트에 물자를 지원했으며, 미국은 이스라엘에 긴급히 물자를 지원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시리아 군을 격퇴했고, 전쟁은 10월 25일 끝이 났다. UN의 종전 촉구 결의안이 채택된 지 4일 만이었다.

2023년 10월 7일 공격

10월 7일 하마스가 기습한 현장을 둘러보는 요원
AFP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를 노린 하마스의 공격으로 약 1200명이 숨졌다

그로부터 거의 50년이 지난 뒤인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경계선 근처 남부 지역을 노린 하마스의 기습에 또 한 번 놀라게 됐다.

분석가들은 모사드의 예측 실패는 이스라엘의 하마스 억제 정책이 지닌 약점을 반영하는 대실패로 여겨진다고 한다.

이스라엘 당국은 10월 7일 공격으로 대부분 민간인으로 구성된 약 12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약 250명이 가자 지구에 인질로 납치됐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전쟁을 시작해 이어오고 있다. 가자 지구 내 하마스가 운영하는 보건부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지금까지 약 4만 명이 숨졌으며, 이 중 대부분이 민간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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