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

10년 넘게 로마 가톨릭교회를 이끈 프란치스코 교황이 향년 8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교황은 지난 20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수천 명의 신자들에게 "행복한 부활절"을 기원하며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휠체어를 탄 교황은 발코니 아래 성 베드로 광장의 환호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들었다.

2013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으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선출됐을 때만 해도 그는 일종의 외부인에 가까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라틴아메리카 출신이자 예수회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를 이끌게 된 획기적인 인물이었다.
교황의 생애를 대표하는 여러 장의 사진을 정리해봤다.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 뿌리를 가진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자라며 소박함과 신앙에 대한 깊은 헌신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베르고글리오는 예수회 내에서 빠르게 성장해 1973년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이 됐다.

1998년 베르고글리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됐다.

그는 신자들을 돌보고, 겸손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그는 고위직의 과시적인 요소를 거부하고 소박한 아파트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지역사회와 직접 소통하는 삶을 택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했고, 그는 교황청 내 행정조직인 쿠리아에서 직책을 맡았다.

2013년 3월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흰색 옷을 입은 교황은 환경과 동물, 새의 수호성인인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 경의를 표하는 새로운 이름을 취했고, 자비와 겸손, 사회 정의를 강조하는 교황직의 기조를 세웠다.

시리아 태생의 그레고리 3세가 741년에 서거한 이후 비유럽인 출신 로마 주교는 없었다.
새로운 교황의 정통적이지 않은 배경이 바티칸에 활력을 불어넣고 거룩한 사명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처음부터 자신의 교황직이 단순함과 섬김에 초점을 맞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오, 나는 가난한 교회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원한다"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교황으로서 그는 동방 정교회와의 천 년 동안의 균열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프란치스코는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와 협력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대통령을 설득해 평화를 위한 기도에 동참하도록 했다.

교황직을 수행하는 동안 어려움도 있었다. 교황은 그가 전통적인 교리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 교회 내 보수파의 저항에 부딪혔다.
교황 취임 초기에 동성애자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교황은 이렇게 답해 화제를 모았다. "내가 누구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교황직에 있어 가장 큰 도전은 그가 아동 학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비롯됐다.

교황은 성직자들에게 의심되는 학대 사례를 상급자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했으며, 내부 고발자들이 위협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를 전 세계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교황은 2015년 12월 8일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했다.
이 기간 동안 성 베드로 성당을 비롯한 로마 내 주요 성당의 성문이 개방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4년 세계 최대 경제국 정상들이 모이는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최초의 교황이 됐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포럼에서 교황은 인류가 직면한 심각한 위험, 특히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과 같은 분쟁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인공지능(AI)이 윤리와 인권에 미치는 위험성을 경고하며 전 세계적인 규제를 촉구했다.

교황은 회고록 '나의 인생'에서 건강 문제로 인해 사임할 것이라는 추측에도 불구하고 사임할 위험이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2025년 2월 14일, 그는 기관지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추가적인 임상적 우려로 인해 추가 치료를 위해 입원 기간이 연장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와 겸손, 사회 정의의 비전으로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들을 이끌며 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섬김과 단순함의 삶이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