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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국경에 몰린 이란 국민, 혼란·불안·검열을 말하다

6시간 전

튀르키예-이란 국경을 넘는 이란 국민들은 고국을 떠날 것인지 다시 돌아가야 할지 결정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인터넷 차단, 국가의 검열, 파괴적 공습으로 인해 불확실성과 공포가 커졌기 때문이다.

파르나즈(가명)는 미국의 중재에 따라 불안정한 휴전이 발효되기 전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폭격이 시작됐을 때 폭격을 당한 것이 우리 동네만인지, 아니면 나라 전체인지 알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란계 미국인 예술가 파르나즈는 당시 가족을 만나기 위해 테헤란을 방문 중이었다. 그는 국영 언론을 믿을 수 없었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며칠동안 문도 창도 없는 어두운 상자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며 "밖에서 소문과 소리만 들리는데,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고 정말 끔찍했다"라고 설명했다

파르나즈는 이란 국경과 가장 가까운 튀르키예 도시 반(Van)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은 전쟁 전부터 이란 여행객이 즐겨 찾는 도시였다. 휴가·사업·쇼핑을 원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시 곳곳에는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음식점·상점·여행사가 많다.

파르나즈는 테헤란에서 튀르키예 국경까지의 육로 이동이 매우 무서웠다고 말했다.

미국 여권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됐다는 것이다.

파르나즈는 "군인과 경찰이 우리 차를 세 번이나 세웠고, 가방을 하나하나 다 열어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테헤란을 향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이 계속되는 만큼, 너무 늦기 전에 테헤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파르나즈는 공습 첫날 밤을 회상했다.

"끔찍했어요. 무서운 진동이 느껴졌고 창문이 산산조각 났죠. 진동이 심해서 침대까지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처음엔 악몽을 꾼 줄 알았는데, 잠에서 깨고 보니 다들 충격과 공포에 빠져 있었어요. 그때 꿈이 아니라는 걸 알았죠. 모든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파르나즈는 튀르키예에 도착한 뒤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당연히 가족들이 걱정됐지만, 이슬람 공화국 정권의 종식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기뻤습니다."

카피코이/라지 검문소와 공항에서는 인터뷰에 응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란 정권은 외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거나, 적으로 규정한 특정 외신과 협력했다는 혐의로 사람들을 체포하고 처형해 왔다. 이란을 떠나는 사람과 이란으로 돌아가려는 사람 모두, 공포·의심·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여성은 이란에서 오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검문소 근처에 4시간 넘게 서 있었다.

그는 "인터넷이 먹통이라 연락이 안 되지만 곧 도착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몇 시간 뒤 마침내 젊은 여성 두 명이 도착했다. 세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친구들이 힘든 여정을 겪었어요. 이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고 싶어요."

하지만 국경에 있는 모두가 이란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국경은 주 7일 내내 개방되어 있다.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규모로 이동하기 때문에 붐비지는 않았다.

도로 오른편에는 미니버스가 도착했고, 가족들이 국경을 향해 걸어갔다.

어머니와 함께 이동하던 한 젊은 여성은 "전쟁이 걱정은 되지만 내 집은 테헤란에 있다. 내 삶이 거기 있으니 돌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집을 멀리 떠나 있는 것이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들어오는 정보가 다 달라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26세 여성 창업자는 캐나다의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튀르키예로 들어와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고 공황 상태에 빠졌어요. 나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니까요. 일반 국민에게 정보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는 테헤란에 있는 할아버지와 다른 가족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 나지는 미국의 공습에 대해 "정말 끔찍한 뉴스였다. 너무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그는 딸을 공항에 데려다준 뒤 테헤란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란-이라크 전쟁도 견뎠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끔찍했죠. 이번 일도 결국 지나갈 거라고 믿어요."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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