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5일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중국은 무엇을 원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갖는다. 한국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은 9년 만이며, 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경주 정상회담 이후 두 달여 만에 다시 마주한다.
이번 방중을 앞두고 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지, 중국이 한국에 어떤 요구를 제시할지가 주목된다.
어떤 의제 오르나
청와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오는 4∼7일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우선 이 대통령은 4일 베이징에 도착해 동포들과 만찬 간담회를 가진 뒤 이튿날인 5일 오후 시 주석과 회담한다. 방중 기간 이 대통령은 국빈 만찬을 포함한 공식 일정을 소화하고, 중국 주요 지도부와의 면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6일 중국 국회의장 격인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을 면담한 뒤 리창 총리와 오찬을 갖고, 한중 우호 정서 증진과 새로운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어 7일 상하이로 이동해 천지닝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와 만나 지방정부 간 교류와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을 논의하는 한편, 경제·민생 분야 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소통 강화를 핵심 의제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일 브리핑에서 "전략 대화 채널을 복원해 정치적 신뢰를 다지고 양국 국민이 관계 개선을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특히 이번 방중을 계기로 경제와 민생 분야를 중심으로 한중 관계 복원 흐름을 공고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경주 정상회담에서 합의됐던 공급망 안정화와 인공지능(AI) 분야 협력 관련 양해각서(MOU)의 이행을 위한 후속 논의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국빈 방문에는 대규모 경제사절단도 동행한다. 정부는 제조업과 소비재 등 양국의 비교우위 산업 간 상호 보완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 협력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양국 간 문화·인적 교류 정상화 문제도 주요 과제로 거론된다. 최근 한국 내에서 반중 집회가 이어지고, 중국에서도 반한 정서를 둘러싼 보도가 잇따르는 등 양국 여론 환경이 악화된 점이 배경이다.
이에 따라 양국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청년·학술·문화 교류 재가동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관계 회복 방안을 함께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사절단에 콘텐츠 기업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른바 '한한령' 완화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에 대해 위 안보실장은 "중국 측의 공식 입장은 그런(한한령) 조치가 없다는 것이지만, 문화 교류에 대한 공감대는 있다"며 "수용 가능한 공감대를 넓혀가며 단계적으로 접근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 문제 역시 주요 의제 중 하나다.
한국 정부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역내 안정과 평화 유지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강조할 방침이다.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한중 외교장관 통화 결과를 전하며 "양 장관이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역내 안정과 번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앞두고 꺼낸 중국의 메시지
다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안보 현안을 둘러싼 한중 간 인식 차이도 드러나고 있다.
중국은 회담에 앞서 한국 측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한국 조현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일본을 비판하며 "한국이 역사와 인민에 책임지는 태도를 갖고 올바른 입장을 취하며 국제주의를 수호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는 대만 문제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는 것이 포함된다"고 언급했다.
중국 외교부는 또 조 장관이 해당 통화에서 "한국은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반면 같은 통화 이후 한국 외교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대만 문제에 대한 언급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이와 관련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일 오전 브리핑에서 양안(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입장에 따라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서해 한중 잠정조치 수역 내 중국의 구조물 설치 문제와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추진 등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함께 거론될 가능성이 있는 안보 현안으로 꼽힌다.
특히 핵잠 건조 추진과 관련해 중국은 핵비확산과 지역 안정에 대한 원칙적 우려를 표명해 왔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와 핵잠수함 전력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라는 점을 설명하며 중국과의 소통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번 국빈 방중에서는 경제 협력과 한반도 문제와 함께, 대만을 포함한 주요 안보 현안에 대해 양국이 어떤 입장을 확인할지도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이번 방중 국면에서 중국이 외교적 메시지를 사전에 밝힌 점을 주목하고 있다.
박한진 한국외국어대 중국외교통상학부 초빙교수는 BBC코리아에 "중국이 한국에 압박을 가하는 측면도 있지만, 정상외교의 출발선에서 자국의 핵심 이익을 사전에 명시하려는 관행적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국빈 방문은 지난해 경주 APEC 정상회담의 연장선에서 한중 관계의 격을 높이는 계기인 만큼, 중국으로서는 한국이 기존의 '하나의 중국' 원칙 존중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한중 관계 관리와 한미일 공조 사이의 균형 설정과 관련해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 분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안보와 가치 영역에서는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되, 경제와 실물 협력 영역에서는 한중 관계의 안정성을 관리하는 이중 구조가 현실적이며, 대만 문제 등 안보 현안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넘는 언급을 자제하고 경제·산업 협력에서는 정치·안보 사안과의 분리를 전제로 실용성을 강조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지원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장도 중국의 최근 메시지를 정상회담을 앞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했다.
그는 "중국 외교 수장이 일본의 역사 문제를 비판하면서 곧바로 대만 문제를 거론한 것은 과거사 인식과 영토 주권 문제를 하나의 틀로 묶으려는 시도"라며 "한국이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에서 중국과 일정한 공감대를 가질 수밖에 없는 지점을 활용해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원장의 경우,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한국에 가장 분명하게 기대하는 사안으로 안보보다 경제와 공급망 분야를 지목했다.
그는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동아시아 외교 무대에서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경제와 공급망 협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주는 역할"이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이 중국을 직접 겨냥하는 군사 구도로 발전하지 않도록 한국이 완충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방중 외교의 핵심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 분화"라며 "안보와 가치 영역에서는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되, 경제와 실물 협력 영역에서는 한중 관계의 안정성을 관리하는 이중 구조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방중 일정과 형식 자체가 중국의 한국 중시를 보여준다고 평가도 있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이번 국빈 방문은 한중 양국 모두에게 올해 첫 정상외교이자, 중국이 연초에 가장 먼저 만나는 외국 정상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시진핑 주석뿐 아니라 총리와 국회의장 등 중국 권력 서열 1·2·3위 인사가 모두 만나는 일정은 이례적"이라며 "중국이 한국을 동북아 외교와 경제 질서에서 중요한 파트너로 대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