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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한국 유화책 일축…'한미훈련 중단·통일부 폐지' 시사 속 진전 가능성은?

3일 전

한국 정부의 대북 유화 조치를 일축한 북한이 미국을 향해서는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29일 "우리들의 핵보유국 지위와 능력이 인정돼야 한다"며 북핵 인정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앞서 김 부부장은 전날 '조한(남북)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한국을 향한 '동족 개념의 부정', '통일부 해체 주장', '한미연합훈련 지속 시 긴장 해소 불가' 등의 입장을 밝혔다.

김여정 부부장은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했고, "이재명 정부가 국제적 각광을 받아보기 위해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 하는 척해도, 조한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역사의 시계 초침은 되돌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더 이상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는 뜻을 명확히 한 셈이다. 이 담화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처음 밝힌 공식 대남 메시지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 임명 직후 발표됐다.

대북 확성기를 확인하고 있는 군인들
Reuters
한국 군 당국은 지난 6월 11일 오후부터 대북 심리전 수단인 최전방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지했다

유화 제스처에도 냉담한 북한

이재명 정부는 집권 2달 동안 '대화'와 '협력'을 기조로 북한에 유화적 제스처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지난달 12일 한국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이달 9일에는 동·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북한 주민 6명을 해상을 통해 송환했다.

특히 국가정보원은 50년간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진 대북 라디오 방송을 최근 일제히 중단했다.

대통령실은 이러한 조치에 대해 "남북관계가 훨씬 더 나아진 현상과 발맞춘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여정 부부장은 한국의 이 같은 조치를 "스스로 초래한 문제를 가역적으로 되돌린 것에 불과하다"며, "평가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감상적인 말 몇 마디로 자초한 모든 결과를 되돌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그것은 엄청난 오산"이라고 주장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한 북한

4월 18일 한미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 모습
뉴스1
4월 18일 한미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 모습

김여정의 발언 중 주목할 대목은 통일부 해체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시사한 부분이다.

그는 "이재명 정부의 50여 일 동안의 행보를 보면 겉으로는 남북 긴장 완화와 관계 개선을 말하지만,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대결 기조는 이전 정부들과 다를 바 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우리 남쪽 국경 너머에서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음달 예정된 한미연합 을지프리덤실드(UFS) 연습을 중단해 '더 큰 성의 표시'를 하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통일부에 대해서는 "국가 대 국가 관계가 영구 고착된 현실에서 통일부 정상화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흡수통일 망령에 사로잡힌 증거"라며 해체 대상으로 지목했다.

북한이 제기한 조건들로 미뤄볼 때,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남북관계 개선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BBC에 "북한이 지금과 같은 대북방송 중단 등의 유화 조치만으로는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추후 협상 여건이 근본적으로 바뀌거나 북한이 끈질기게 요구해온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의 구조적 변화가 있어야 협상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해석했다.

통일부 해체 압박의 배경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
EPA-EFE/Shutterstock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여정 부부장은 앞서 2021년 3월에도 한미연합훈련에 항의하며 북한 내 대남기구 해체를 경고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등 유사한 기능의 기구들을 단계적으로 정리해왔다.

조평통은 북한에서 한국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조직으로, 대남 통일전선 사업과 친북 여론 조성, 국론 분열 등을 담당해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말 한국과 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한 민족이나 통일 개념을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북한은 이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등을 폐지했다.

통일부는 28일 김여정 담화에 대해 "북한 당국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부는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를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같은 날, 한미연합훈련의 '조정'을 대통령실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훈련 유예나 축소를 시사한 것이다.

다만 주한미군은 훈련 조정 논의에 대해 "전달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역시 29일 "현재까지 연합훈련에 변경된 사항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은 "북한의 통일부 폐지, 한미연합훈련 중단 주장은 결국 자신들의 노선에 동조하라는 얘기인데,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유지하는 한, 한국이 연합훈련을 연기하거나 축소하는 등의 어떤 정책을 내놔도,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정부의 선제적 유화 조치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새 정부 출범 50여 일 동안 나온 각종 유화책들이 너무 빠르고 전략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북 확성기와 대북방송 중단은 남북 협상에서 매우 중요한 카드였는데, 정부가 이를 조건 없이 모두 내주면서 결국 남북관계 개선에 아무런 실익도 개져오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원곤 원장은 "정부가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대북방송 중단 등 제스처 하나하나가 협상 카드인데 이를 일방적으로 다 써버린 건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북미 협상 전환, 한국은 배제 수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019년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의 호텔에서 만나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Getty Images
북한은 29일 담화를 통해 미국과의 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은 29일 또 다른 담화를 통해 미국과의 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우리 국가수반과 현 미국 대통령 간의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비핵화 협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는 불가역적인 핵보유국이며, 지정학적 조건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앞으로의 모든 판단의 전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한국을 향해 내놓은 담화와는 확연히 온도차가 느껴지는 내용이다. 과거 '통미봉남'(미국과 소통하되 한국과의 대화는 봉쇄) 정책을 펴온 것처럼, 미국과의 대화는 열어두되, 한국은 사실상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백악관은 이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 조만간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양측의 물밑 접촉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박 원장은 "북한은 '한국 패싱'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유화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보내는 것은 오히려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미국과의 공조 강화"라며 "북한은 한국을 상대하지 않고, 미국은 상대하겠다고 한 만큼, 대북 정책도 미국과 발맞춰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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