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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가장 아끼는 기자: 파벨 자루빈은 어떻게 크렘린 선전의 얼굴이 되었나

3시간 전
빨간색 배경 위에 파벨 자루빈의 콜라주가 흰색 배경 위에 손을 얹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래픽 오른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미소를 지으며 자루빈을 바라보고 있다. 흰색 배경은 푸틴 뒤에 펼쳐져 있다
Getty Images / BBC

한때 지역 언론의 이상주의 기자였던 파벨 자루빈은 이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가까이 그리고 정기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기자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그의 보도를 통해 푸틴 대통령의 삶과 업무를 접한다. 이 기사는 지방 출신의 한 젊은 기자가 어떻게 러시아 선전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매주 일요일 저녁, 수백만 명의 러시아인들은 TV 프로그램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을 시청한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푸틴의 일상에 대해 이례적으로 친밀한 시각을 제공하며 러시아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방송 중 하나다. 진행자는 파벨 자루빈으로, 그는 매주 대통령의 주요 정상회담에서부터 사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푸틴의 활동을 찬사 어린 어조로 세세하게 전달한다.

지난 7년 동안 44세의 자루빈은 푸틴을 따라다니며 모든 일정을 취재해왔다. 알래스카에서 열린 트럼프-푸틴 정상회담을 보도할 때 자루빈은 러시아 대통령 전용기, 비행기에 부착된 계단, 푸틴이 걸은 붉은 카펫, 심지어 회담이 열린 미군 기지의 세면대까지 묘사했다. 자루빈은 이 행사를 "정치 블록버스터"라고 표현했다.

다른 방송분에서는 푸틴의 리무진 앞에서 길을 건너기 두려워하던 고양이, 리무진을 청소하는 솔, 대통령의 문서 정리 시스템까지 보도했다.

러시아의 비평가들은 오래전부터 자루빈의 이러한 보도 태도를 조롱하며 그의 보도 방식을 북한 언론에 빗대왔다. 그러나 권력이 지도자와의 '가까움'에 의해 좌우되는 체제에서 기자는 실제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을 알린 쇼

2023년 러시아 대통령 연례 기자회견에서 악수하는 파벨 자루빈과 블라디미르 푸틴
Getty Images
2023년 러시아 대통령 연례 기자회견에서 파벨 자루빈과 블라디미르 푸틴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은 지난 2018년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했을 때 기획됐다. 당시 푸틴은 받아들일 수 없는 연금 개혁으로 인해 전국적인 분노에 직면했고 대규모 시위가 나라 전역으로 번졌다. 크렘린은 그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들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다.

자루빈이 진행을 맡으면서 이 프로그램은 곧 대통령의 일기를 방불케 하는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푸틴이 어떻게 "재빠르게" 책상에서 떨어지는 연필을 잡았는지, 펜을 이용해 시계 줄을 고쳤는지 등과 같은 사소한 디테일을 꼼꼼히 전하며 더 넓은 정치적 질문은 철저히 회피했다. 러시아 정치 분석가들과 독립 방송 평론가들은 새로운 '개인숭배'가 형성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푸틴의 지지율도 결국 회복세를 보였다. 크렘린의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BBC에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은 러시아 국영 방송사 VGTRK의 발상이며 자루빈 자신이 프로그램의 형식을 다듬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루빈을 "매우 재능 있는 기자"라며 "대통령의 활동을 만족스럽게 보도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BBC에 따르면 세 개의 별도 소식통들은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는 VGTRK의 자발적 기획이 아니라 크렘린 관리들이 개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 VGTRK 직원 드미트리 스코로부토프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는 방영 2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여론조사에서 대중의 푸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푸틴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스코로부토프는 자루빈을 "명령만 따르는 아첨꾼"이라고 묘사했다.

"무언가를 말하면 그는 그것을 합니다. 질문도, 반성도 없죠. 모든 것이 '최고 시청자'를 위한 것이니까요." 스코로부토프는 덧붙였다. 국영 방송 직원들이 러시아 대통령을 일컫는 표현이 바로 이 '최고 시청자'다.

수년간 자루빈의 프로그램에서 '최고 시청자'를 불쾌하게 만들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과거 푸틴 취재단에서 자루빈과 함께 일했던 한 기자는 BBC에 "자루빈의 아첨은 크렘린 친화적인 언론인들조차 역겹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익명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자루빈이 국가 선전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까지 철저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젊은 이상주의자

젊은 파벨 자루빈이 러시아 TV 채널에서 화면 오른쪽 하단에 "4" 로고가 있는 뉴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자루빈은 회색 넥타이와 안경을 쓴 회색 정장을 입고 있다. TV 화면은 화면 오른쪽 벽 패널에 세로줄로 표시되어 있다. 배경은 도시 스카이라인이다
Instagram @zarubinreporter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텔레비전 경력을 쌓은 파벨 자루빈

자루빈은 카자흐스탄과 인접한 러시아 바슈코르토스탄 공화국의 금속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우랄 연방대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러시아 제4의 도시이자 활발하고 경쟁적인 방송 산업이 있던 예카테린부르크의 '채널 4'에 입사했다. 당시 뉴스룸은 아직 상대적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그 시절 동료들은 자루빈을 진지하고 추진력 있는 기자로 기억한다. 그는 심지어 다른 기자들의 작업이 편향됐다고 생각되면 파티 자리에서도 이를 지적했다고 한다. 또 다른 동료는 자루빈이 NTV를 지지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NTV는 푸틴 대통령의 첫 임기 동안 새 경영진이 들어온 독립 방송사로, 언론인들은 친크렘린 세력의 장악에 맞서 저항했다. 예카테린부르크를 포함한 지방의 동료 기자들도 이에 연대해 행동에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예카테린부르크 기자 집단은 NTV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한 예카테린부르크 기자는 당시 자루빈이 그 변화에 격분해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그 기자는 자루빈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당신들은 스스로를 파괴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것, 우리에게 신성했던 모든 것을 무너뜨렸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전했다.

그가 자루빈에게 "언젠가 당신도 경력을 위해 비슷한 타협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자루빈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니요, 절대요.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스템 내부로

젊은 파벨 자루빈을 포함한 세 명의 영화 제작진이 비디오 카메라 옆에 서 있다. 자루빈은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비디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다. 빨간색 재킷을 입은 한 남성이 카메라 상단을 만지고 있다. 그들은 도시 스카이라인을 뒤로 하고 야외에 서 있다
Instagram @zarubinreporter
신입 시절 동료들과 함께 있는 자루빈

자루빈은 2003년 VGTRK 인턴으로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동료들은 그를 성실하고 비대립적이며 편집자들에게 순응적인 사람으로 묘사했는데, 이런 성향이 훗날 그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거리를 두었고 정장을 입고 출근했으며 일 외에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2005년까지 그는 대통령 기자단 내부에 들어가 있었다. 한 전직 기자단 기자는 자루빈이 푸틴에게 '아첨하는' 질문을 던졌던 일을 기억했다. 그 일로 놀림을 받자 자루빈은 "나는 부끄럽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2012년 무렵 연방 TV의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푸틴이 4년간의 총리직을 마치고 다시 크렘린으로 돌아왔고 그 시기는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던 때였다. 언론에 대한 압력은 커졌고 그 이후로는 점점 더 강해졌다.

"나는 직접 어떤 주제를 방송에서 다룰 수 있고 어떤 것은 다룰 수 없는지에 대한 목록을 받았다"고 VGTRK 전직 직원 스코로부토프는 말했다.

BBC는 그 목록의 사본을 확인했는데 거기에는 시위와 생필품 가격 상승,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를 포함해 수많은 주제를 언급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루빈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다양한 해외 임무에 대한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북한 노동신문 1면에 실리기도 했다
Instagram/@zarubinreporter
자루빈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다양한 해외 임무에 대한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북한 노동신문 1면에 실리기도 했다

주목받기

BBC는 여러 시기에 자루빈과 함께 일한 대통령 전용 취재단 소속 기자 10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 대부분은 푸틴을 취재하는 다른 기자들 사이에서 자루빈이 전혀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기자는 그 시절 자루빈이 "지금처럼 푸틴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며" 예를 들어 러시아 대통령의 악명 높은 지각 습관을 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들은 또다시 몇 시간이고 푸틴을 기다리면서 그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자루빈은 주목을 받게 됐다.

2015년 그는 민스크 평화회담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에게 고함을 지르며 돈바스에서 민간인을 폭격했다고 비난하다가 회담장에서 퇴장당했다. 이는 크렘린이 주장해 온 바였다.

그 이듬해 자루빈의 취재팀은 야권 포럼에 기자증 없이 들어가려다 리투아니아에서 추방당했다. 이 사건은 체스 챔피언이자 크렘린 비판가인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충돌로까지 번졌다.

2020년 2월 12일 자루빈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두 명의 남성이 앞에 서서 자루빈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미지 오른쪽에서 세 번째 남성이 그룹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자루빈은 로고가 인쇄된 파란색 윈드 머플러가 달린 긴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남성은 어두운 정장을 입고 있다
Instagram @zarubinreporter
포로셴코의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는 자루빈

2018년까지 자루빈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4번째 임기를 확정지은 대통령 선거에서 VGTRK가 가장 신뢰하는 대표 기자로 자리잡았다.

"그는 투표 전, 선거 당일, 그리고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항상 여러 사람이 나눠서 맡았죠"라고 한 전직 VGTRK 동료는 말했다.

이 무렵 동료들은 자루빈에게서 변화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 전 동료는 BBC에 "그는 늘 어색한 청년이었는데 어느 순간 힘과 자신감을 느낀 것 같았다. 외모에도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BBC의 또 다른 취재원에 따르면 이 시점에서 자루빈은 독립 언론의 이상에 더 이상 믿음을 두지 않는 듯했다.

푸틴의 곁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루빈이 푸틴 대통령 곁에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20년 감염 우려로 대통령 접근이 크게 제한됐고 크렘린은 '클린 존' 안에서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자가 필요했다. 대통령 취재단 소속 두 기자에 따르면 자루빈은 접근권을 얻기 위해 몇 달간 격리 생활을 했다.

이제 그는 푸틴에게 영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기자가 됐다.

그 이후 자루빈은 그간 언론에 닫혀 있던 행사에도 초대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 당시 푸틴 집무실 밖에 서 있었고 대통령 전용차인 아우루스에 탑승했으며 심지어 크렘린궁 안에서 촬영하며 푸틴 대통령이 케비어와 꿀에 절인 크랜베리를 대접하는 장면까지 담았다.

자루빈은 국제 일정에도 초대받는다. 지난 여름에는 평소 비공개로 진행되는 행사에서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과의 회담 중 탁자 옆에 쪼그려 앉아 속삭이듯 보도를 전했다.

자루빈이 대표단 회의에서 보도하고 있다. 그의 머리가 전체적으로 보인다. 배경에는 러시아 고위 인사들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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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테이블 옆에서 보도하는 자루빈

단독 인용문은 종종 자루빈의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먼저 올라오며 경쟁 기자들은 뒤늦게 이를 따라가야 한다.

"본질적으로 그는 이제 언론홍보실 직원과 다름없다"고 한 동료는 말했다.

BBC가 확인한 제작사 문서에 따르면 자루빈의 월급은 약 100만 루블, 즉 1만 2,000달러 수준이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푸틴에게 접근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자루빈은 이제 고위 공무원들조차 갖지 못한 기회를 더 많이 갖는다.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자루빈의 보도는 예상대로 크렘린의 입장과 일치한다. 그는 "유럽의 공격성"을 언급하며 키이우를 "러시아인의 우크라이나 지역"이라고 지칭한다.

한 러시아 관리(자루빈을 잘 아는 인사)는 "그는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으며 어떠한 원칙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직업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단지 흐름을 따를 뿐이다. 한때는 언론 자유를 믿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다."

BBC의 반복된 인터뷰 요청에도 파벨 자루빈은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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