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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자유를 상징하던 모자 '프리기아'는 어떻게 파리 올림픽 마스코트가 됐나

2024.07.25
2024 파리 올림픽, 패럴림픽의 마스코트 ‘프리주’
Getty Images
2024 파리 올림픽 주최 측은 중요한 역사적 상징물을 마스코트로 채택했다

오는 26일(현지시간) 개막 예정인 2024 파리 올림픽은 이전 올림픽과는 다름을 추구한다.

우선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같은 수의 남녀 선수가 참가할 예정이다.

게다가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기존 올림픽과 달리 경기장에서가 아닌 에펠탑의 그늘 아래 센 강변에서 개막식을 치를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제33회 하계 올림픽이 될 이번 올림픽을 상징할 마스코트는 무엇일까.

프랑스 조직위는 일부러 전통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개최국을 대표하는 동물, 인물 등을 마스코트로 채택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선 역사적 의미가 있는 특별한 모자가 마스코트로 등장한 것이다.

2024 파리 올림픽, 패럴림픽의 마스코트 ‘프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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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측은 장난스럽지만 역사적 의미를 담은 이 마스코트가 스포츠 혁명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과거 프랑스 혁명(1789년 5월~1799년 11월) 당시 자유를 상징했던 ‘프리기아’ 모자에서 영감을 얻은 ‘프리주’가 그 주인공이다.

챙이 없는 원뿔형 모양으로, 맨 윗부분이 앞으로 구부러진 게 특징인 프리주는 빨간색, 파란색, 흰색으로 된 프랑스 국기를 손에 들고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군들이 쓰던 빨간 모자인 ‘프리기아’를 쓰고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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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군들이 쓰던 빨간 모자인 ‘프리기아’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시위 현장이나 국가 기념일 행사에서 사용된다

올림픽 조직위는 스포츠가 삶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이번 올림픽이 “스포츠 혁명”의 시발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같은 마스코트를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패럴림픽의 마스코트로는 블레이드 모양의 의족을 착용한 프리주를 선보이며 포용성을 높였다.

올림픽, 패럴림픽을 상징하는 프리주는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모토를 담고 있다.

과거 3차례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선수 출신인 토니 에스탕게 2024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우리는 동물 대신 이상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프리기아 모자는 프랑스 공화국의 매우 강력한 상징물이기에 이를 택했습니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이는 자유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죠.”

그러나 이 모자의 기원은 그보다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시대의 상징

고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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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세기~기원전 7세 아나톨리아 중서부 지역을 가리키는 ‘프리기아’

프리기아 모자의 이름은 ‘프리기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히타이트가 멸망(기원전 12세기)하고 리디아가 부상(기원전 7세기)하던 사이 아나톨리아 일대를 지배하며, 그리스인들이 ‘프리게스’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이름에서 따온 ‘고대 시대 아나톨리아 중서부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로마 제국 시기 여러 지역에서 모양도 비슷하고 머리에 딱 맞게 쓰는 ‘필리우스’라는 모자가 등장한다. 주로 ‘소농’들과 주인으로부터 해방된 노예들이 썼다는 게 스페인 부르고스 대학의 역사학자 세르지오 산체스 콜란테스의 설명이다.

치안판사가 막대기로 만지며 자유인임을 선언하는 특별한 의식을 치르고 나면 노예였던 이는 머리를 깎고 새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이 모자를 썼다고 한다.

역사책에 나오는 또 다른 유명한 예시로는, 로마를 다스리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들은 끝에 해방된 노예의 모자가 달린 창과 피가 묻은 단검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고 한다.

프리기아 모자를 쓴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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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기아 모자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 됐지만, 로마 제국 시기엔 해방된 노예들이 비슷한 모자를 썼다

미국

역사학자 J. 데이비드 하든의 저서 ‘자유의 모자와 자유의 나무’에 따르면 이 모자가 부활한 건 네덜란드가 스페인에 대항해 독립 투쟁을 벌이던 17세기라고 한다.

이후 네덜란드인들은 1765년에서 1783년 사이에 미국 혁명가들을 위해 이 모자를 개조해 줬고, 프리기아 모자는 많은 노예들이 해방된 미국 남북전쟁(1861년~1865년) 시기까지 논의되고 착용돼 왔다.

오늘날 프리기아 모자는 미군의 공식 깃발 및 미 상원의 문장에도 등장한다.

붉은색 프리기아 모자가 그려진 미국 상원의 문장
Getty Images/Ullstein Bild
미국 상원의 문장

프랑스 혁명

그렇다면 어쩌다 이 모자는 프랑스에서 쓰이게 됐을까?

프랑스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중세 시대 선원들과 소작농들은 매우 비슷한 모자를 썼다고 한다.

그러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이 이 모자를 엠블럼으로 사용하면서 단순히 자유를 상징하는 깃발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산체스 콜란테스는 “모자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혁명 기간 어느 순간부터 이 모자는 공화주의를 상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루이 16세의 통치가 끝났음을 알리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으로 더욱 굳어지게 된다.

현재 이 모자는 예술 작품은 물론 동전이나 우표에도 자유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프랑스 전국의 시청과 기관에 걸린 휘장에도 이 모자가 그려져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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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인 모자가 등장하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다시 대서양을 건너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잔인성으로 인해 1776년 7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신생 공화국으로 거듭난 미합중국에선 이 모자의 인기가 떨어진다.

콜로라도 대학교의 역사학자 앤드루 데치는 ‘스미소니언 박물관’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모자는 “18세기 미국 정치 지도자 대부분이 두려워했던 급진주의와 정치 파벌의 상징이 됐다”고 설명했다.

델라웨어를 건너는 워싱턴을 묘사한 그림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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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혁명가들도 프리기아를 썼으나, 프랑스 혁명에서의 유혈 사태 이후엔 쓰지 않았다

이후 19세기 초, 이 빨간 모자는 다시 대서양을 건너 독립을 위해 싸우는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서 발견된다.

산체스 콜란테스는 “이 모자는 모든 아메리카 공화국으로 퍼져나간 초국가적 상징으로,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 쿠바, 아르헨티나 등 여러 국가의 국장에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볼리비아,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아이티, 니카라과의 국기나 국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콜롬비아의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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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의 영웅들도 썼던 프리기아 모자는 오늘날 콜롬비아 등 여러 국가의 국장, 국기 등에서도 발견된다

올림픽 마스코트

2024 파리 올림픽, 패럴림픽의 마스코트 ‘프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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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프랑스 전역에선 마스코트 ‘프리주’를 다양한 크기와 소재로 만나볼 수 있다

최초의 올림픽 마스코트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사용된 붉은빛 재규어였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따르면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27개 중엔 동물이 많다.

그러나 근대 올림픽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1996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올림픽 조직위는 다른 선택을 했다.

당시 정보기술의 산물인 ‘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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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올림픽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1996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채택한 마스코트 ‘이지’

이들이 선택한 마스코트 ‘이지’는 그 당시 떠오르던 신기술을 상징하며,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제작된 캐릭터로, 당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역대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마스코트 중 하나를 꼽으라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상징인 곰 ‘미샤’일 것이다.

1980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 마스코트 ‘미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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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개의 카드 섹션으로 나타낸 1980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 마스코트 ‘미샤’

당시 폐막식에서 수백 명이 모여 카드 섹션으로 떠나는 선수들을 향해 미샤가 우는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번 프랑스 올림픽의 ‘프리주’ 또한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마스코트가 될까?

그럴 수도 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의 국가 표어를 떠올리게 하는 마스코트를 선택함으로써 이 작은 빨간 모자는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중 가장 사랑받는 존재로 거듭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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