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예수 생카'로 가는 청년들
"와, 너무 신기해, 완전 아이돌 생일카페랑 똑같네"
12월 중순, 서울 망원동의 한 카페 앞. 출입문 앞에 청년들이 모여 섰다. 앞치마를 두른 바리스타 차림의 '예수 등신대' 앞에서 번갈아 포즈를 잡고 휴대전화 셔터를 눌렀다.
이곳은 한국대학생선교회(CCC)가 운영하는 '예수님 생일카페', 일명 '예수생카'다.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시작한 프로젝트로 올해 서울과 부산, 공주 등 3개 도시에서 '2025 예수님 생일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돌 팬모임 현장을 옮겨 놓은 듯한 장면이 펼쳐졌다.
벽면을 채운 포스터 속 예수 그리스도는 양볼을 붉힌 채 수줍게 손을 내밀거나, 유명 패션 잡지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앞에서 방문객들은 인증샷을 남기느라 분주했다.
카페 한쪽 테이블에는 '크리스마스 고사'라 이름 붙은 퀴즈지가 놓여 있다.
아이돌 팬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돌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다. 다른 쪽에는 '예수님 포토카드', '예수 응원봉' 등 전형적인 아이돌 생일카페 굿즈가 진열돼 있었다.
'예수생카'는 K팝 팬덤 문화인 '아이돌 생일카페' 형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아이돌 생일카페는 팬들이 카페를 대관해 포토존과 굿즈, 이벤트를 마련하고 특정 인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문화로, 10·20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주최 측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청년들에게 보다 친숙한 방식으로 전하고자 '예수생카'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반응은 뜨거웠다. 취재진이 찾은 날에도 하루 400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갔고, 주말에는 대기 없이는 입장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케이팝 스타일 접목...비기독교인도 찾아
'예수님 생일카페' 프로젝트의 시작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시내 버스 정류장 등에 예수를 아이돌 스타에 비유한 생일 축하 광고를 게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캠퍼스 커피차 이벤트를 거쳐, 지금의 '카페 공간' 형태로 발전했다.
한국대학생선교회(KCCC) 디지털전략팀 서의원 간사는 "사람들과 더 많은 접점을 만들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젊은 세대에게 가장 익숙한 문화가 K팝 팬 문화라는 점에 주목해 생일카페 형식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예수님도 어차피 많은 팬덤을 소유하고 계시고 많은 분들이 아시는 스타이기도 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차용을 해서 케이팝과 조합을 시켜봤는데 사람들이 그런 부분들을 재미있어 하신 것 같아요"
카페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건국대 20학번 유제원 씨는 “작년 행사에 참여했을 때 분위기가 밝고 방문객 반응이 좋아 올해도 다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비기독교인도 생일카페에서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방문객은 기독교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교이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도 전체 방문객의 약 20% 정도를 차지한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온라인 반응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관련 콘텐츠는 누적 20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오픈 이후 현장 방문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
카페를 찾은 이들은 대부분 10~20대 젊은 층이었다. 아이돌 팬덤 문화에 익숙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데 능숙한 세대다.
경기 지역의 한 기독교 아트스쿨에 다닌다는 석아윤(14) 양은 "예수님과 함께 찍는 인생네컷은 다른 곳에선 해볼 수 없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방문객 명서현(16) 양은 "크리스마스 고사를 풀면서 예수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게 인상 깊었다"며 "틀린 문제도 많았지만, 같이 온 언니와 정답을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족 단위 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세 자녀를 데리고 방문한 김정화 씨는 "종교 활동이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렇게 일상적인 문화 공간으로 나오는 게 반갑다"며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퀴즈를 풀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방문객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서 간사는 "K팝 문화를 좋아해 이 공간을 '한국 문화의 한 장면'처럼 경험하려는 외국인들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카페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멕시코 출신 유학생 오스카 카스타네다(20)는 "친구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틱톡에서 영상을 보고 꼭 와보고 싶었다"며 "한국 문화와 K팝 문화를 배우는 중이라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이런 방식은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는 데 굉장히 흥미로운 시도"라며 "멕시코에서는 교회를 지루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K팝 같은 문화로 풀어내니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관광객 프란체스카 체사(29)도 "소셜미디어를 보고 이곳을 알게 됐다"며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지만, 교회 문화는 대체로 더 엄숙하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에게 교회는 '오래된 느낌'이 강한데, 여기는 훨씬 접근하기 쉬웠고 너무 편안하고 재미있습니다"
물론 이런 시도가 모두에게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종교를 가볍게 소비한다거나, 성스러움을 해친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서 간사는 "기성 기독교인 중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다는 점도 이해한다"면서도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문화 속에서 친근하게 예수를 소개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힙해진' 종교의 모습
'예수생카'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기독교만의 실험은 아니다.
올 4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불교박람회에는 개장 두 시간 전부터 '오픈런' 행렬이 이어졌고, 나흘 동안 20만 명이 몰렸다. 관람객의 약 80%는 20·30대였다. 기존 종교 박람회의 틀을 깨고, 불교의 포용성과 개방성을 앞세운 기획이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어냈다는 평가다.
불교계는 템플스테이 소개팅 프로그램 '나는 절로' 등 문화적 실험도 이어가며 큰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매번 높은 경쟁률을 자랑한다.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리보다 '경험'을 앞세우는 흐름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종교학과 이성청 교수는 "최근 종교는 신념이나 교리를 먼저 요구하기보다, 사람들이 익숙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통해 접점을 넓히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오늘날 젊은 세대는 지나치게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에 부담을 느끼고, 특히 높은 수준의 헌신을 요구하는 공동체에는 쉽게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며 "가볍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형식이 종교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문화적 형식이 지나치게 앞설 경우, 종교 고유의 메시지와 사유의 깊이가 소비되는 콘텐츠로 머물 위험도 있다"며 "이런 시도가 일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질문과 삶의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추가취재·영상: 최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