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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집결한 정상들, 글로벌 반미 동맹의 신호탄일까

2일 전
푸틴 대통령을 배경으로 서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인형
EPA

국제 정치에서 한 달은 매우 긴 시간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을 다시 찾았지만, 상황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에 내몰리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후견이 필요한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라, 세계 최대 경제 및 군사 강국이자 중국의 주요 경쟁국이기도 한 미국의 대통령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는 당당한 세계 지도자로서 중국을 방문한다.

알래스카에서 트럼프를 만나고 돌아온 푸틴에게 이번 중국 방문은 승리라 할 만 하다.

당시 미국 땅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대한 환대를 받은 푸틴 대통령은 결국 트럼프를 설득해 우크라이나 폭격 중단 요구와 새로운 대러 제재 위협을 철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 중국에서도 푸틴 대통령을 환영하는 무대가 준비되고 있다. 톈진에서는 10여 개국 이상의 정상들이 모여 2일간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반서방 수사를 서슴지 않는 북한의 김정은과 미-중 사이에서 복잡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오는 3일 베이징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80주년을 기념하며 열릴 열병식에는 전 세계 여러 지도자들이 참여해 "중국 인민들의 항일 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를 축하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번 주 중국에서 열릴 일련의 행사는 글로벌 반미 동맹이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일까.

그리고 국제 무대에서 서방의 주도권에 맞서고자 하는, 지난 5년간은 잠잠했던 러시아-인도-중국(RIC) 세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무역 전쟁이 격화되는 이 시점에 부활하고 있다는 예고일까.

푸틴과 시 주석 사이를 뒤흔들지 못하는 트럼프

일부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이례적으로 긴 방중을 러시아와 중국 간 '무제한 우정'을 과시하고, 양국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미국의 시도가 결국 실패할 것임을 서방 세계에 보여주려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를 넘겨주고, 모든 대러 제재를 해제하더라도 러시아는 중국에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분석가들은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어떻게 중국을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했는지에 주목한다. 당시는 중국과 소련이 이미 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ASPI)'의 중-러 관계 전문가이자, 러시아, 타지키스탄, 몰도바에서 프랑스 외교관으로 근무한 피에르 앙드리외는 "중국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압박 강화는 오히려 러시아-중국 축을 공고히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나라 간 관계를 약화하려는 '역 키신저' 시도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익명의 중-러 관계 전문가는 연구기관 '유럽정책분석센터(CEPA)' 기고문에서 "만약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끝내고, 일부 대러 제재를 해제해 중-러 사이 갈등을 유발하는 게 미국의 전략이었다면, 미국은 중-러 파트너십의 깊이와 복잡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건배하는 시주석과 푸틴 대통령
Reuters
중국과 러시아의 동맹은 두 지도자의 개인적 친분에 크게 의존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 기업들이 떠난 러시아에게 중국은 주요 에너지 시장이자 자동차 및 기타 상품의 주요 공급국이 되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러 우정의 이념적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앙드리외는 "양국 모두 서방 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한다면서 "아울러 양국 모두 핵보유국이자 UN 상임이사국이다. 이들의 전략적 이익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적으로는 상호보완적이다. 러시아는 원자재가 풍부하고, 중국은 산업이나 기술 분야에서 강국"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앙드리외는 양국 지도자 간 우호적인 개인적 친분이야말로 핵심이라고 본다.

사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 사이에는 공통점이 꽤 있다. 둘 다 72세로 나이가 같고, 소련 공산주의 체제 아래 성장했으며, 장기 집권 중이다. 아울러 두 정상 모두 수직적인 권위주의적 권력 구조를 구축하고, 반대 의견은 용납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을 만나 "두 나라의 우호에 한계가 없고 협력에 제한이 없다"는 성명에 서명했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무려 40회 이상 만나는 등 다른 어떤 세계 지도자보다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방중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미국 소재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 외교정책 및 미-중 관계 전문가인 패트리샤 킴은 "푸틴이 '짧은 목줄' 안에 머물며 다시 서방으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도 중국에는 좋지만, 동시에 중국은 러시아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추구하는 이상적 결과는 서방에 맞설 만큼 강하지만, 중국의 영향권 안에 머물 만큼 약한 러시아"라는 설명이다.

앙드리외는 "러시아는 중국에 유용한 파트너"라며 "시 주석이 중국 내에서,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서방 중심 세계 질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모디 총리의 방중

2025년 7월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중 대화를 나누는 모디 총리와 리창 총리
Pablo Porciuncula/AFP via Getty Images
올해 7월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모디 총리의 모습. 모디 총리는 중국, 러시아 등과 섬세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RIC 3국 중 하나인 인도는 현재 미국, 중국 모두와 격렬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기에 잠재적으로 RIC 세력의 부활을 꿈꾸는 모든 희망을 뒤엎어버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 모디 총리는 SCO 회의 참석을 위해 7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시 주석을 만났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는 2020년 갈완 계곡 국경 충돌 이후 거의 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인도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으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구매하고 있다며 인도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과거 앙숙이었던 두 국가는 점점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시 주석은 모디 총리에게 중국과 인도는 경쟁이 아닌 파트너십 관계여야 한다고 말했으며, 양국 사이에는 현재 "평화와 안정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말했다.

인도와 중국은 세계 1, 2위의 인구대국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대국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재개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모디 총리 또한 5년 전 국경 분쟁으로 중단되었던 양국 간 항공편 운항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시 주석은 "양국은 전략적 눈높이 및 장기적 관점에서 양국 관계를 다루고 접근해야 한다"면서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게 양국 모두에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동맹의 미래에 의미하는 바는?

전문가들은 만약 RIC 세력이 몇몇 주요 경제국을 포섭하여 효과적으로 부활한다면,(러시아와 중국 모두 이미 이를 원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브릭스(BRICS, 2006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모인 연합체)'와 같은 다른 동맹들과 힘을 합하여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할 힘을 갖추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인도는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전쟁을 치르고 있긴 하나, 미-중 사이에서 매우 섬세하게 균형을 잡아야하는 입장이다. 게다가 중국과는 근본적인 신뢰 문제도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가 독립적인 외교 노선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평가한다. 중국과의 유혈 국경 충돌 사태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며, 오랜 적국인 파키스탄이 중국과 긴밀한 사이라는 점도 인도로선 우려된다.

더욱이 수십 년간 섬세하게 노력하여 가까워진 미국과의 관계를 아예 저버려야 할 수도 있는데, 인도가 반미 동맹에 전적으로 동조하기에는 너무 큰 대가일 것이다.

평양에서 함께 차를 탄 푸틴과 김정은
Reuters
김정은과 푸틴 사이에서 보이듯, 공개적인 우정 과시는 동맹을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번 주 펼쳐질 장면이 주는 시각적 효과는 여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푸틴과 김정은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등 26개국 정상과 함께 베이징에서 열리는 열병식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이번 행사에서는 중국군 45개 분대와 참전 용사 등 군인 수만 명이 대형을 이루어 천안문 광장을 행진할 예정이다.

ASPI의 중국 전문가 닐 토마스는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열병식에서는 사상 최초로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이 연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모임이 '전제국가들의 축'을 담당하는 국가들의 첫 정상회의가 될 것인가"라고 물었다.

다만 그는 이 모임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각 국가의 목표가 저마다 다르며, 서로를 신뢰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푸틴, 페제시키안, 김정은의 참석 소식은 세계 최대 권위주의 강국으로서 중국의 역할을 부각시킨다"고 결론 지었다.

따라서 이번 주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사들은 상하이협력기구(SCO), RIC, 브릭스(BRICS)와 같은 동맹이 워싱턴에 맞서 어떤 역할을 할지 드러내는 자리라기보다는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동맹의 중심에 선 중국의 역할을 굳히는 무대일지도 모른다.

추가 보도: BBC 글로벌 저널리즘, BBC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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