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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선택',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꿀까?

1일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하나의 장벽을 세웠고, 그 대가를 다른 나라들이 치를 것이라 믿고 있다.

이번에 그가 거의 모든 수입품에 최소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결정은, 이민자를 막기 위한 장벽에 이어, 미국의 일자리와 산업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경제의 장벽'이다.

역사적 맥락을 보면 이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을 한 세기 전으로 되돌리는 보호무역 조치다. 미국은 이 조치로 인해 G7이나 G20 국가들을 훌쩍 뛰어넘어, 세네갈, 몽골, 키르기스스탄과 같은 수준의 관세 수입 비중을 기록하게 됐다.

이번 주 벌어진 일은 단순히 미국이 글로벌 무역전쟁을 시작했다거나, 주식시장이 급락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번주 관세 조치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스스로 주도하고 지난 수십 년간 큰 이득을 봐 온 세계화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백악관은 로즈가든 잔디밭 위에서 발표한 관세 공식에 기반해, 기존의 경제학과 외교 원칙이라는 두 가지 기본 축을 동시에 저버렸다.

자유무역이라는 오래된 논쟁

트럼프는 이번 발표에서 1913년을 자주 언급했다. 1913년은 미국이 연방소득세를 도입하고, 동시에 관세를 대폭 인하했던 전환점이 된 해다.

이전까지 미국 정부의 재정은 대부분 관세에 의존했으며, 최초의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전략에 따라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를 고수해 왔다.

트럼프 정부가 여기서 얻은 핵심 교훈은 다음과 같다. 높은 관세는 미국을 만들었고,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으며, 따라서 연방소득세도 필요 없었다.

그간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떠받쳐온 이론은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1817)'이다.

이 이론엔 여러 복잡한 수식도 있지만, 기본 개념은 매우 단순하다. 각 나라는 고유의 자원과 인적 역량에 따라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다르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 세계 국가들이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자유롭게 무역하면 모두가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국가별 관세율을 정한 표를 들어보이고 있다
Reuters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생각하기에 미국을 처음으로 '위대하게' 만든 것은 바로 관세다

영국에서는 이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론이 여전히 경제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도 여전히 비교우위론을 믿고 있으며, 이 이론은 세계화의 지적 토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은 애초부터 이 이론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자유무역에 대한 기저의 거부감은 지금껏 사라진 적이 없다.

결국 트럼프는 이번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만든 창의적인 공식을 통해 각국의 관세율을 거대한 표로 정리해 발표했다.

왜 '상호 관세'라는 걸까?

트럼프 정부가 말하는 이른바 '상호 관세'라는 논리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이 이미 미국에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관세 수치는 이번에 미국이 발표한 수치와 거의 관련이 없다.

백악관은 다른 나라가 미국에 부과하고 있다는 관세에 대해 '절차의 복잡성'이나 '환율 조작' 등을 반영해 계산했다고 설명한다. 처음엔 복잡해 보였던 그 공식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그 나라가 미국과의 교역에서 얼마나 흑자를 보는가'를 측정한 것에 불과하다. 미국의 국가별 무역적자 규모를 수입액으로 나눈 것이다.

기자회견 1시간 전, 백악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논리를 아주 솔직하게 설명했다.

"이 관세는 국가별 맞춤형입니다. 경제자문위원회가 계산했죠. 그들이 사용하는 모델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곧 다른 나라들의 '모든 불공정 거래 관행과 모든 사기의 총합'이라는 전제에 기반합니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 백악관의 논리는, 한 나라가 미국에 물건을 더 많이 파는 것 자체가 '속임수'이며, 그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당연히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이 펭귄만 사는 남극 무인도에도 관세를 부과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미국이 이번 관세 정책을 어떤 방식으로 설계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이번 정책의 장기적 목표, 그리고 직접적인 타깃은 약 1700조원(1조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를 0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도 가장 큰 적자를 내고 있는 국가들과의 무역을 균형 맞추는 것이다.

이 목표에 따라 만들어진 공식은 무역 장벽이 실제로 존재하는 국가가 아니라, 미국에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들을 겨냥해 아주 단순하게 설계되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가난한 국가들, 신흥 개발도상국들, 그리고 세계 무역과 거의 관련 없는 작은 섬들조차 대상이 됐다.

물론 대미 무역 흑자를 내는 국가들 중엔 실제 무역 장벽을 갖고 있는 나라들도 있긴 하지만, 둘은 분명 다른 개념이다.

어떤 나라가 무역 흑자를 보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며, 무역적자나 흑자 수치가 꼭 '0'이어야 할 본질적인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각국은 서로 다른 자원, 인프라, 인력, 기술을 갖고 있고, 서로 잘하는 제품이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로 인해 무역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국제무역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은, 이러한 기본 원칙조차 믿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지금의 논리를 서비스 영역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미국은 금융 서비스, 소셜미디어 테크 등 영역에서만 해도 약 400조원(2,800억 달러) 규모의 흑자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의 관세 정책 계산에서는 서비스 영역은 완전히 제외된 상태다.

'차이나 쇼크'와 그 파급효과

여기엔 더 큰 맥락이 숨어 있다. 미국의 부통령인 JD밴스는 지난달 한 연설에서 '세계화는 실패했다'면서, 세계화의 원래 구상이 "부유한 나라들이 더 높은 부가가치 산업으로 나아가고, 가난한 나라들은 단순한 제품을 만드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시나리오는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중국이다. 미국은 그래서 지금 그 '세계화된 세계'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중이다.

미국에게 19세기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개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차이나 쇼크' 같은 개념을 만든 MIT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 등 인물이 더 중요해졌다.

전 세계가 9·11 테러의 여파로 혼란에 빠져 있던 2001년,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고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 세계 경제 질서를 재편해버렸다.

중국 농촌 인구가 연안의 수출 공장으로 이동하면서, 미국의 소비자들을 위한 값싼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미국은 생활 수준, 경제 성장률, 기업 이익, 주식 시장 등 모든 부분에서 호황을 누렸다.

이는 비교우위론의 전형적인 작동 사례로 여겨졌다. 중국은 이 과정에서 수조 달러의 무역흑자를 거뒀고, 그 돈의 상당 부분은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다시 미국에 재투자되었다. 이 덕분에 미국의 금리가 낮게 유지될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Getty Images
트럼프가 지난 반 세기 자유무역 시대를 '미국이 약탈당하고 유린당한 시기'라고 묘사한 것은 전체 그림을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모두가 승자였던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은 값싼 상품 덕분에 전체적으로는 더 잘살아졌지만, 그 대가로 동아시아로의 제조업 이전이라는 중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MIT 대학의 데이비드 오터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11년까지 이른바 '차이나쇼크'로 인해 미국 제조업 일자리 100만개가, 전체 영역의 일자리 240만 개가 사라졌다.

이러한 대전환의 충격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라 불리는 과거 동부 제조업 중심지와, 미국 남부 지역에 집중됐다.

일자리와 임금에 대한 무역 충격의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지속적이었다.

오터는 지난해 다시 이 분석을 업데이트했는데,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일부 관세 보호 조치들은 경제적으로 큰 순효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타격을 받은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를 약화시키고,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는 효과는 있었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 이번주 미국의 자동차, 석유, 가스 산업 노조 소속 노동자들은 트럼프의 관세 부과를 환영하며 자축했다.

이제 약속은 명확해졌다. 이런 일자리들이 러스트 벨트뿐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외국 기업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관세를 피하고 싶으면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라는 것. 바이든 행정부의 '당근(보조금)' 정책과, 트럼프 행정부의 '채찍' 정책이 이어지면서, 실제로 이같은 변화가 가시적으로 나타날 여지가 생겼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반세기의 자유무역 시대를 "미국을 유린하고 약탈한 시기"라고 묘사한 것은 전체적인 그림을 설명하지 못한다. 특정 지역, 산업, 인구 집단에겐 좋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사실 미국의 서비스 산업은 눈부시게 성장해,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를 통해 전 세계를 지배했다. 미국 소비재 브랜드들은 중국과 동아시아에 걸친 초효율적인 공급망을 이용해 전 세계에 '아메리칸 드림'을 파는 제품들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미국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잘 나갔던 셈이다. 문제는 그 번영이 산업 전반에 고르게 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이 부족했던 건, 그 부를 전국적으로 분배하고 적용할 수 있는 재분배 정책의 수준이었다. 이것은 미국의 정치적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첫 번째 '소셜미디어 무역전쟁'

이제 미국이 자국 내 제조업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갑작스럽게 보호무역주의로 방향을 틀면서, 다른 나라들 역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미국을 부유하게 만든 자본과 무역의 흐름을 계속 지지할 것인지 말이다.

세계의 소비자들 또한 선택권을 갖고 있다.

미국의 대형 우량기업들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 기업은 값싸게 제품을 생산하는 동아시아의 초효율적 공급망에 기반해, 전 세계 소비자에게 '동경할 만한 아메리칸 브랜드'를 판매하는 구조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정책으로 인해 이들의 주가는 큰 타격을 입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이들의 공급망 전략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 브랜드 이미지 자체가 훼손될 위험까지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트럼프발 무역 전쟁은 세계 최초의 '소셜미디어 무역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테슬라의 판매 급감과 캐나다의 미국산 제품 보이콧 같은 사례는 전염성 강한 흐름으로 번질 수 있다. 이런 소비자 행동은 보복 관세만큼이나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 소비자들을 위한 '생산 기지'가 되기를 택했던 나라들 역시, 무역에 대해 자신들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다. 미국이라는 변덕스러운 파트너를 배제하려는 새로운 동맹들이 형성될 것이고, 그 움직임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유럽연합이 미국 조치에 대해 공동 대응에 나설 경우 관세를 더 올리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는 이같은 전개에 트럼프가 얼마나 민감해하는지를 역으로 보여준다. 이런 조치야말로 미국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무역 전쟁의 '게임 이론'에서 신뢰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물론 미국은 군사력과 기술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임의로 만든 공식 하나로 세계 무역 질서를 바꾸려는 시도는, 그 공식이 남극에 펭귄만 사는 무인도까지 관세 대상에 넣는 식의 황당한 결과를 초래한 순간, 상대의 저항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군다나 나머지 세계는 지금 미국 대통령이 쥐고 있는 총이, 미국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크게 주식 시장이 흔들린 나라는 바로 미국이고, 가장 크게 물가가 오를 나라도 미국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금 미국이 불황에 빠질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아마도 트럼프의 진짜 목적은 달러 약세를 유도하고 미국의 차입 비용(이자율)을 낮추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본인들이 만든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서 스스로 발을 빼는 중이다. 물론 세계 무역은 미국 없이도 돌아갈 수는 있지만, 그 전환 과정은 매우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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