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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혹은 스파이?… 트럼프의 표적이 된 중국 청년들

2일 전
중국 산둥성 르자오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
Getty Images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은 약 28만 명에 달한다

미국 행정부가 중국 유학생의 비자를 "공격적으로" 취소하겠다고 발표한 지 몇 시간 후인 지난 29일 아침, 샤오 첸(22)은 중국 상하이 소재 미국 영사관을 찾았다.

올가을 미시간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던 첸이 비자 인터뷰를 보는 날이었다.

대화 분위기는 "유쾌"했으나, 이후 첸은 비자 신청이 거부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뚜렷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

첸은 자신이 "비바람 속 이리저리 흔들리는 부평초 같은 신세"라고 토로했다. 무력하고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중국식 표현이다.

이미 대학 측으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은 상태였기에 자신은 최근 폭탄처럼 떨어지는 충격적인 뉴스들을 간신히 피해 갔다는 안도감과 희망을 품고 있었다.

처음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의 유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법원이 이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더니 곧이어 유학생 비자 인터뷰 자체를 일시 중단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재 첸은 차선책을 고민 중이다.

"결국 비자를 받을 수 없다면 아마 갭이어를 가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릴 것입니다."

아울러 첸은 유효한 비자가 있다고 해도 그걸로 끝이 아닐 수 있다며 우려했다. 비자를 소지한 학생일지라 하더라도 "공항에서 저지당하거나 심지어 추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모든 중국 학생들에게 나쁜 소식입니다. 단지 어느 정도 나쁘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버드에서 열린 외국인 유학생 지지 시위
Getty Images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의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하고자 한다

이번 한 주는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암울한 시간이었다. 고국이 집중 표적이 되며 28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은 특히 더 힘들었을 것이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하버드가 "중국 공산당과 협력한다"고 주장했으며,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국 내 중국인 학생 중 "중국 공산당과 연관된 자나 핵심 분야를 공부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조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는 공산당 가입이 관료, 기업인뿐 아니라 예술가, 유명인들 사이에서도 흔하기에 이번 조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 행정부의 이 같은 발표에 중국 정부도 나서 "정치적 동기에 따른 차별적인 조치"라며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외교부를 통해 공식 항의를 제기했다.

과거 중국은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 비율 1위를 차지했으나,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중국인 유학생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중국은 현재 무역부터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실 트럼프 1기 행정부부터 이미 중국 유학생들에게는 불안한 징조가 있었다. 지난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군과 연관된 중국 학생 및 학자의 비자 취득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 29일 베이징외국어 대학교의 모습
Getty Images
과거 중국은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 비율 1위를 차지했으나,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중국인 유학생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후임인 조 바이든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해당 조치는 유지되었다.

미 당국이 중국 군과의 '관련성'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여러 학생이 비자 취소를 통보받거나, 심지어 자세한 설명도 없이 국경에서 돌려보내지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2023년 8월 보스턴에 도착했으나, 미국 세관 및 국경 보호국(CBP)에 의해 비자가 취소되었다고 토로했다.

당시 이 학생은 하버드 대학의 박사후 연구 프로그램에 합격한 상태로, 유방암 관련 재생의학을 연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석사 학위를 중국 소재 군 관련 연구 기관에서 취득한 점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은 공산당원도 아닐뿐더러 자신의 연구는 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CBP는 내 연구와 중국 방위 산업 간 관련성에 대해 물었다"면서 "이에 나는 유방암이 국방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냐. 만약 있다면 내게도 알려달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관료들이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기에 자신에게는 처음부터 기회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시진핑이 네 여행가방을 사준 거냐'는 질문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놀랍거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나, 점차 이 같은 사례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 분야를 공부하는 중국인 학생들 중 미국 대학 진학을 위한 비자나 입학 허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편 심리학 전공으로 신경과학 연구를 하는 차오는 지난해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자 이곳저곳 지원서를 제출했다.

최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그였기에 아이비리그 대학에도 충분히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원한 대학 10여 곳 중 합격 통보를 받은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생물의학 연구 예산 삭감도 악재였으나, 중국인 학자들에 대한 불신도 한몫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대학가에서는 중국인들이 특히 민감한 분야를 중심으로 간첩 활동을 벌인다는 의혹과 소문이 확산하며, 일부는 커리어 자체가 이탈되기도 했다.

차오는 지난 2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 교수는 내게 '요즘 우리는 중국인 학생들에게는 입학 제안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뷰 기회를 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나 자신이 마치 시간의 수레바퀴 아래 깔린 작은 모래알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난 1일 노동절 연휴 기간 열차에서 파이썬 관련 책을 보고 있는 학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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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생들의 미국 대학 진학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는 중국인 학생들의 삶도 예전보다 쉽지 않다.

과거에는 국제 무대로 나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며 칭찬받았다. 한때 탐나는 존재로 여겨졌던 미국 대학 학위에 대한 중국 내 반응은 예전 같지 않다.

첸 지안(가명)은 자신의 미국 대학 학위가 걸림돌로 절락했다는 현실을 빠르게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2020년 학위를 마치고 중국으로 귀국한 첸은 관영 은행의 인턴으로 일하며 상사에게 정규직으로 계속 남아 있을 기회가 있을지 물었다. 물론 상사는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았으나, 첸은 이내 그 속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곳 직원들은 현지 학위 소지자여야 합니다. 저 같은 (해외 학위) 소지자들은 답을 받지 못합니다."

그는 이후 실제로 해당 부서에는 해외 대학을 졸업한 직원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미국으로 돌아가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는 중국 기술 대기업 '바이두'에서 근무하고 있다. 미국의 명문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도 중국 대학 졸업생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별다른 장점을 느끼지 못한다.

아울러 해외 유학파에 대한 불신도 부담이 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외국 스파이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며, 시민들에게도 의심스러운 인물을 주의하라고 강조한다.

지난 4월에는 중국 내 유명 기업인 동 밍주 회장이 비공개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가전업체 '그리 전기'에서는 해외에서 교육받은 중국인을 "절대" 채용하지 않겠다"며 "그들 중 스파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동 회장은 "누가 스파이고, 아닌지 알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해당 발언이 유출되며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미 중앙정보국(CIA)은 "당신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며 정부에 불만을 품은 중국 관료들을 향해 스파이가 되어 기밀 정보를 제공하라고 독려하는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지난 26일 안후이성 화이난시 화이난 제1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수능을 앞두고 공부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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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귀국한 졸업생들은 BBC에 다양함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자 미국 유학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간 관계가 점점 악화하고, 외국인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상황에 많은 중국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어린 시절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학을 전공한 장 니(가명, 24)은 동 회장의 발언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최근 미 뉴욕시 소재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졸업한 장은 "그리 전기에서 일하고 싶진 않지만", 이러한 태도 변화가 놀랍다고 설명했다.

많은 중국 기업이 "국제적인 요소와 연관된 어떤 것도 꺼리는" 분위기는 장이 자라온 환경과 크게 다르다. 장이 어렸을 적엔 "올림픽, 엑스포 같은 대화 주제가 가득"했다.

장은 "외국인을 보면 엄마가 가서 영어로 말해보라며 등을 떠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중국 내에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외부 세계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의지가 점점약해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한 때 수많은 중국 청년들이 이끌렸던 미국은 더 이상 환영하는 곳이 아니다.

장은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친구가 던진 농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가서 스파이가 되지 마라." 당시에는 가벼운 농담이었으나, 미국과 중국이 지닌 두려움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추가 보도: 켈리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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