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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표현불능증: '내 감정에 이름 붙이기 힘든 이유'

2025.03.02
밝은 노란색 점퍼를 입은 다섯 명의 여성이 일렬로 서서 각기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흰색 종이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다
Getty
알렉시티미아는 그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로,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없음"을 뜻한다

대다수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떠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 직관적으로 그 감정의 이름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크리시아 월독 박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을 인지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가 전체 인구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을 겪는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알렉시티미아는 그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로,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없음"을 뜻한다.

이 현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를 겪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감정 간 차이를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월독 박사는 "나는 내 감정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나야 이걸 파악하거나, 혹은 아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크리시아 월독 박사가 뒤돌아 화려한 그래피티 벽을 바라보는 모습
Krysia Waldock
크리시아 월독 박사는 약 10년 전에 감정표현불능증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스트레스를 인식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월독 박사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할 때는 몸에서, 특히 턱에서 이게 느껴지고, 어디에 부딪히거나 물건을 떨어뜨리는 일이 많아진다"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지만 두 가지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퍼즐을 맞추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맞출 수 없습니다."

월독 박사는 자폐증 환자다. 연구에 따르면 자폐증 환자는 일반 인구 집단에 비해 감정표현불능증을 겪을 가능성이 최대 5배 더 높다.

그는 "나에게는 (감정표현불능증이) 자폐증과 신경 발달 장애의 일부"라고 말했다.

감정표현불능증은 배고프거나 피곤하거나 화장실에 가야 할 때와 같은 신체 내부 신호를 해석하고 이름표를 붙이는 역할을 하는 내부 수용 감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월독 박사는 때때로 배고픔 신호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사를 놓치지 않도록 정해진 시간에 식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독 박사는 현재 스완지 대학교의 연구 조교로 근무하고 있으며, 자폐인의 생애 전반에 걸친 생식 건강 경험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동료이자 프로젝트 연구 책임자인 레베카 엘리스 박사도 자폐증과 감정표현불능증을 앓고 있다.

엘리스 박사는 감정표현불능증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며, 불안과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감정표현불능증을 앓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통해 이러한 증상이 발현된다고 말했다.

엘리스 박사의 경우 불안과 흥분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둘 다 매우 비슷하고 불편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앉아 있는 내내 걱정만 하게 되죠. 그러니까 왜 굳이 타려고 하겠어요?"

그녀는 또한 불안과 기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에게는 완전히 혼란 그 자체"라며 웃었다.

"그래서 아무리 제가 기대하는 멋진 사교 행사라도…약간은 긍정적으로, 약간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엘리스 박사와 월독 박사는 모두 자신의 감정표현불능증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았다.

엘리스 박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정 파악은) 배워서 더 나아질 수 있다"며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월독 박사는 자신의 감정을 파악할 때 다양한 감정에 대한 정의가 나열된 '하우 위 필(How We Feel)'이라는 앱의 도움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 가까운 지인들이 비판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 변화를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감정표현불능증에 대한 확실한 진단 기준이 없음에도, 이런 용어를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스 박사는 "스스로에게 더 친절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용어가 있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증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월독 박사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감정표현불능증을 비롯해 자폐와 관련된 개념들을 배우면서,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자라면서 저는 항상 둥근 구멍에 맞지 않는 네모난 말뚝 같은 존재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굳이 그 틀에 저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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