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로 6명 독살', 방콕 호텔 투숙객 사망사건 미스테리
방콕의 그랜드 하얏트 에라완 5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경찰이 문을 열기 전까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누구도 비명을 지르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심지어 문 앞까지 간 사람도 없었다.
객실 안에서도 저항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손대지 않은 점심 식사가 테이블 위에 깔끔하게 놓여 있었다.
방 밖에서 502호가 수상하다고 판단할 유일한 단서는 일행이 호텔 체크아웃 시간을 넘겼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런데 방 안에선 청산가리가 든 찻잔과 함께 6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투숙객들이 독극물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곧이어 피해자들의 신원도 확인했다.
하지만 경찰이 이 끔찍한 발견을 공개한 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왜, 그리고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큰 의문으로 남아있다.
사망한 6명은 누구인가
6명의 피해자 중 4명은 베트남 국적자인 티응웬푸엉(46세)과 남편인 홍팜탄(49세), 티응웬푸엉란(47세), 딘트란푸(37세)이다.
나머지 두 명은 베트남 출신의 미국 시민권자인 셰린 총(56세)과 당훙반(55세)으로 밝혀졌다.
수사관들은 미국 국적인 총이 베트남 국적인 홍팜탄과 티응웬푸엉 부부로부터 1천만 바트(약 3억 8250만 원)를 빌려 일본 병원 건립 프로젝트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설업을 운영하던 이 부부는 돈을 돌려받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문제는 몇 주 안에 일본 법정에서 다뤄질 예정이었다.
겉보기에 이번 만남은 소송을 앞두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로 보였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티응웬푸엉란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총이 홍팜탄 부부의 투자 관련 중재자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그 자리에 합류했다.
그렇다면 다른 두 사람은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베트남에서 영화배우, 가수, 뷰티 퀸 등을 고객으로 둔 성공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딘트란푸는 그 모임에 총을 위해 참석했다.
그의 아버지는 BBC 베트남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낯선 사람이 아닌 단골 고객과 함께 태국을 여행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한편 그의 한 지인은 딘트란푸가 티응웬푸엉과 티응웬푸엉란을 모두 알고 있으며, 다낭의 한 친구가 운영하는 스파에 이 둘을 소개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미국 국적자 당훙반이 호텔 모임에 참석했는지 여부는 즉시 밝혀지지 않았었다.
경찰은 호텔 예약자 명단에 여섯 명 중 한 명의 여동생인 제 7의 인물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사람은 지난 주 태국에서 베트남으로 귀국했으며 경찰은 그가 이번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날밤 호텔 스위트 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들은 주말에 따로 호텔에 체크인해 7층에 4개, 5층에 1개 등 총 5개의 객실을 배정받았다.
총은 일요일 502호에 체크인했다. 그날 이 스위트룸으로 다른 다섯 명이 찾아왔지만, 밤에는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월요일 정오가 되기 전에 당훙반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딘트란푸는 각자의 방에서 각각 차 6잔과 볶음밥을주문했다. 이들은 현지 시간으로 14시에 502호로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14시가 되기 몇 분 전, 총은 502호에서 음식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스위트룸에 혼자 있었다.
경찰은 그가 파티를 위해 차를 제공하겠다는 웨이터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웨이터는 그러면서 그가 “말이 거의 없었고 눈에 띄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밝혔다.
나머지 그룹은 곧 도착하기 시작했다. 부부는 여행 가방을 들고 들어갔다.
14시 17분, 문이 닫히기 전에 6명 모두가 문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부에서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이들은 체크아웃이 예정된 월요일 체크아웃하지 않았다.
경찰은 화요일 16:30에 방에 들어갔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6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초기 조사 결과 또 다른 두 명도 이 모임에 참석하려 했으나 제때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든 시신에서 청산가리 중독의 징후가 발견되었다. 청산가리는 특정 용량에 따라 몇 분 안에 사망할 수 있는 강력한 독성 물질이다. 시신들의 입술과 손톱에선 산소 부족을 나타내는 짙은 보라색으로 변한 흔적이 발견됐고, 내부 장기는'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 역시 청산가리 중독의 또 다른 징후다.
수사관들은 “시안화물(청산가리)을 제외하고는” 이들의 사망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원인은 없다”고 말한다.
현재는 청산가리의 “강도”를 파악하고 다른 독소를 배제하기 위한 추가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청산가리라 불리는 시안화물은 신체 세포의 산소를 고갈시켜 심장 마비를 유발할 수 있다. 초기 증상으로는 현기증, 호흡곤란, 구토 등이 있다.
태국에서는 시안화물의 사용이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으며 무단으로 사용하다 적발되면 최대 2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누가 이들을 독살했나?
경찰은 사망자 중 한 명이 독극물 테러의 배후이며, 그 배경엔 빚 독촉이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지만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베트남 매체 VN Express에 따르면 수사관들은 총이 투자 실패로 인해 다른 5명으로부터 모두 소송을 당했다고 말했다.
방콕에서 열린 모임는 합의 협상을 위해 소집되었지만 시도는 실패했다.
수사관들이 주목하는 다른 단서는?
경찰은 방콕의 여행 가이드인 35세 판응옥부에게 진술을 요구했다.
이 가이드는 중개자인 티응웬푸엉란이 사망 전 관절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뱀 피가 든 전통 약을 사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했었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스위트룸에서 호텔 소유가 아닌 캔 음료 두 개를 발견했다.
이 캔들은 청산가리가 든 찻잔 옆, 식탁 근처에 놓여 있었다.
확실한 것은 관계자들이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팜민친 베트남 총리는 하노이 당국자들에게 태국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여 수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태국 당국은 이보다 더 나쁜 시기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태국은 경제의 주 축인 관광업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않자 얼마 전 무비자 입국을 93개국으로 확대했는데, 그 직후 이번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에도 방콕의 한 고급 쇼핑몰에서 14세 소년이 총기를 난사해 2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쁘렛 타비신 총리는 화요일 밤 그랜드 하얏트에서 경찰과 함께 현장에 출동했다. 그는 공공 안전에는 위험이 없으며 이번 일은 사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BBC 베트남 서비스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어머니인 투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다가 짧은 대화 끝에 전화를 끊었다. 그는 아들이 평범한 출장을 간 줄 알았다고 답했다.
그의 아버지 쩐딘둥은 또 다른 인터뷰에서 아들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