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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르완다로 보내진 스리랑카 난민 이야기

2024.06.07
아자구와 마유르의 뒷모습
BBC
스리랑카 출신인 아자구와 마유르는 영국령 인도양 지역인 디에고가르시아섬에서 이곳 르완다까지 왔다

인도양에서 구조돼 약 1년 전 영국 정부에 의해 아프리카 르완다에 오게 된 소규모 스리랑카 이주민들이 성희롱 및 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영국 내에서도 영국에 온 망명 신청자들을 르완다로 보내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열된 가운데 이 소규모 집단은 벌써 1년 넘게 르완다에 살고 있다.

BBC 취재진은 아프리카 중동부 지역으로 건너가 이들 중 4명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현재 르완다에서 자신들이 고립되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으며, 과거 겪었던 고문이나 강간의 상처로 인해 받아야 할 복합적인 의료 서비스 요구 또한 충족되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에겐 식료품 및 생필품 구입비로 1인당 일주일에 50달러(약 6만8000원)가 지급된다. 그러나 영국과 르완다 정부가 이들의 체류 조건에 대해 체결한 합의에 따라 일자리를 구할 순 없다.

아울러 BBC가 만난 이주민 4명 모두 길거리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원치 않는 성적인 접근을 당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영국 정부가 자신들이 살만한 영구적인 거주지를 마련해주기를 기다리며 “사실상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너무 무서워 밖에 제대로 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르완다는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 4명은 이 중 3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이후 긴급 의료 지원을 위해 르완다로 이송된 스리랑카 타밀족 출신 이주민들로, 현재는 군 병원에서 퇴원해 르완다 수도 키갈리 외곽에 자리한 아파트 2곳에 나눠 살고 있다. 해당 비용은 영국 정부가 지원한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 외곽의 모습
BBC
영국은 이주민들의 키갈리 외각에서 지낼 수 있는 비용을 대고 있다

이들의 르완다 내 법적 지위는 영국에서 르완다로 온 망명 신청자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들 4명 중 2명의 법률 대리를 맡은 변호인은 이들이 “겪고 있는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르완다가 “매우 취약한 난민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르완다의 한 고위 관료는 BBC에 르완다의 의료 시스템을 “확실히 신뢰한다”면서 이곳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일부 이주민들의 우려는 이들만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르완다엔 잘살고 있는 외국인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BBC가 만난 4명 중 그 누구도 영국 본토 입국을 시도한 바 없다. 대신 이들은 영국령으로, 영국과 미국의 비밀 군사 기지로 사용되던 인도양 내 외딴섬인 디에고가르시아에서 망명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 2021년 10월,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망명을 신청하고자 항해 중 디에고가르시아섬에 도착하게 됐다는 수십 명 중 일부다.

이들 4명 모두 자신이 고문 혹은 성폭력 피해자라고 말했으며, 일부는 자신이 입은 이러한 피해가 스리랑카 내전과 관련 있다고 했다. 스리랑카 정부군과 소수민족인 타밀족의 무장 단체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 사이에서 발생한 내전은 결국 15년 전 정부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아파트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는 카르틱과 락샤니
BBC
카르틱과 그의 딸 락샤니는 외출도 하지 않고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신원 보호를 위해 이주민들은 가명을 사용했다.

한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난 침실 2개짜리 아파트엔 아자구(23)가 살고 있다.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은 상태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고립된 현재의 삶으로 인해 더욱더 나빠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아자구는 “우리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린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서 “어딜 가든 의료진에게 이러한 문제를 털어놓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르완다에서 만난 의료진은 소리만 질러댔으며, 한번은 자해하는 그에게 체포해 디에고가르시아섬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아자구와 함께 살고 있는 마유르(26)는 아예 상담을 포기했다고 했다.

“제대로 된 약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의료진과) 제대로 대화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병원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영국 소재 로펌 ‘리 데이’ 소속 톰 쇼트 변호사는 전문가들의 독립적인 평가 결과, “모든 의뢰인에게 르완다 내에서 충족되지 못한 복잡한 의료적 요구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BBC는 모든 타밀인이 치료를 받는 군 병원에 접근하려 했으나, 르완다 당국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영국에서 온 망명 신청자들을 담당하는 르완다 내 고위 관료인 도리스 우위체자 피카드는 르완다 내 의료 시스템을 옹호하며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주민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리스 우위체자 피카드
BBC
르완다의 고위 관료인 도리스 우위체자 피카드는 스리랑카 출신 일부 이주민들이 호소한 안전에 대한 우려에 대해 “누구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르완다인들도, 주민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해당 이주민 집단 중 청년 남성 2명(아자구, 마유르)과 여성 1명(락샤니)은 디에고가르시아섬을 운영하는 ‘영국령 인도양 지역(BIOT)’에서 국제 보호 요청을 승인받았다. 이에 대해 이들을 대변하는 변호인들과 유엔(UN)은 사실상 난민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본다. 4번째 인물인 카르틱은 락샤니의 아버지로, 딸과의 동행을 허가받아 오게 됐다.

이는 사실상 이들 4명이 고국 스리랑카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이지만, 영국 정부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보수당이 이끄는 현 정부는 지난해 BBC와의 인터뷰에서 BIOT가 “영국으로 들어오는 뒷문이 될 순 없다”고 표현한 바 있다.

BIOT가 영국이 통치하는 지역은 맞지만, “헌법적으로는 별개”라는 것이다.

르완다에서 지내고 있는 이들 이주민 집단은 BBC 취재진에게 자신들이 지난 1년간 리시 수낙 영국 총리 등 영국 관료들에게 보낸 법률 문서, 왓츠앱 메시지, 이메일, 서한 등을 보여줬다. 모두 이송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한 메시지엔 “우리가 이처럼 자유도 없이 영국 정부의 무국적 포로 상태로 앞으로 몇 년간 더 지내야 하냐”고 적혀 있었다.

집을 청소하는 뒷모습
BBC
아자구와 마유르는 길거리에서 성희롱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편 이들 4명은 괴롭힘으로 인해 집밖에 나서기 두렵다고 했다.

락샤니(23)의 아파트엔 회색 커튼이 쳐져 있어 바깥세상과 집을 차단한다.

BBC가 락샤니와 아버지 카르틱(47)이 사는 아파트를 방문했을 당시 락샤니는 “우린 밖에 나가지 않는다. 늘 두려움에 떤다”면서 “여기에선 (함께 이야기할) 여성이 없다. 친구가 없다”고 호소했다.

락샤니 부녀는 자신들의 아파트에 여러 차례 침입 시도가 있었다면서 침입자들이 이웃에게 잡히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여줬다.

또 한번은 근처 길거리를 지나던 한 무리의 남성들이 락샤니를 떼어 놓더니 “매우 부적절한 말”을 하면서 만지려고 했다고 한다.

락샤니 부녀는 이러한 경험이 과거의 아픈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고 털어놨다. 락샤니는 자신이 스리랑카에서도,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서도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아자구는 자신과 마유르도 길거리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낯선 이들이 저희에게 다가오더니 ‘너랑 성관계를 해도 되냐’고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웃고 있었어요. 저희는 병원으로 도망쳤습니다.”

아자구와 마유르는 이러한 우려 사항을 영국 정부와 협력하며 르완다 내 이주민들의 주요 연락 창구 역할을 하는 비영리 기업인 ‘크라운 에이전트’에 신고했다.

그러나 네 사람 모두 크라운 에이전트가 자신들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자구는 크라운 에이전트와 나눈 대화를 회상하며 “그들은 내게 ‘왜 문제가 생길 걸 알면서도 밖으로 나갔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왜 이곳에 문제가 생길 것을 알면서도 당신들은 우리를 이곳에 가둬두냐’고 물었다”면서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BBC는 크라운 에이전트에 관련 의혹에 관해 물었으나, 답변받지 못했다.

이들을 대리하는 변호사 또한 길거리에서 경험한 괴롭힘 및 침입 사건에 대해 BIOT에 여러 번 문제를 제기했으나, “실질적인 답은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스리랑카-디에고가르시아 섬-르완다로 이어지는 이동 경로
BBC
스리랑카 출신 이주민들은 인도에서 출발해 영국 해군에 의해 구조된 후 디에고 가르시아 섬으로 가게 됐다

한편 네 사람 모두 르완다 경찰엔 도움을 요청한 바 없다고 했다. 과거 경험으로 인해 제복 입은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피카드는 “(저들이) 국가 당국에 접근하지 않는데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피카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들 이주민이) 호소한 안전에 대한 우려에 대해 “누구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르완다인들도, 주민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서 “특히 우리는 르완다를 모두에게 안전한 나라로 만들고자 무척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누군가 이곳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니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영국 정부가 공개한 해외 안전 여행 정보에 따르면 르완다는 범죄 수준은 비교적 낮은 국가지만, 키갈리에선 강도, 절도, 가방 날치기, 노상강도 등의 사건은 발생한다.

요리 중인 뒷모습
BBC
카르틱과 락샤니는 디에고가르시아 섬 내 난민캠프에서 살던 때보단 르완다에서의 생활 환경이 더 낫다고 했다

이들 4명 또한 르완다에서 긍정적인 경험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라면서도, 부정적인 경험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증폭시켜 더욱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설명했다.

락샤니와 카르틱은 디에고가르시아섬에선 쥐가 들끓는 난민 캠프의 텐트에서 잠을 자고, 제대로 전화도 사용할 수 없으며, 스스로 요리를 해 먹을 수도 없었다며 그에 비하면 르완다에서의 생활 환경은 더 낫다고 했다.

한편 르완다엔 디에고가르시아섬에서 자살 시도 후 이곳으로 오게 된 5번째 타밀인도 있다. 이 남성은 현재 국제 보호를 요청한 상태다.

현재 군 병원에 있는 이 남성은 외출이 허용되지 않아 BBC는 전화 통화만으로 접촉할 수 있었다.

BBC는 이 남성이 외래 환자로 치료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공식적인 퇴원 통지서도 확인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디에고가르시아섬에 돌아가길 거부한 뒤로 의지와 상관없이 해당 병원에 발이 묶였다고 호소했다.

이 남성의 변호인은 BIOT 측에 해결책을 확보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한편 BBC가 만난 이주민 4명 모두 르완다에 남고 싶지 않다면, 언젠가 “안전한 제3국”에 정착하기 전까지 디에고가르시아섬 내 난민 캠프에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BBC는 영국 외무부에 르완다가 이들이 영구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안전한 제국”으로 고려되고 있는지 물었으나, 답변받지 못했다.

BBC가 영국에 온 일부 망명 신청자들을 르완다에 정착시키려는 영국 정부의 계획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주민 모두 우려를 표했다.

“그들도 우리가 지금 겪는 것과 똑같은 어려움과 고난을 견뎌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쇼트 변호사 또한 자신이 맡은 이주민 2명이 영국 정부에 의해 불확실한 상태로 르완다에 남겨졌다고 주장한다.

런던에 제기된 법원 문서에서도 르완다 및 디에고가르시아섬에서의 이주민들에 대한 대우가 “국제 법과 반하는,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존엄성을 해치는 수준”이라고 적고 있다.

한편 피카드는 이들 타밀족과 영국에서 르완다로 건너올 수 있는 사람들 간엔 “유사성이 없다”면서, 르완다로 오게 될 망명 신청자들은 “절차를 거쳐 우리 사회에 통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피카드는 르완다는 디에고가르시아섬에서 온 이들의 영구 정착에 대한 대화에 “언제나 열려 있다”면서 만약 이들이 르완다에 영구 정착할 경우 “필요한 모든 보호 조치와 보장, 통합 과정 등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들이 치료가 필요한 의료 피난민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피카드는 디에고가르시아에서 온 이들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르완다는 그 어떠한 자금 지원도 받지 않았다면서, 영국과 르완다 간 망명 신청자 협상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양국 간 “매우 강략한 파트너십”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BBC는 영국 외무부에 디에고가르시아섬에서 온 이들과 관련한 협의의 세부 사항을 물었으나, 거부당했다.

르완다의 거리
BBC
UN 난민 기구는 영국 정부에 르완다에 있는 이주민들을 위해 “해결책을 확보하라”고 촉구한다

다음 달 초로 예정된 영국 총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이는 노동당도, 현 집권당인 보수당도 디에고가르시아섬에서 온 이주민들의 운명은 물론, 집권 시 이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두 정당 모두 영국으로 오는 전체 이민자 수를 줄이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노동당은 영국에서 르완다로 이주민을 보내겠다는 보수당의 기존 계획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UN 난민 기구는 영국 정부에 “국제적인 의무에 따라” 르완다에 머무는 이들과 아직도 디에고가르시아섬에 있는 이들에 대한 “해결책을 확보하라”고 촉구했다.

영국 정부의 답을 기다리는 이들은 언젠가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마유르는 “디에고가르시아섬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목숨을 구해준 영국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우리를 방치하고 불안전하게 놔둔 영국에게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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