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미·유럽의 그린란드 갈등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러시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관련 발언을 듣고 있으면, 마치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그린란드 해안에서 몰래 기회를 엿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거기에는 러시아 구축함도 있고, 중국 구축함도 있으며, 더 나아가 러시아의 잠수함들도 널려 있다"고 발언했다.
그렇기에 미국이 반드시 그린란드를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그린란드를 장악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러한 계획이 들통나고 잠재적으로는 무산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은 어떠할까.
당연히 달갑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러시아 정부 관보인 '로시야스카야 가제타'는 트럼프 대통령을 극찬하는 한편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유럽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놀라운 기사를 실었다.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 돌파구를 가로막는 요소는 바로 덴마크의 완고함과 영국과 프랑스 등 소위 미국의 친구들이라 불리는 국가들을 포함한 고집스러운 유럽 국가들의 거짓 연대"라는 지적이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미국의 위대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럽은 다가오는 (미국의) 중간 선거에서 미 대통령을 "수장"시키고, 그가 생애 가장 위대한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생애 가장 위대한 거래'라니. 이 러시아 기자는 이 표현의 의미를 설명하며 글을 이어간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친트럼프 성향의 미국 언론이 아니라 러시아 정부 관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되짚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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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야스카야 가제타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독립 250주년인 오는 2026년 7월 4일까지 그린란드를 병합한다면, 그는 미국의 위대함을 공고히 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린란드를 갖게 된다면 미국은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국가로 올라서며 영토 면적 면에서 캐나다를 앞지르게 된다. 미국인들에게 이는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제 폐지나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영토 정복과 맞먹는 역사적 사건이다."
"트럼프 대통령 덕분에 그린란드가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다면 … 당연히 미국인들은 그 공로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어 러시아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가지 당부 메시지도 남겼다. '물러서지 말라.'
"그린란드 사안에서 물러서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본인에게도 위험하다. 이렇게 되면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의 입지가 약화될 수 있고,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 결과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 반면 선거 전에 그린란드를 빠르게 병합한다면 이는 정치 흐름을 바꿔놓을 것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 정부 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추진이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생각해보자.
왜 러시아는 이토록 긍정적으로 조명하고 있을까. 왜 이토록 노골적으로 응원하는 것일까.
바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를 향한 집착과 점령하겠다는 결의, 그리고 자신의 이같은 계획에 반대하는 유럽 국가들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위협은 대서양 동맹에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의 관계뿐만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부에서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서방 동맹을 흔들거나 분열시킬 위험이 있는 모든 요소는 러시아 입장에서 매우 반길 일이다.
러시아의 일간지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는 그린란드 관련 기사에서 "유럽은 완전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솔직히 말해 이걸 지켜보는 게 즐겁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은 러시아의 친정부 언론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는 여전히 러시아의 최우선 사안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가 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리라 믿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유럽은 비판하지만, 트럼프는 비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