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빨간 넥타이', '펜 선물'...의제만큼 눈길 끈 첫 한미정상회담의 또 다른 풍경

1일 전
한미정상회담에 모인 사람들
Getty Images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140분 동안 이어졌다.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한국 내 숙청' 글로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실제 회담장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두 정상의 나란한 빨간 넥타이, 즉석에서 오간 펜 선물, 트럼프 대통령의 농담까지. 이번 만남은 회담 의제 못지않게 주변 장면들도 큰 관심을 모았다.

빨간 넥타이를 한 두 정상

이 대통령이 낮 12시 33분 백악관 앞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현관 밖으로 나와 그를 맞이했다. 두 정상은 짧은 인사를 나누며 악수했고, 이 대통령은 환영 인사에 미소로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독특한 '악수 습관'으로 화제가 된 바 있는데, 상대의 손을 세게 움켜쥐거나 강하게 잡아당겨 균형을 잃게 하거나, 손등을 툭툭 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는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우리는 좋은 만남을 가질 것"이라고 말한 뒤, 왼손을 이 대통령의 어깨에 얹고 안으로 안내했다. 이날 두 정상은 모두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착용했는데, 이는 공화당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앞서 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푸른색 넥타이를 선택했다. 파란색은 신뢰와 안정감을 상징하는 색으로, 국제 외교 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색상 중 하나다. 일본과 대비되는 한국의 색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방한했던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의 회담 때는 금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금색은 베트남에서 전통적으로 권위와 번영을 상징하는 색으로, 주요 행사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Getty Images

트럼프의 통역으로는 한국계 통역사 이연향 미국 국무부 통역국장이 다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당시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통역을 맡아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2018년 싱가포르 1차,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판문점 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과 귀 역할을 했다.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출신인 이 국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무부 한국어 통역관으로 활동해 왔으며, 미국 내에서는 '닥터 리'로 불린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국무부 주요 인사의 통역도 도맡아왔다.

2022년에는 토니 블링컨 당시 국무장관이 "국무부 외교통역팀의 핵심 멤버"라며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트럼프 통역사(트럼프 뒤) 이연향 미 국무부 통역국장은 트럼프 1기 북미 정상회담에서 통역을 맡았던 인물이다
Getty Images
트럼프 통역사(트럼프 뒤) 이연향 미 국무부 통역국장은 트럼프 1기 북미 정상회담에서 통역을 맡았던 인물이다

두 정상이 주고받은 농담은 첫 회담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마중물은 '골프'였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고 북한에 '트럼프월드'를 하나 지어 제가 가서 골프도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농담을 건넸다. 통역관의 영어 통역 속에서 '골프'라는 단어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중국에 갈 일이 있으면 같이 전용기를 타자. 연료를 절약할 수 있고, 오존층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며 농담을 던졌다.

이 대통령이 "같이 가면 좋겠다"고 답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팔을 툭 치며 "농담이지만 원한다면 특별 허가를 받겠고 분명히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장에는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찬과 함께 진행된 비공개 회담에서는 한국 여성 프로 골퍼들의 비결도 물었다. 이 대통령은 "손재주가 좋은 민족적 특성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고 답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연습하는 노력에 감탄했다"고 화답했다.

돌발 즉석 선물

돌발 즉석 선물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백악관에 도착해 방명록을 작성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사용한 펜에 관심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펜", "도로 가져가실 것이냐", "난 그 펜이 좋다", "두께가 매우 아름답다"며 여러 차례 언급했고, "괜찮으시면 제가 사용하겠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영광이다. 대통령님이 하시는 사인에 아주 잘 어울릴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 대통령실은 이 펜이 "이 대통령이 공식 행사에서 서명용으로 사용하려 제작한 것"이라며 "두 달간 수공으로 만든 펜 케이스에는 태극 문양과 봉황이 새겨져 있고, 서명에 적합한 심이 삽입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펜을 건넨 뒤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 피습 장면이 실린 사진첩을 언급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사진첩을 선물로 전달했고, 그 안에는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다. 한국은 당신과 함께 더 높은 곳에서 놀라운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난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다"는 자필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측 참석자들에게도 선물을 준비했다. 오찬을 겸한 확대 회담을 마친 뒤 참석자들을 '기프트 룸'으로 안내해 마음에 드는 선물을 고르도록 했고, 본인이 직접 MAGA(마가) 모자, 골프공, 셔츠 핀 등에 사인을 해주었다. 기념 동전도 모두에게 증정됐다.

'MAGA 모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표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이 수놓아진 빨간색 야구 모자다. 2016년 대선 당시 주요 상징물로 쓰였고, 이후 트럼프의 정치적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측의 공식 선물도 별도로 마련됐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금속 거북선, 국산 수제 골드파이브 퍼터, 그리고 마가 모자를 전달했다. 금속 거북선은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인 '조선업 협력'을 상징하며, HD현대중공업의 오종철 명장이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퍼터는 골프를 즐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고려해 그의 신장과 체형에 맞춰 한국에서 맞춤 제작됐으며, 이름도 각인됐다. 마가 모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빨간색, 멜라니아 여사에게는 흰색으로 각각 준비됐고, 대통령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가 모자를 즐겨 쓰지만 카우보이 형태의 마가 모자는 착용한 적이 없어 특별히 제작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통령이 블레어하우스가 아닌 워싱턴의 한 호텔에 머물고, 공항에서도 의전장이 아닌 의전장 대행이 영접하면서 '의전 홀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이번 방문은 미국 측이 환영 의사를 거듭 표명하며 준비한 일정"이라며 "블레어하우스는 내부 수리로 제공이 불가능했고, 의전장 대행이 영접한 것도 미측이 정중히 양해를 구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또 2021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미국을 '공식 실무방문'했을 때도 보수 공사로 외부 호텔에 머문 전례가 있으며, 2018년과 2017년에도 의전장 대신 의전장 대리가 공항에 나온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식 실무방문은 국빈 방문과 달리 의장대 사열이나 예포 같은 의전 절차가 애초에 생략되는 형식으로, 이번 방미 역시 같은 범주에 해당한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