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32개국 정상 모여도...트럼프 단 한 명에 쏠린 눈

나토 정상회의는 단합된 전선을 보여주기 위해 "미리 준비된" 경향이 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나토의 가장 강력한 회원국인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헤이그에서 열릴 회의의 내용을 이미 결정했다.
유럽 동맹국들의 증액 약속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하는 바이며, 이번 회의를 통해 이를 얻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타협안과 임시방편이 불가피하게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정상회의는 무역과 러시아, 그리고 중동에서 심화하는 분쟁 문제를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과 많은 유럽 동맹국 간 균열을 덮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신조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은 다국적기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심지어 나토의 집단방위체제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첫 임기 중 처음으로 참석한 나토 정상회의에서 그는 유럽 동맹국들이 충분한 지출을 하지 않고 미국에 "엄청난 양의 돈"을 빚지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일관된 입장을 고수해왔다.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에게 성과를 안겨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정상회의는 현지 시간으로 오는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네덜란드 헤이그의 월드포럼센터에서 열린다.
주요 논의는 3시간 동안만 진행되며,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로 인해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5개 문단으로 축소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32개국 중 하나인 미국의 대표로 참석하며, 이번 회의에는 12개국이 넘는 파트너 국가의 정상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다만 한국 이재명 대통령은 검토 끝에 이번 회의 참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경찰 당국은 역대 가장 큰 비용인 1억8340만유로(약 2917억원)을 투입, 나토 정상회의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보안 작전을 펼쳐왔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의 길이가 짧아진 이유가 긴 회의를 싫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에 맞추고 그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논의 주제가 적고 짧은 정상회의가 분열을 숨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영국 안보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에드 아놀드는 트럼프가 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그가 유럽 국가들에 행동을 촉구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동맹국의 방위비 지출을 지적한 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누구보다 많은 성공을 거뒀다. 나토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커트 폴커는 일부 유럽 국가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라고 요구하는 트럼프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인정한다.

유럽은 여전히 나토 전체 군사비 지출의 30%만을 부담한다. 폴커는 이제 많은 유럽인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강요를 받은 것은 유감스럽지만, 이제는 해야만 한다"라고 인정한다고 말한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미 국방비를 GDP의 5%까지 늘리고 있다. 폴란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만 압박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응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나토 회원국이 새로운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일부는 10년 전에 설정한 목표치 2%도 달성하지 못했다.
뤼터 총장의 타협안은 동맹국들이 핵심 국방비를 GDP의 3.5%까지 늘리고, 국방 관련 지출에 1.5%를 추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 관련 지출'이 모호한 개념인 만큼,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뤼터 총장은 여기에 교량과 도로, 철도 건설과 같은 인프라 산업 비용도 포함될 수 있다고 말한다. Rusi의 에드 아놀드는 이 제도가 필연적으로 "창의적인 회계"를 늘릴 것이라고 말한다.
예상대로 새로운 지출 목표가 승인되더라도 일부 국가는 2032년 또는 2035년까지 목표를 달성할 의지가 거의 없을 수 있다. 목표 달성 시기는 아직 불분명하다. 스페인 총리는 이미 새로운 목표치가 불합리하고 비생산적이라고 말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영국이 언제까지 GDP의 3%를 국방비로 지출할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의회에서 이를 논할 것이라고만 언급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토를 영국 국방 정책의 중심에 두겠다는 영국 정부 방침을 고려할 때, 총리는 새로운 계획을 지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진짜 위험은 국방비 증액 요구를 자의적이거나 상징적인 발언, 또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새로운 계획은 러시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나토 자체 방위 계획의 일환이기도 하다. 뤼터 총장은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5년 이내에 공격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토의 방위 계획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뤼터 총장은 이미 나토에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밝혔다. 이달 초 그는 연설을 통해 나토가 방공 및 미사일 방어 체계를 400% 증강하기 위해 수천 대의 장갑차와 탱크, 그리고 수백만 발의 포탄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회원국은 아직 나토에서 약속한 역량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스웨덴은 군대 규모를 두 배로 늘리고, 독일은 병력을 6만 명 증원할 계획이다.
이 계획은 러시아가 침공할 경우 동맹이 동쪽 측면 지역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인 크리스토퍼 도나휴 장군은 최근 연설에서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인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영토를 방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맹의 기존 역량을 살펴본 결과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매우 빨리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자제될 예정이다. 이 문제는 현재 유럽과 미국을 분열시키는 가장 큰 이슈다. 커트 폴커는 트럼프 정권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안보를 유럽 안보에 필수적으로 보지 않지만, 유럽 동맹국들은 그렇게 보고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는 이미 푸틴과 대화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보류함으로써 나토의 연합 전선을 무너뜨렸다.
에드 아놀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슈는 제외됐다고 말한다. 특히 트럼프와의 분열을 피하기 위해서다. 정상들은 새로운 대러시아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정상 만찬에 초대됐지만, 북대서양이사회(North Atlantic Council) 주요 논의에는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뤼터는 사무총장으로서 첫 정상회담이 짧고 유익하게 끝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나토의 가장 큰 위협인 러시아와 관련해 대부분 동맹국과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의가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