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 의무지만'...중학생들도 전동킥보드를 빌릴 수 있는 이유
"운전면허 소지자만 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수이자 서울FC의 공격수 제시 린가드가 지난 18일 전동킥보드 무면허 운전으로 경찰에 입건돼 조사를 받으며 면허 없이도 공유킥보드를 빌릴 수 있는 현 제도에 대한 지적이 일고 있다.
현행법은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제2종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 이상의 면허를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상당수 국내 공유킥보드 운영 업체들은 면허 의무 확인 없이 킥보드를 대여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제2종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 취득 가능 연령인 만 16세가 되지 않은 청소년들도 대부분 업체에서 전동킥보드를 대여할 수 있다.
이에 10대들의 무면허 운전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며 유명무실한 면허 의무 조항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공유킥보드 업계, '현실에 맞지 않는 면허'
공유킥보드 운영 업계는 의무적으로 면허를 확인하기에는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 이상을 요구하는 현행 규정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도로교통법에서 규정한 제2종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는 125cc 이하의 원동기, 즉 통상 오토바이를 운전하기 위한 면허다.
국내 대부분의 공유킥보드 업체가 회원사로 있는 한국퍼스널모빌리티산업협회의 박판열 사무국장은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가 전동킥보드와는 "맞지 않는 면허"라고 말한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좌회전 신호에서 좌회전을 하는데, 개인형 이동장치는 좌회전 신호를 받을 수가 없어요. 자전거랑 똑같이 다녀야 합니다."
전동킥보드는 규정상 자전거 전용도로나 차도의 가장자리로 이동해야 한다. 따라서 일반 도로에서는 곧바로 좌회전을 할 수 없고, 직진 후 방향을 바꿔 다시 직진하는 방식으로 주행해야 한다.
박 사무국장은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를 따더라도 개인형 이동 장치를 어떻게 운행해야 되는지에 대한 지식은 없다”며, “애초에 맞지 않은 면허이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 설득이 잘 안 된다"며 업계의 입장을 전했다.
현재 공유킥보드 운전자에게 기존 운전면허를 의무화하는 나라는 주별로 규정이 다른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과 영국이 전부다. 영국은 내연기관 기준 50cc 이하인 2륜차, 3륜차에 적용되는 Q 카테고리 면허 이상을 요구한다.
싱가포르는 온라인으로 취득할 수 있는 별도의 면허제를 운영하고 있다. 2021년 온라인 방식의 필기시험을 도입한 싱가포르는 기존 운전면허 소지자도 개인형 이동장치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이 필기시험 합격증명서를 반드시 소지하도록 했다.
업체들이 면허를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강제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행법은 킥보드 운전자의 면허 보유 의무는 규정했지만, 대여를 하는 공유 킥보드 사업자들의 면허 확인 의무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자동차 렌터카 업체들은 운수사업법에 따라 차를 대여해줄 때 고객들의 면허를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공유킥보드 사업자들에게는 이런 의무 규정이 없는 것이다.
맞지 않는 면허는 왜 생겼을까
관계자들은 애초에 이 법이 임시 방편으로 만들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형 이동장치(PM)에 맞는 전용 면허를 만들기 전 단계로 제2종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2021년 당시 도로교통법 개정 논의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당시 다수 법안들이 ‘PM 전용 면허 신설'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PM 면허제도를 신설하려면 준비기간이 약 1년 정도 걸린다는 경찰청 답변이 있었다"며, “새로운 면허를 도입하는 기간인 1년 정도 기간까지는 기존에 있는 원동기 면허를 취득하게 하고 그 이후에 완벽하게 준비가 되면 PM 면허로 넘어가면 된다는 소위원회 위원님들의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1인 이동수단인 공유 킥보드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로 인한 안전 사고 문제가 대두되던 때였다. 개인형 이동장치로 인한 사고는 2019년 440건에서 2020년 913건, 2021년 1788건으로 매년 약 2배 상승했다.
이 의원은 이같은 상황에서 우선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를 적용해서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는 문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고 당시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2021년 12월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에서 경찰측 대표 송민헌 차장도 “궁극적으로 PM 면허제도 신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소위원장이던 박완수 전 국민의힘 의원도 “원동기 면허를 받도록 하고 PM 면허를 별도로 준비해서 시행이 되면 그때는 PM 면허 쪽으로 가자, 이런 말씀이 대부분"이라며 논의를 정리했다.
경찰, '업체들의 면허 확인 의무 먼저'
2021년 5월 임시로 원동기면허를 적용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이 규정은 바뀌지 않았다. ‘PM 전용 면허'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개인형 이동장치 관련 법이 잇따라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지난 5월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주된 원인은 면허와 관련된 경찰과 업계의 입장차 때문이다. 박 사무국장은 “PM 관련법안을 추진할 때 제일 반대하는 게 경찰"이라며 경찰이 전용 면허를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업체들의 면허 확인 의무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인형 이동장치 관련 입법 논의에 실무자로 참여했던 경찰청 교통안전과 김새한 경사는 “면허 확인 시스템이 먼저 갖춰지고 난 다음에 면허 단계를 낮추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면허 확인을 업체에서 안 하고 있는데, 전용 면허가 있다고 해서 (확인을) 할 거냐는 별개의 문제"라며 “청소년들이 더 진입하기가 쉬워지고 더 무분별하게 타고 다니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과 국토교통부는 대부분 공유킥보드 운영사들에게 렌터카 업체 등에서 사용하는 운전면허 자동검증시스템 사용 허가를 내주고 있다. 일부 서비스에서는 이를 이용해 면허 인증을 선택적으로 할 수 있지만, 이는 필수가 아니기에 등록 절차가 없어도 공유킥보드를 빌리는 데는 문제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공유킥보드 운영사들은 적합한 면허가 먼저라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공유킥보드 서비스 빔의 운영사 빔모빌리티코리아의 박홍우 대회협력 총괄은 “맞지 않는 면허를 인증하라고 하시니까 저희가 아웃한 것"이라며 “적합한 자격수단이라면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경쟁 때문에 자율 규제는 못 한다는 업체들
현행법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공유킥보드 업계의 자구적인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개인형이동장치팀 양규석 팀장은 “서울시에서도 공유킥보드 업체들에게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면허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라고 분기별로 간담회 때마다 요구”하지만, “업체들 입장에선 구속력이 없으니까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빔모빌리티코리아 박 총괄은 업체들 간의 경쟁 때문에 자발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는 "과거 일부 업체들에서는 면허 인증 의무 조치를 했었"지만, “일부 업체는 인증을 하고 일부 업체는 안 하다 보니까 시장에서 판별이 났다"며 “면허 인증을 안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업체들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어필했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법 조항상으로는 (인증을 안 하는 업체들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덧붙였다.
면허 의무화가 아니면 '특정 연령 이하는 대여를 못 하게 연령제한이라도 할 수도 있지 않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업계는 같은 입장이다. 협회의 박 사무국장은 "회원사 중 서울 이외 지역에서 영업하는 2개 업체만 지금 연령 제한을 하고 있다"며, “서울을 포함해 전국 단위로 운영하는 곳들은 경쟁을 폭넓게 하다 보니까 쉽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모든 업체가 하면 상관없는데, 한 군데가 안 하면 쏠림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스타트업이고 하니까 체급을 키워 체급 경쟁을 하는 문제들이 있거든요.”
서울시 양 팀장은 이런 태도에 대해 “민간 대여 업체가 조금 성의를 보일 때도 되지 않나 싶다"며, 끊임없이 불거져온 주차 문제와 관련해서도 “서울시는 시 예산으로 전용주차장 280곳을 만들어줬지만 대여 업체에서는 한 곳도 설치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면허와 교육은 꼭 필요해'
전문가들은 공유킥보드 면허와 안전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5월 도로교통공단이 발간한 ‘개인형 이동장치 교통안전 확보를 위한 정책방향 연구'는 면허제 유지와 별도의 교통안전교육의 도입을 제안하며, 그 이유로 개인형 이동장치가 자전거나 자동차에 비해 ‘차대 차' 사고보다는 ‘차대 사람' 또는 ‘단독 사고' 비율이 높다는 점 등을 꼽는다.
연구에 참여한 김주호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연구원은 “개인형 이동장치는 자전거와 달리 연습을 하거나 미리 타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운전이 미숙한 상태로 이용을 해서 단독 사고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또 전동킥보드의 경우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바퀴가 작고 무게중심이 위쪽에 있어서 사고가 났을 때 더 다치기 쉽다는 전문가 지적도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후속 입법이 지지부진한 사이 개인형 이동장치의 무면허 운전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적발한 개인형 이동장치 무면허 운전 건수는 2021년 7165건에서 지난해 3만1916건으로 늘었다.
무면허 운전으로 인한 사고 비율도 매우 높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개인형 이동장치로 인해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5860건 중 2027건이 무면허 운전자에 의해 발생했으며, 이중 1370건이 20세 이하 운전자에 의해 발생했다. 전체 사고의 약 23%가 20세 이하의 무면허 운전으로 발생한 셈이다.
대여사업자의 면허확인 의무, 주차 관련 사항 등을 규정한 '개인형 이동수단의 안전 및 이용 활성화법안'을 21대 국회에 이어 22대에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은 "2018년 150대로 시작한 공유킥보드 사업이 6년 만에 27만 대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며, "안전 및 관리 기준은 개인형 이동 장치 산업의 발전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초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