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배달기사의 죽음은 어떻게 인도네시아의 분노를 촉발했나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는 가운데 시위대가 숨지고, 건물 방화, 정치인 자택 약탈 등의 사건이 잇따르면서 당국이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번 대규모 시위는 생활비 부담과 정치 엘리트 계층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하며 지난달 25일 수도 자카르타에서 처음 촉발됐다. 시민들은 국회의원의 과도한 급여와 주택 수당을 규탄했다.
결국 상황은 폭력 사태로 치달았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시위대와 당국 간 충돌이 격화한 가운데 오토바이를 탄 배달 기사 아판 쿠르니아완(21)이 경찰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나서 공식 사과하였으나 시위대의 분노는 더 커졌고, 시위는 서자와(자와바랏)에서 발리, 롬복에 이르기까지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인도네시아 경제조정부 장관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최소 7명이 시위 도중 목숨을 잃었다.
시위를 촉발한 국회의원 특혜
이번 시위를 촉발한 주요 요인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을 인상한다는 정부의 결정이었다.
지난달 현지 언론들은 국회의원들이 상당한 금액의 주택 보조금을 포함해 매달 월 1억루피아(약 840만원)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평균 국민 소득의 30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에 비해 서민들은 생활비 부담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호주국립대학교 '인도네시아 연구소'를 이끄는 이브 워버튼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긴축 정책을 펴고, 시민들은 경제적 불안감을 느끼는 이 시점에 이미 부유한 정치인들의 수입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분노했다"면서 "그리고 그 분노를 표출하고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설명했다.
쿠르니아완의 사망 사건이 알려지며 시위는 급속히 확산하였으며, 이후 경찰의 폭력 및 책임 문제까지 포함하는 양상으로 번졌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는 사회 구조적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시위의 배경에는 정치 부패, 사회적 불평등, 부유하고 권력 있는 계층만 부당하게 보호받는 듯한 경제적 어려움 등이 자리한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 소속 베디 하디즈 아시아학 교수는 "국회의원들에게 제공되던 이 터무니없는 혜택에서 짐작할 수 있듯 엘리트 계층은 자신들만의 사치스러운 삶에 파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들의 정의감을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전국으로 번진 이번 시위를 진정시키고자 프라보워 대통령은 지난 31일 수당 등 국가에서 정치인들에게 제공되었던 특혜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시위대는 환영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전-인도네시아 학생 연합'의 중앙조정자로 활동했던 헤리안토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걸음이지만, 불만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 국가 운영 방식, 책임성에 대한 오랜 불만과 우려가 오랫동안 응축된 것"이라면서 "상징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농업 정책, 교육, 공정한 경제적 기회 등 서민들이 직접 체감하는 분야에서 더 근본적인 개혁이 있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궁극적 목표는 더 책임감 있고 투명하며, 국민이 중심이 된 국가 운영입니다."
시위 진압
프라보워 대통령은 정치인 혜택을 축소하는 한편, 군과 경찰에 폭도, 약탈자, 방화범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정당 관계자들의 주택 및 관공서가 약탈 및 방화 피해를 입었다.
인도네시아 내 여러 지역에서 시위대는 지방 의회 건물에 불을 질렀다.
마카사르시에서는 지역 의회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여 최소 3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 화재 당시 건물에는 사람들이 갇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카르타에서는 자신들의 높은 급여를 비판하는 시위대를 비난하던 의원들의 자택에 분노한 시위대가 들이닥쳐 귀중품을 약탈하기도 했다.

이렇듯 국내 소요 사태가 악화하면서 프라보워 대통령은 결국 중국 방문 일정도 취소한 채 직접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해결책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틱톡 또한 대규모 시위 동원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속 선동적인 콘텐츠 확산을 막고자 "앞으로 며칠간" 인도네시아 내 생방송 기능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헤리안토는 이번 사태에 대한 당국의 대응에 대해 전반적으로 "혼재된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일부에서는 대화를 이어가려는 시도가 보이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과도한 무력 사용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국은 평화적 시위의 권리를 보호해야지, 탄압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프라보워 대통령이 시위 현장의 조명 차단, 고무탄 사용 허가 등 강경 진압을 지시하면서 경찰 폭력에 대한 불안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헤리안토는 "역사가 보여주듯 국가가 대화보단 보안 조치를 우선하면 과잉 진압 및 인권 탄압 위험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당국이 자제력을 갖추고 대응하며, 대립이 아닌 긴장 완화를 추구하길 바랍니다."
변화의 기회
이번 시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불분명하다. 더 큰 폭력으로 번지며 진압 수위가 높아질 수도 있고, 혹은 정부가 더 큰 양보를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결과이든 이번 사태는 2024년 취임한 프라보워 대통령 정부가 직면한 최대 도전 과제다.
워버튼 박사는 "이번 일은 주요 시험대"라면서 "프라보워 대통령은 과도한 국가 폭력이나 진압 없이 시위대를 달래고 시위를 끝낼 수 있을지가 바로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심각한 인권 유린 혐의를 받는 특수부대 사령관 출신인 프라보워 대통령은 청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귀여운" 틱톡 영상을 올리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은 여전히 그를 군사 독재자인 수하르토의 사위이자,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빠르게 출세한 인물로 기억한다.
지난해 프라보워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일각에서는 불안감을 드러냈는데, 실제로 올해 초에는 보건 및 교육 예산 삭감으로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학생 시위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과거 학생 시위가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번 시위에 대한 그의 대응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편 당국이 자카르타의 보안 조치를 강화하자 지난 1일 일부 학생 및 시민사회 단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자카르타 시위 계획을 취소하면서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경찰은 자카르타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하는 한편 군과 함께 도시 전체를 순찰하고, 주요 지점에 저격수를 배치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 사태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근본적인 경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은 이번 반정부 시위에 힘을 불어넣었다. 하디즈 교수는 이번 사태를 "레포르마시 이후 가장 중요한 시위 중 하나"라고 평가하며,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수많은 다른 시위와 이번 사태가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레포르마시란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이 종식된 이후 시작된 민주주의와 안정의 시대를 가리킨다.
워버튼 박사 역시 이번 시위의 중요성이 "지난 20년간 목격한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에 동의했다.
"최근 몇 년간 진보적인 학생 및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있었다는 워버튼 박사는 "(그러나) 이번 시위는 다르다. 불만은 더 깊고 광범위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위는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불안감과 자신들이 선출한 공직자들의 탐욕과 사치에 대한 누적된 분노를 반영합니다."
프라보워 대통령이 의원 특혜를 축소하고, 배달기사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는 등 이번 시위를 촉발한 요소들에 대해 대응하고 있으나, 시위 주최 측은 더 광범위한 제도적 개혁을 위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헤리안토는 "이번 사태는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면서 "사회 운동은 종종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오며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이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국가 지도자들이 단순히 정치 및 엘리트 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의지가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추가 보도: BBC 인도네시아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