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선 부자, 해리 왕자 이번엔 찰스 3세 만날까

5년 동안 영국 왕실 내부에는 분노와 상처, 그리고 깊은 가족 간의 분열이 존재해왔다. 찰스 3세 국왕과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 사이의 균열은 양측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그 전말은 대중 앞에 낱낱이 공개됐다.
그간 화해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갈등이 다소 완화되고 있으며 부자 간 새로운 이해가 형성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해리 왕자는 약 2주 뒤 영국을 다시 찾는다. 그는 지난 4월에도 보안 문제와 관련한 재판 출석을 위해 귀국했지만, 당시 찰스 국왕은 이탈리아 국빈 방문 중이었기에 부자 간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 방문은 당시와는 다소 다른 상황이다. 극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최근 정황을 종합하면 분위기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우선 찰스 국왕이 영국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재 국왕은 스코틀랜드 발모럴 별장에 머물고 있지만, 암 치료와 왕실 일정으로 인해 종종 잉글랜드 남부로 이동하고 있어 부자 간 대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부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24년 2월 6일로, 찰스 국왕이 대중에게 암 투병 사실을 처음 공개한 직후였다. 당시 해리 왕자는 히스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클라렌스 하우스로 향해 국왕과 약 30여 분간 면담한 뒤 다음 날 미국으로 돌아갔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최근 해리 왕자와 부인 메건 마클을 대변하는 홍보팀의 움직임이다. 지난 7월, 미국 LA에 본사를 둔 홍보 책임자 메러디스 메인스는 영국 내 담당자인 리암 맥과이어와 함께 자선단체 및 언론사를 방문했다. 이 가운데 'BBC 뉴스'도 포함됐다.
그러나 더 큰 관심을 끈 것은 이들의 공식 일정이 아닌, 찰스 국왕의 공보비서 토빈 안드레아와 함께한 비공식 만남이었다. 이들은 런던의 한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에서 함께 있는 장면이 사진기자에 의해 포착됐고, 이 사진은 '메일 온 선데이'에 '해리의 비밀 화해 회담'이라는 제목과 함께 실렸다.
누가 사진기자에게 해당 정보를 흘렸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며, 양측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 같은 만남이 성사됐다는 사실 자체가, 양측 모두 관계 회복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에 더해, 해리 왕자가 영국 내 체류 시 국가가 제공하는 경호와 관련해 내무부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도 최근 마무리됐다. 해리는 해당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 법적 분쟁은 버킹엄궁에도 큰 부담이었다. 왕실은 이번 소송을 '국왕의 아들이 국왕의 정부를 국왕의 법원에 고소한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이 문제가 진행되는 동안 찰스 국왕과 해리 왕자는 대화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리 왕자는 지난 5월 'BBC 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에서 그는 "가족과 화해하고 싶다. 아버지가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겠다. 그는 이 보안 문제 때문에 나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발언이 다소 거칠고,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언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찰스 국왕은 현재 76세로 암 투병 중임에도 공식 일정을 꾸준히 소화하고 있으며, 공적 활동에서 활력을 얻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정황은 부자 간 화해 가능성과 의지에 있어 분위기의 미세한 전환이 있음을 시사한다. '인생은 짧다'는 인식 역시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거론되고 있다.
해리 왕자의 회고록 '스페어(Spare)'는 가족 간 갈등을 더욱 증폭시킨 책으로 평가되지만, 그 안에는 의미심장한 대화 장면도 담겨 있다. 해리는 고(故) 에든버러 공 필립 공작의 장례식 직후 부친과 형 윌리엄 왕세자와 나눈 언쟁을 회상하며, 그 말다툼을 찰스 국왕이 직접 중재했다고 적었다.
"아버지는 우리 사이에 서서, 달아오른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발, 얘들아… 내 남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지 마라.'"
이 말은 아직 찰스가 국왕이 되기 전, 암 진단을 받기도 전, 70대 가장으로서 가족 간 갈등을 봉합하고자 했던 한 아버지의 호소였다. 물론 이는 해리 왕자의 시각에 따른 기억이며, '기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왕실 내부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여전히 '신뢰'는 화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남아 있다. 버킹엄궁은 부자 간 만남이 이뤄질 경우, 그 구체적인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을 것이란 확실한 보장을 원한다. 이번 주 양측을 취재한 결과, 찰스 국왕과 해리 왕자 간 만남의 가능성에 대해 일절 공개하지 않겠다는 데 입장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버킹엄궁은 그간 국왕과 막내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해왔으며,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측 홍보팀 역시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공유할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의 침묵'은, 수년간 이어진 폭로전의 다음 국면이 조용한 화해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조명을 피한 채, 세간의 주목 없이 이루어지는 '비공개 회동'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해리 왕자는 오는 9월 8일 런던에서 열리는 '웰차일드 어워즈'에 참석하며 영국 일정의 포문을 연다. 중증 질병을 앓는 아동과 가족을 지원하는 이 자선단체는 해리 왕자가 17년째 후원자로 활동해온 곳이다.
해리 왕자는 "웰차일드 어워즈에 참석해 강인한 정신으로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아이들과 가족, 전문가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영광이다"라며, 영국 방문 일정을 공식화했다. 이어 "이들의 이야기는 연민, 연결, 공동체의 힘을 다시금 일깨워준다"고 덧붙였다.
이번 방문은 해리 왕자가 영국 내 여러 자선단체들과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일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비록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그는 여전히 여러 영국 자선단체의 '열성 후원자'로 남아 있다.
그는 지난 5월, 노팅엄의 한 자선단체에 취약계층을 위한 식료품 상자를 지원하라며 '상당한 금액의 개인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고, 현충일에는 군 복무 중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돕는 단체인 '스코티스 리틀 솔저스'에 직접 간식 꾸러미를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해리 왕자의 영국과의 연결 고리는 여전히 끈끈하다. 양측 모두 오랜 시간 깊은 상처와 고통을 겪었으며, 무엇보다 '신뢰 회복'이라는 근본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여전하다.
왕실 전문기자로서 2020년 이후 벌어진 이 긴 가족 갈등의 여러 국면을 지켜본 바, 해리 왕자와 형 윌리엄 왕세자 간의 골은 여전히 깊다. 두 사람은 연락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서로에 대한 상처 또한 크다. 형제는 각자의 배우자와 가족을 극도로 보호하는 입장이며, 형제애와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형제 간 화해는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왕과의 관계는 다를 수 있다. 해리 왕자의 이번 영국 방문은, 지난 수년간 사라졌던 부자 간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 오랜만의 기회로 평가된다.
해리 왕자는 앞서 'B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더 싸워봤자 의미 없어요… 인생은 소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