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런 한국 정치판을 바라보는 북한 김정은의 심경은?
2025년 새해가 되고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지만 한국의 정치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짐작건대 한국 국민들 못지 않게 분명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북한은 이번 12.3 사태 이후 관련 소식을 단 두 차례만 보도했다. 사건 발생 8일만인 지난해 12월 11일 그리고 1월 3일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과거와 달리 뭔가 무미건조하게 선별적으로 보도했음을 알 수 있다.
'괴뢰 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통렬했던 대남 선전전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실제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신년사를 통해 직접 박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번에는 대남 비난을 자제하고 있을까? 예전처럼 '윤석열 타도'를 외치며 '미제 식민지 한국'을 맹비난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 않는 것일까? 단순히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기 때문일까? 여기에는 아주 근본적인 배경이 있다.
불편한 김정은… 왜?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현재 한국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현 상황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이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투표권을 보장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다.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을 위해 집회에 참여하기도, 반대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촛불을 들기도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불편해하는 점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3대 세습 독재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고 행여나 주민들이 이러한 소식에 눈을 뜰까 우려한다는 것이다.
김영희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객원 연구원은 BBC에 "직접 국가 지도자를 뽑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북한 주민들은 모른다. 북한에 있을 때 나도 전혀 몰랐다. 알면 안되니까 주민들에게 그런 일말의 가능성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도 이번 사태를 보면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 절대 안되겠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자유선거 그 자체도 부정하지만, 주민들이 나서서 지도자를 탄핵하는 것을 보면 불편함을 넘어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김정은에게도 내부 민심은 중요하다는 것.
실제 북한 당국은 지난 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염불처럼 외워댔지만 붕괴된 상태"라며 민주주의까지 비난했다.
이러한 까닭에 북한이 사활을 걸고 외부 정보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국가정보원 대북분석관을 지낸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북한 역시 처음에는 '한국 정치가 난장판'이라며 비난했지만,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면 알릴수록 오히려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결국 적대적 두 국가론의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북한 내부 요인"이라며 "한류 등 외부 정보 유입이 확대되면서 집단이 우선시되는 북한 체제에서 주민들의 자본주의적, 개인주의적 성향이 점차 강해졌고 이를 막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3대 악법에 고강도 처형까지 집행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내부 민심이 동요되고 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한국을 적으로 돌리고 헤어질 결심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곽 대표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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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내세우는 '우리식 사회주의'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이는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에 기초한 북한식 사회주의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사회주의와 달리 김일성-김정일주의 성격이 강하다.
중국 역시 마오쩌둥 사상이 가미된 '중국 특색 사회주의' 국가로, 오롯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내세운 사회주의 국가는 베트남과 쿠바, 라오스 등 3개국뿐이다.
한국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1978년 12월 중국의 개혁개방과 1980년대 중반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 개혁개방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로 개발됐다.
북한은 1970년대 말부터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는 구호를 제시했는데 1980년대 말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이를 대대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몰락의 도미노 현상을 차단하고 변화의 물결이 침투하지 않도록 주민들을 단속하기 위해 내놓은 통치 이데올로기가 바로 '우리식 사회주의'인 것.
당시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는 인민대중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이자 '영원불멸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가장 독창적이고 인류의 참된 복지생활이 보장되는 이상사회를 구현한 정치 제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현 김정은 정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김영희 객원 연구원은 "그 체제에 길들여진 북한 주민들은 자유선거의 의미 자체를 모른다"며 "지금도 나라에서 정해준 후보가 선거에 나오면 무조건 찬성투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2023년 11월 열린 북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시 투표율이 99.63%를 기록했는데 이에 대해 한국 통일부는 "북한의 선거 방식은 민주적 선거제도와는 거리가 멀다"며 "오히려 정권 내부 통제력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 국방종합대학 출신의 박충권 의원(국민의힘)은 "대학에서 김정일이 썼다는 '사회주의에 대한 해방은 허용될 수 없다',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제목의 논문 두 편을 가르친다"며 "거기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다당제, 시장 경제 등의 내용은 짧게 나오지만 투표로 권력이 선출된다는 내용은 없다"고 소개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흔들리는 한국 정치판을 바라보며 김정은 정권이 오히려 자신들의 체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식 사회주의가 겉으로는 인민대중, 특히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 건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것을 정치적으로 포장해 위선적으로 수령독재, 수령 강압 통치를 하는 체제"라면서 "한국 내 혼란스러운 민주주의 통치 행위를 바라보며 '적어도 남한에게 먹히지는 않겠구나', 혹은 '우리가 남한을 먹을 수도 있겠구나' 등의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실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공개적으로 '남한 군대는 북한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며 "이러한 수령독재 체제의 판단 기준에서 보면 한국의 사태는 분명 조심해야 할 측면도 있지만 북한식 통치에 대한 우월성 또는 자신감이 작용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20년 미국에서 발간된 책 '분노(Rage)'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항의하며 "남한 군대는 우리 군대에 맞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싫어한다"는 문구도 담겼는데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 책은 그저 소설일뿐"이라고 비하했다.
한편 탄핵 이슈 등 외부 정보가 유입된다면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깨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이번 사태가 당장 김정은 체제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는 않겠지만, 결국 한류가 북한 주민들을 움직였듯이 '수령(대통령)도 탄핵이 되는구나', '저렇게 자유롭게 정치 활동도 하고 또 대립도 하는구나' 등을 인식하고 점차 관련 정보들이 유통된다면 체제 밑에서부터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충권 의원(국민의힘)은 "최근 북한에서 한 인물이 자유 민주주의 정당을 만들었다가 처형 당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해당 하건이 내부 교양 자료로 만들어져 주민들에게 배포된 것을 보면 아주 드문 소식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기존에 없던 사례였다면 북한 당국이 이같은 정보를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